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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Oct 29. 2022

자책의 늪을 헤매는 나에게

#성체조배실 #자책의 늪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의 힐링 플레이스

성체 조배실에 들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언제든 고요하게 "그래 그래 힘들었지, 잠깐 쉬었다 가라. 내가 다 안다. 다 알고 있다. 괜찮다. 다 괜찮다."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셋째가 태어난 지 두 돌이 다돼가도록 아직 한국에 출생 신고도 안 했다. 더 늦기 전에 출생 신고도 하고 여권도 만들어 놓으려고 영사관 방문 일정을 잡았다. 출생 신고, 여권 만들기 큰 아이 여권 갱신 등 업무를 보려니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만만치 않게 많았다. 그래도 신랑이 출근하는 길에 대신 가주겠다고 하여 감사하며 새벽같이 서류를 작성하여 보내려는데 최종 확인을 하려고 보니 빠진 문서가 있었다. 급히 프린트를 하려고 보니 내 컴퓨터에서 프린트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아이 셋을 데리고 혼자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쉬울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하는데, 출근하려고 4시에 정장을 입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친 신랑이 출근도 못 하고 프린트와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미안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좀 더 미리미리 잘 챙겼으면 이렇게 출근 직전에 당황스럽게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동네 이웃들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오랜만에 인사를 하였는데, 그 단톡방 안에 이 관계를 불편해하는 가까운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누어야 할 출산 소식과 정보들이 있어 인사를 건네었다. 친구가 새벽 늦도록 답이 없는 것을 보니 갑작스럽게 죄책감이 밀려왔다.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냥 그 단톡방을 두고 따로 새로운 방을 만들어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어야 했을까 나 때문에 힘든 기억이 다시 떠올라 괴로우면 어쩌지 자책으로 맘이 괴로웠다. 친구에게 개인 톡으로 사과를 했으나 답이 없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자녀 문제로 머리가 아파하고 있던 상황인데, 통화를 하면서 내가 쓸데없는 많은 말을 쏟아 낸 것은 아닌지 갑작스레 걱정이 되었다. 그저 위로하고 싶었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정말 마음 뿌리는 애정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전달을 받는 입장에는 그것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생각하니 후회가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냥 가만히 있어줄걸. 도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득달같이 전화해서 아무 말 잔치를 벌였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이래 저래 심란한 아침, 둘째 아이가 장난으로 내 머리핀을 집어다 콘센트에 꽂아서 불꽃이 파악하며 튀어 올랐다. 아이도 놀라고 나도 놀라 황급히 핀을 빼고 아이를 살폈다. 다행히 아이는 감전이 되지는 않았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전 교육을 다시 한참 시킨 후 냉장고를 열었는데 냉장고 전원이 나가 있었다. 감전으로 퓨즈가 내려간 것 같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 냉장고를 낑낑대며 끌어내어 뒤로 들어가 애먼 코드를 뺐다 꽂았다 하며 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도 죄책감에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를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생각해서인 듯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걱정 마.'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두꺼비집을 찾아 (미국에선 이걸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내려간 부분을 다시 완전히 껐다가 켜니 전기가 돌아왔다. 냉장고가 살아나서 반찬이 녹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행히 프린트는 잘 되어서 서류는 빈틈없이 잘 준비해갈 수 있었고, 신랑 출근은 늦지 않아 발표는 예정대로 잘했다고 한다. 친구는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로 머리가 아파했던 상황이고 답이 늦어 미안하다며 내 덕분에 자긴 잘 살아 있으니 그런 걱정 말라했다. 아들은 한결같이 해맑았고, 안전 교육은 재차 해야겠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더 보듬어 주지 못해 미안함을 꼭 안아주며 풀었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모든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 잠도 줄여가며 끼니도 걸러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리 힘들까 싶은 날이 있다.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동동거리며 애를 써도 온통 주변에 미안한 마음만 가득 남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 능력은 60인데 120을 끌어다 써가며 아등바등 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사는 것이 버거워지는 그런 날이 올 때가 있다. 여기서도 죄인, 저기서도 죄인인 것처럼,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내가 너무 불쌍한 오늘은 그런 날이다. 별 것도 아닌데 약해 빠져서 앓는 소리는 어디 가서 내지도 못한다. 


오늘만 좀 울어야겠다. 혼자 소리 죽여 구석에서 울고 나면 다시 일어나 지겠지. 나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고도 앞장서서 걷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잠깐만 쉬고 다시 일어나야겠다. 힘들어도 달려가서 눈물 뚝뚝 흘리면, '괜찮다 그동안 애썼다.' 나를 무한정 보듬어 줄 따뜻한 성체 조배실이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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