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3년
학사경고 2번을 맞고 쫓기듯이 입대한 군대.
그곳에서의 21개월은 내게 지옥 같으면서도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지만 나는 군대에서 선임들에게 구타 가혹행위를 당했었다. 그러나 그 악몽 같던 시간들을 견뎌내고 이겨내며 결국엔 그 안에서 꿈을 찾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전역 전과 후의 내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군대에서 당했던 왕따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아서 이번 편에서 한번 풀어볼까 한다. 2편은 결론적으로 꿈을 찾게 된 이야기이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 고등학교 땐 반장도 꾸준히 하고 대학교 땐 학생회와 과대표도 했었다. 그래서 스스로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남중-남고-공대 루트를 탔던 나였기에 남자들이 모여있는 무리에서는 잘 지낼 자신이 있었고 군대도 마찬가지겠거니 생각하며 입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게 큰 착오였다는 건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깨달았다.
군 입대 전, 먼저 입대했던 친구들로부터 선임을 진짜 잘 만나야 군 생활이 편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었다. 입대 전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자대에서 나쁜 선임들을 겪고 나니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기에 군대란 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보통 사람을 나쁘게, 나쁜 사람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곳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 명의 나쁜 사람이 주도하면 주변의 보통사람들도 동조를 하게 되고 그게 대대로 악습으로 내려오는 그런 곳이라는 말이다.
내가 선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이유 또한 상식적인 사회에서라면 말이 되지 않을 이유였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왜 시키는 대로 안 하냐.'
괴롭힘과 구타 가혹행위의 시작은 한 명의 상병으로부터였다.
후임들을 괴롭히기 좋아했던 그 상병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말도 안 되는 명령과 요구들, 그리고 인격비하적인 욕설을 했었다. (다행히 지금은 사라진 군대 악습들이다.)
거기에 대고 몇 번 옳은 말을 했었는데 '후임답지 못한' 그 행동이 그의 눈에는 마음에 안 들었던 같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욕설 수준이었고 그다음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한 사람이 그렇게 하니 자연스레 다른 선임들도 나를 타깃으로 삼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루한 군 생활에서 일종의 유희 거리를 찾은 듯이 말이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 어느 날 새벽엔 선임 열댓 명에게 둘러 쌓여 심한 욕을 먹은 날도 있었다. 그게 그들식의 굴복과 복종시키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땐 정말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이 났었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괴로웠다.
처음 겪어보는 왕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자신감과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선임들이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생각이 들면서 위축이 되고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움찔거리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동기들, 후임들과는 관계가 좋았었다는 것과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했던 일기장, 그리고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중에서 책은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꿈을 찾게 해 준 일등공신이다.
군대 가기 전엔 책 한 권은 고사하고 한 장도 읽지 않았었는데 책을 통해 꿈을 얻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에 책을 접했던 이유는 책으로 무슨 인사이트를 얻겠다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단순히 선임들이 없는 곳, 선임들을 피할 곳을 찾다 보니 가게 된 게 병영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하루에 틈틈이 1,2시간씩 독서를 했고 그 시간만큼은 고된 현실을 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톱클래스라는 잡지를 읽는 것을 좋아했다. 잡지를 통해 매달 새로운 바깥 소식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들을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한 젊은 대표님의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엔 사회적 기업이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그 인터뷰 기사는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듯한 충격이었다.
(출처 :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L&tnu=201105100015)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직업이 있다니!!!'
사회에 좋은 일도 하면서 돈까지 번다는 게 당시의 나로선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스물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회사를 40억에 매각했다니!!! 그날 이후 뭔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계속되었고 나도 내 꿈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꿈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경험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군대 안에서 꿈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가장 원시적이고 본질적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노트 한 권을 새로 사서 그 노트를 꽉 채울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장점, 단점 등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적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틀에 박힌 것을 싫어했으며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과 재밌는 일을 벌이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거의 3개월 동안 이루어졌고 끝에 가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나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간부들과 선임들 중에서도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단지 목표가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이 마법 같은 경험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이런 감정들이나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를 하고 싶었다.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런 커뮤니티가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었는데 단 한 곳도 검색되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거였다.
'없어? 그럼 내가 만들지 뭐.'
열정에 가득 차 있었던 나는 3일 만에 페이스북 그룹을 활용해서 커뮤니티를 만들어버렸다.
