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한때는 잘 나갔던 매장, 브랜드,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에는 보통 하나의 문제로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잘 나갔을 때 쌓아놨던 공든 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든 탑의 위용에 취해있으면 탑을 이루는 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걸 모르게 된다. 전체 모양만 보이기 때문이다. 공든 탑은 돌 하나, 두 개 빠진다고 바로 무너지진 않는다. 문제가 하나, 둘 터지는데도 방치해두면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눈덩이 굴러가듯이 커지고 비로소 그게 눈에 보여서 아차 싶을 때 공든 탑은 무너진다.
형이 운영하던 카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온라인을 통해서 분석한 몇 가지 문제점이 다가 아닐 것이다. 부산에 직접 내려가서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뭐가 문제였는지 제대로 파악만 된다면 돌은 다시 처음부터 하나 둘 쌓아나가면 된다.
첫 부산행은 형이 전화를 걸었던 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굉장히 빠르게 이뤄졌다.
1박 2일 출장에 신난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 타고 갈만한 거리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실수의 대가로 늦은 저녁 녹초가 되어서야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일로 만난 형은 서울에서 먼 길 왔다며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고 회식(이라 쓰고 하소연 들어주기)도 하게 됐다. 주로 이런 컨설팅의 첫 시작은 '들어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들어주기'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들어주기'에는 몇 가지 정석 레퍼토리가 있는데,
1. 자기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2. 한때 잘 나갔던 이야기
3.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4.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5.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다짐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주면서 부산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동해로부터 솟아오르는 햇빛을 받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라 해서 이름 붙여진 일광(日光)면, 이 동네의 매력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매력은 나중에 마케팅 포인트로도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직접 본 동해바다의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매력을 가진 곳이라면 충분히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시작했다.
형이 운영하던 카페는 장사가 잘 안 되는 여느 가게가 그러하듯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참이 되었는데도 카페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카운터에 있는 직원 두 명은 할 일이 없으니 그저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구석구석 살펴보니 몇 가지 문제점들이 눈에 띄었다.
문제점 1. 매출에 비해 너무 많은 직원
매출은 줄었는데 직원수는 그대로였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그렇게 다 까먹고 있던 것이다. 장사가 잘 안 되어서 매출이 줄어들면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시점에 이별을 고해야 한다. 젊고 생기 넘치는 직원들을 굳이 생기를 잃어가는 매장에 붙잡아두고 있을 이유가 없다. 사장 본인이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고 되살릴 자신이 있다면 오래 함께한 직원들과 몇 달은 더 버티며 으쌰 으쌰 해도 되지만 명확한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같이 침몰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다. 월급 줄 돈이 남아있을 때 이별해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
문제점 2. 재고관리 실패
창고를 열어보니 재고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다. 본인도 그 재고가 무슨 재고인지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옛날에 잘 나갈 때 생각하며 물품을 시키면 절대 안 된다. 매출이 줄어들면 물품을 새로 시킬 게 아니라 우선은 재고부터 처리해나가야 한다. 본인이 파악도 안 되는 재고라면 오래 쌓아둬 봤자 어차피 나중에도 안 쓴다. 바로 버리는 게 낫다. 왜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선생님이 주방에 들어가서 그렇게 다 버리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위 두 가지 문제점을 제외하고도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어려운 문제점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사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장'에게 있었다. 아무리 좋은 솔루션을 들이밀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때부터 형(사실은 클라이언트인)을 향한 나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이 사람부터 바꿔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문제가 많았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 지역적 특성, 멋진 건물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고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결론 낸 솔루션은 업종의 전환이었다. 몇 가지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 낸 결론이었다. 이 형은 카페 장사를 몇 년 동안 하며 흥망성쇠를 겪었고 카페 장사로는 번아웃이 와있는 상태였다.
전제조건
1. 인력관리를 못하니까 사람의 힘이 적게 들어야 한다.
2. 재고관리를 못하니까 재고 관리할 일도 없어야 한다.
3. 그러면서 충분한 영업이익이 나와야 한다.
4. 카페에 오래 붙어있어야 하는 장사에 번아웃이 와있는 사람이니까 하루에 적은 시간만 일하게 한다.
제일 중요한 5.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할 때 비용이 많이 들어선 안 된다.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서울로 복귀했고 솔루션에 대한 제안서를 만들어서 일주일 뒤에 줌 미팅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큰 도전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