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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모 Sep 01. 2021

1. 대충 정한 꿈과 샤프심 학점

2010년-2011년



고등학교 때까지 내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특별히 꿈이 있다거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을 잘 따랐을 뿐이었다. 문/이과를 선택할 때에도 나는 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이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이과를 선택할 정도로 그저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가 고 3이 되어 평범하게 진로를 (잠깐) 고민했고 평범한 결론에 도달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주를 좋아하니까 우주 관련된 학교를 가고 싶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주를 그렇게 광적으로 좋아하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딱 보통 사람들 정도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주 관련 뉴스나 좀 찾아보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대충 정한 꿈을 가지고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에 수시전형으로 지원했다. 단순히 전공 이름에 '우주'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당연히 우주에 대해 배우겠거니 생각해서 지원했다.


요즘은 워낙 대학교에 대한 정보도 많이 오픈되어 있고 담임 선생님들도 입시에 대한 정보가 빠삭하기 때문에 대학에 지원하기 전에 그 대학교와 전공에 대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고3이던 2009년에는 대학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당시 우리 반 담임선생님도 고3을 처음 맡아보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과 전공을 정하고 원서를 접수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정한 꿈으로 쓴 수시는 덜컥 합격해버렸고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쉽게 대학에 진학해서 벌을 받았던 걸까. 바로 이때부터 내 인생의 암흑기와 방황이 시작되었다.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무난하게 대학에 들어갔고 무난한 대학생활을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련은 금방 찾아왔다.

1학년 1학기 개강 첫 주 내가 들어야 할 수업들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이거였다.



'아 망했다...'


나는 우주에 대해 배우겠거니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전공 이름에 그냥 항공우주가 들어있을 뿐 실상은 그냥 기계공학과였다. 내가 이과 체질이면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문과를 가고 싶었던 사람이 아닌가.

가장 괴로웠던 건 다들 쉽게 이해하는 수업내용을 나만 어려워하는 게 느껴지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이었다.


이 전공이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공부할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지방에서 홀로 상경해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공부하라고 잔소리해줄 만한 부모님도 선생님도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이었고 그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대학교 친구들과 매일 같이 술을 마시러 다녔고 학생회까지 가입해서 학교 행사란 행사는 모두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참 좋아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 30명을 모아서 신촌에 있는 술집을 통째로 빌려 모임을 주최한 적도 있다.

내가 스무 살 땐 싸이월드와 연동되는 네이트 판이 굉장히 큰 커뮤니티였는데 그 커뮤니티에 작성한 내 글이 베스트 인기 게시글이 된 적이 있었다. 인기 게시글이 되니 내 미니홈피에 방문하는 방문자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내가 올린 게시글의 조회수가 10만 회가 넘기도 했다. 그 맛을 한 번 보고 나니 재미가 붙어서 시리즈로 글을 연재했었다. 신기하게도 시리즈로 올린 글들 모두 베스트 게시글이 되었고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다 보니 정모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그렇게 모이게 된 것이었다.

가장 막내가 스무 살인 나였고 가장 연장자가 서른다섯 살인 어떤 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짜리가 어떻게 겁도 없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대학교 성적표
기사로 박제당해서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 샤프심 학점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놀았고 그 결과는 그대로 성적표에 나타났다.

2학년 때까진 성적표가 집으로 발송되었는데 성적표를 보신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고 크게 화를 내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시기에 부모님과의 관계도 최악이었다.

고등학교 땐 300명이 넘는 동급생 중 전교 5등까지도 해봤는데 대학교 땐 완전히 그 반대가 됐다. 최저 학점을 기록한 2학년 1학기엔 253명 중에 248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 0.7학점을 받았다가 후에 재수강을 통해 변경된 학점이 1.38...) 특히 학사경고를 연속으로 2회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학사경고 3회는 곧 제적을 의미했다.


그제야 나는 도망치다시피 군대에 입대했다. 친구들은 모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겠다고 버티고 버티다가 2학년을 마치고 가게 된 것이다.



다음편 읽기 2. 처음 겪는 왕따 그리고 꿈




<1편 TMI>

대학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어찌저찌 최저 학점을 겨우 채우고 2021년 2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학점 채우느라 고생을 하긴 했지만 학교에 대한 기억을 돌아보면 좋았던 기억이 훨씬 많습니다.


공부로 장학금이나 상장을 받는다는 건 꿈도 못 꿔봤지만 교내에서 주최하는 각종 창업대회에서 수상해서 장학금도 받고 총장상도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보기도 했고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학우분들을 위해 시험기간에 떡볶이 푸드트럭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티구시포를 창업하는 과정에서 경영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 교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티구시포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전공이 안 맞는다고 한 없이 불평만 했다면 이렇게 좋은 경험과 추억, 기회들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학교를 전공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만 한정지어 생각했을 땐 대학교는 저에게 괴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어서 대학교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인적 네트워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울타리),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제공해주는 곳(각종 혜택)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활동하다보니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티구시포 워크&스터디에서 청소 알바를 했던 학생이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며 제게 고민상담을 요청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편입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는데 아직 자신이 뭐를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막연히 대학 입학을 목표로 그 힘든 편입 과정을 견뎌내기가 힘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있다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그런게 없고 아직 뭐를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라면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좋은 대학에 가는 걸 목표로 노력해보는 것도 괜찮다.' 여기서 인프라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학생 지원 정책 같은 것들이 잘 갖추어진 곳을 의미합니다.



저도 한 때는 대학교육에 대해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바뀌게 된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 경험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저처럼 대학교에 대해 고민이 많을 저와 비슷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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