그 이름은 '꿈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줄여서 꿈. 틀. 이
유치하긴 하지만 이만큼 직관적인 네이밍도 없었다.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바로 유입되진 않았다. 이 커뮤니티를 알리고 회원가입을 유도해야 했다. 무슨 영업이든지 간에 자기 주변 지인들부터 끌어들이는 거라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우선 초, 중, 고, 대학교 친구들에게 한 명 한 명 메시지를 보내서 내가 왜 이런 그룹을 만들었는지 취지 설명을 하고 페북 그룹에 네가 가진 꿈에 대한 소개 글을 하나씩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진심과 성을 다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룹에 끌어들였고 한 달만에 나름의 성과로 60명의 사람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킬 수 있었다. 그 후엔 신기하게도 회원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3개월 동안 1,000명, 그다음 3개월 동안 10,000명, 그리고 10,000명에서 25,000명이 되기까지는 불과 한 달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들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나만 꿈꾸는 게 아니었구나. 다들 이런 이야기 할 공간이 필요했구나'
그 후 휴가를 나갈 때마다 조치원에서 서울까지 가서 회원들을 모아 정모도 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봐도 좀 신기한 모임인데 둥글게 모여 앉아서 서로 자기소개하고, 꿈 소개하고,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응원하고 서로 돕기도 하는 그런 모임들이었다. 나중에는 굳이 내가 없어도 회원들끼리 그런 모임들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여담이지만 꿈틀이에서 만나서 커플이 되고 결혼까지 골인한 분도 계셨다. 이렇게 국내 최초 꿈 커뮤니티는 작은 반향을 일으키며 한때 페이스북에서 가장 큰 그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2년 뒤 꿈틀이는 내 개인적인 슬럼프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된다. 빠르게 성장했던 만큼 추락도 한순간이었다. 너무 빠른 성장을 담아낼 그릇이 작았던 나는 꿈틀이 커뮤니티의 수장으로서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만족시켜주기가 버거웠다. 내가 조금이라도 지친 모습을 보이면 어김없이 '꿈틀이 대장이 그래도 돼?' '너는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거 아니었어?' 이런 말들이 들려왔는데 이게 자꾸 쌓이다 보니 대인기피증 비슷하게 와서 사람들을 피하게 됐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집 밖에도 안 나오고 커뮤니티 운영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25살의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미숙했다.
이 꿈틀이는 내가 지금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큰 역할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남겨주었다. 그때 맺은 좋은 인연들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걸 보면 커뮤니티의 진정한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다음 편 읽기 3. 시작, 도전, 실패, 그리고 다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질문입니다.
군필 남성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이런 비슷한 질문을 꽤나 듣습니다. 예를 들면 1년에 1억 준다 하면 재입대한다 VS 안 한다 같은.
물론 제 대답은 '절대 절대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아무리 끝이 좋았다고는 해도 군대를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습니다.
전역 후 강연을 하러 다닐 때 저 질문을 생각보다 꽤 들었습니다. 보통 군대를 아직 가지 않은 분들이 저 질문을 해주셨는데 질문의 진짜 의도는 이거입니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뭘 해야 전역해서도 도움이 될까요?'
제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군대 복무기간은 밖에서 봤을 땐 빠르게 지나가는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에서 느끼면 생각보다 엄청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굉장히 좋은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간을 숙성의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습관을 만들기도 좋고 지식을 쌓기도 좋고 돈을 불리기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군대를 좋아서 가는 사람이 대한민국 성인 남성 중에 0.0001%는 될까요? 그 정도로 거의 없을 겁니다. 물론 그 시간이 정말 아깝습니다. 한창 혈기왕성하고 무언가를 해도 다 잘해낼 나이인 사람들이 1년 반을 허비하다니요. 그래서 더욱 더 군대에서의 시간을 더 값지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가야한다면 그 귀중한 시간 동안 여러분의 무기를 만들어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군대에서 만나게 될 후임,동기,선임들을 모두 아껴주고 존중해주세요. 사회 나가서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허구언날 생활관 바닥에 엎드려서 이어폰 끼고 랩 가사를 쓰느라 선임들한테 갈굼을 많이 당했던 한 후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명한 래퍼가 되었더라구요.
ps.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주식이나 비트코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