매달 1000만 원 순익이 되기까지. 약간의 막노동을 곁들인 이야기.
이 글의 제목과 부제목을 써놓고 보니 어그로를 끄는 유튜브 썸네일 같은 제목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100%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적을 수 있는 제목과 부제목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들어간 돈은 단 900만 원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기적 같은 결과는 우리의 피, 땀, 눈물,,, 은 아니고 무튼 피와 땀이 투입된 결과였다.
무슨 피까지 흘렸냐고?
이것도 사실이다. 한겨울에 꽁꽁 언 마당의 흙을 파내기 위해 삽질하다가 손이 부르터서 피가 터지긴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우리 이런 능력이 있는 팀이에요! 라면서 자랑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고 우리가 속된 말로 개고생 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쓰는 글이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동기부여와 새로운 시도를 위한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야기 시-작!
작년 11월 가을이 끝나갈 무렵,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xx형'
이 형이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지?
연락처에 저장은 되어있지만 자주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었고 1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던 대학교 동기였다. 물론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자주 붙어 다니면서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같이 가고 했던 '공부는 못하지만 착한 형'이었다.(나도 공부를 못했었기 때문에 같이 자주 놀았다. 아니, 같이 놀아서 공부를 못했다가 맞을 수도 있겠다)
공부를 못했던 우리는 둘 다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지 않았다. 그 형은 결국 2학년까지만 마치고 군대 제대 후 내리 휴학을 쓰며 놀다가 결국 부모님의 소환술에 이끌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고 나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지 않고 학교를 떠나 이런저런 일들을 했기 때문에 대학 시절 이후로는 왕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여보세요. 어 형 웬일이야? 잘 지내?"
"경모야 잘 못 지낸다. 너는 사업 잘 되어가냐? 나는 죽겠다."
왕래는 적었어도 sns를 통해 서로가 뭐하고 사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 형은 부산에 내려간 직후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면서 살다가 부모님께서 소유하신 땅에 건물을 짓고 카페를 차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는 그래도 그쪽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카페로 알려져서 장사가 꽤 잘 됐던 것으로 안다.
맨날 술 마시고 같이 놀던 우리가 나이 먹고 30대가 되어서 서로 사업을 논한다는 게 순간 웃기고 세월의 야속함도 느꼈지만 그런 감정은 숨긴 채 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카페를 운영한 지 3-4년 차가 되던 2020년,
코로나가 터졌고 카페 매출이 반토막도 아닌 반에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매월 1500만 원가량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3-4년 차쯤 되어서 시설 노후화도 있던 터라 매출이 떨어지는 추세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 매출 감소가 더 다이나믹하게 일어난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서두에 말했지만 그 형은 '공부는 못하지만 착한 형'이다. 본인이 채용했던 직원들과 알바생들을 차마 자르지 못하고 계속 데려가게 되면서 인건비로 인해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착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를 우유부단하고 경영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형은 그냥 그런 착한 형이었다. 사실 부모님 소유의 건물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나가는 것도 아니거니와 줄어든 손님들만큼 재료비용도 줄었을 테니 적자가 발생하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었다.
내가 공간사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 형은 내게 조언을 구했다. 대체 그 카페에서 뭘 해야 수익이 날 것 같은지 물어보는 형에게 직접 내려가서 봐야 알겠다고 하면서 다음 주에 부산으로 가겠노라고 말하고 전화를 마쳤다.
전화를 마치고 대략적인 상황 파악과 정보수집을 위해 손품을 팔았다. 그 형이 운영하던 카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해서 사람들의 후기라던지 블로그 게시글, 카페 위치 등 주로 평판에 대한 조사와 사업성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카페가 위치한 곳은 지역적으로는 부산과 울산의 중간인 기장군 일광면이라는 곳이다. 부산은 몇 번 가봤어도 기장군 일광면은 한 번도 가보진 않아서 그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는 몰랐지만 인터넷 검색과 로드뷰로 알게 된 그 동네의 특징은 '바람 쐬러 가기 좋은 곳'이었다. 마치 수도권으로 치면 대부도나 강화도 같은 느낌이랄까.(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라도 부산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의 말씀드립니다. 살아보지 못한 타지다 보니 특징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카페와 펜션이 많았고 동해바다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과 시원함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동네였다.
이런 곳에 위치한 카페들은 주로 대형 카페가 많은데 최근 들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카페들이 이 형이 운영하는 카페 주변으로 많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그곳들은 모두 브랜딩도 잘 되어 있었고 인테리어도 훌륭했으며 빵을 비롯한 디저트 메뉴도 많은 곳이었다. 형이 운영하는 카페가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드웨어를 바꿀 수는 없으니 소프트웨어를 바꾸기 위해 이 형도 나름 노력한다고 신메뉴 개발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메뉴 개발에 능한 전문 인력도 없던 터라 그냥 다른 곳에서 디저트를 납품받아 오거나 남들도 다 판매하는 그런 디저트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게 다였다.
그래도 나름 평판 관리는 잘해왔는지 '사장님이 친절해요.' '아늑하고 편안하고 좋아요.' '바람 쐬고 싶을 때 남편이랑 자주 가요.' 같은 평들이 많았다. 후기는 문제가 없었는데 여기서 발견할 수 있었던 문제는 소위 말해 mz세대로 표현되는 2,30대의 방문율이 다른 카페들에 비해 극히 적다는 게 문제였다. '요즘 사람'들은 이 형의 카페를 가기보다 '요즘 생긴 뜨는 카페'들을 방문하길 원하고 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거에 형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분들만 다시 방문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브랜드에는 항상 새로운 피가 돌아야 한다.
그 형의 카페는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을 운명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다음편 : https://brunch.co.kr/@ckm47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