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Dec 10. 2022

너무 빨리 커버린 아들에게

#둘째의 서러움 #둘째 아들 #나의 아기 #천천히 커라 #귀한 아기

안녕 나의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나의 아가-


민아, 집에서 한국어로 학교에서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환경이 쉽지 않을 텐데 힘든 기색 없이 언제나 재밌게 잘 지내줘서 정말 고마워. 너는 아침에 7시 반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고, 자고 일어난 침대 위의 이불을 정리하지. 그리고 옷장 서랍에서 옷도 스스로 골라서 꺼내 입는 모습이 정말 형아 같아. "엄마 오늘은 추워요? 안 추워요? 맑아요? 비가 와요?"하고 날씨를 묻는 너를 보면 우리 민이 진짜 다 컸네 싶어. '다 큰 형아네!'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해하지. 엄마는 아래서 아침 준비하고 도시락 싸고 있으면 혼자 준비를 다 하고 내려와서 식탁에 앉지. 하긴 민이는 이유식을 먹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밥을 잘 안 먹어 속 썩인 기억이 한 번도 없다. 이제 밥은 엄마보다 더 먹는데, 그것도 혼자서 깔끔하게 다 먹지. 밥을 잘 먹어서인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너에게 정말 고마워. 민이는 기저귀도 정말 쉽게 뗐어. 두 돌이 되기도 전부터 자꾸 변기에 앉으려고 하더니, 소변도 대변도 금방 가리더라고. 낮에 놀다 실수해서 옷 갈아입혀 본 기억도 없어. 얼마나 깔끔하고 영리한지 몰라.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처음에 민이 보고 놀랐대, 스스로 수저 꺼내서 도시락 통 열고 깨끗이 앉은자리에서 밥을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말이야. 차려 준 아침을 먹고 나면 입을 닦고 잠바를 골라 입고 신발을 신고 스스로 카시트에 올라타서 앉아. 카시트 안전벨트도 스스로 채우고, 도착하면 스스로 풀지. 민이는 언제나 누나가 하는 것은 다 같이 하고 싶어 했어. 누나가 글씨를 쓰면 따라 쓰고, 그러다 보니 엄마는 가르쳐 준 적도 한 번 없는데 스스로 이름도 쓸 줄 알고 영어로도 문장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기특하단다. 우리 민이는 정리도 잘해. 장난감을 다 갖고 놀고 엄마가 "이제 정리해라." 하면 얼른 정리를 다 하고 "엄마 눈 감고 따라와요."하고 엄마 손을 잡고 깔끔하게 정리된 놀이방을 보여주지. 엄마가 깜짝 놀라면 행복하게 웃는 너를 보며 엄마도 따라 웃게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지. 엄마를 도와주고, 아빠를 도와주고, 선생님을 도와 드리고, 친구들을 도와주지. 그리고 널 귀찮게 하는 아기 동생도 잘 돌봐주지. 기저귀도 갖다 주고, 물티슈로 입도 닦아주고, 응가를 하면 알려주고. 동생이 장난감을 가져가거나 망가트릴 때는 엄청 속이 상할 텐데, 한숨을 쉬고 아가 못 만지게 높은 곳에 올려 달라는 너를 보면 동생 때문에 되려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어. 동생이 머리를 잡아당기고 널 때려도 너는 다시 동생을 때리지 않더라.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때도, 울면서 말없이 피하는 모습에 가끔 속이 상하기도 해. 너는 절대 약한 동생을 함부로 때리지 않아. 


오늘은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발표회가 있었지. 큰 무대 위로 반 친구들이 들어오는데 엄마는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친구들이 왜 이렇게 작은지 이상하다 하면서 보는데, 같이 들어오는 민이도 똑같은 사이즈인 거야. 어머나 세상에, 우리 아이가 저렇게 작았나, 집에서 다 큰 형아인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니 왜 이리 더 작고 아기 같은지 눈물이 핑 돌지 뭐야. 그제야 엄마가 민이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어. 아직도 네가 세 살 반 밖에 안되었다니. 네가 만약 엄마의 첫째나 막내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네가 만약 외동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엄마가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 이제 겨우 태어나 세 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동안 엄마는 집에서 너를 얼마나 큰 아이 취급을 했던 걸까. 너에게 벌써 얼마나 많은 기대를 부어 넣었던 걸까. 혹여 그런 엄마의 기대가 너에게 너무 무겁진 않았을까. 알아서 뭐든 독립적으로 잘하는 너도 가끔은 아기가 되고 싶고, 가끔은 그냥 다른 세 살 친구처럼 굴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텐데. 엄마 아빠가 너무 규율을 강조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 다그쳤던 건 아닐까.


다섯 살 누나는 유일한 딸이라, 그리고 양가 집안의 첫아기라 어딜 가든 늘 칭찬 속에 살았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장아장 걷는 1살 동생은 막내라,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웃어주지. 그런데 비교해보면 왠지 너에게는 더 칭찬에도 웃음에도 박한 것 같지? 가끔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끼인 둘째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너는 너대로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 2살 위의 누나만큼 능숙할 수 없고,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동생같이 반응해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우리 민이 처음 엄마가 민이 가졌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모를 거야. 초음파 실에서 네 심장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한참 쏟았어. 두 번째라 감동이 덜했냐고? 기억이 흐릿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아. 엄마는 누나한테는 비밀이지만, 아들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계획도 없이 덜컥 찾아와 준 네게 고맙고 또 고마워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너를 수중분만으로 낳고 처음 품에 안았을 때도, 엄마에게 와 준 귀하고 귀한 나의 아가.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고백했었어. 그런데 세상에 네가 너무 알아서 잘하니까 엄마가 자꾸 너를 누나랑 같은 나이로 착각하는 것 같아. 비교하지 않겠다 결심해놓고 어쩜 그리 야박하게 굴었을까. 누나만큼의 집중력과 언어 능력과 단호한 절제력을 원했던 것 같아. 항상 비교군이 누나가 되어 버려서 네가 또래에 비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기특한지, 진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항상 잊어버리고 살았다 민아. 옆에서 친구가 과자 먹는 것을 보고 '나도 지금 과자가 먹고 싶다.'라고 우는 너를 보며 '단 것은 일주일 한 번 금요일만 먹겠다고 약속해놓고 왜 이렇게 절제력이 없어. 울어 봤자 엄마는 안 들어주는 거 알지.'하고 엄하게 선을 그었던 엄마가 너무 했던 것 같아. 그깟 과자가 뭐라고, 그거 하나 먹는다고 네가 밥을 잘 안 먹는 애도 아닌데. 엄마는 왜 이렇게 너에게 엄한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 놓고 늘 한결같이 지킬 것을 강요했을까. 행여 너의 자존감을 낮췄거나 죄책감을 갖게 했을까 걱정이다.


오늘 쓰는 편지는 민이에게 지금 읽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엄마 마음에게 쓰는 편지 같은 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네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지 다시 회복하려고. 너무 빨리 커버린 세 살의 아가 민아. 나의 민아, 훌륭한 나의 아들.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너는 너무 잘하고 있어. 정말 기특하고 고맙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오늘부터 엄마는 더 많이 표현하고 조금 더 너그러운 엄마가 될게. 네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따르는 힘이 생길 때까지 더 믿고 기다려줄게.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너무 빨리 엄마 품 안에서 밀어내서 미안해. 천천히 엄마 품에서 오래오래 사랑 듬뿍 받고 제 나이답게 크렴. 때론 세 살의 어리광도, 세 살의 울음도 그 나이의 특권이라는 것을 엄마가 잊지 않을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나의 아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