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Dec 21. 2022

신년 목표는 손절입니다.

#거절할 용기 #거절당할 용기 #놉 #이제 그만 #손절각 

한 해가 또 다 갔다. 고단한 하루는 긴데, 일 년은 왜 이리 짧은지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동안 하려고 마음먹었던 목표 중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을 돌아보았다. 매 순간 열심히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흔적들이 보인다. 성취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성취하지 못한 목표를 들여다보니, 나는 이걸 일 년 전에 한 해의 목표라 적어놓고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구나 싶은 부분이 꽤나 많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반복되고 있는 습관들이 있다. 그 나쁜 습관들은 뱀파이어가 되어 나의 에너지와 감정 그리고 귀한 시간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적어놓고 보니 결국은 또 같은 뱀파이어에게 당했구나 싶다. 나는 내가 스스로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들을 진정으로 돌보지 않았다. 대신 쉽게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관계'의 탈을 쓴 뱀파이어다. 그 관계 뱀파이어는 때로는 '가족' 또는 '친구'의 탈을 쓰고, 때로는 '선행'의 가끔은 '의무'의 허울을 쓰고 내게 다가오기도 했다. 올 한 해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세 가지 정도씩 적어본다. 그중 잘못한 일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기록해 보았다. 잘못한 일은 수면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여 자주 아팠던 것, 그렇다면 왜 수면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을까? 새벽 기상을 하면서 일찍 자지 못한 것. 왜 일찍 자지 못했지? 밤에 주로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 또는 독서 모임과 자기 계발 커뮤니티 미팅 그리고 SNS 보고 있기 등이 문제였다. 자려고 누워서도 친구가 잠시 통화를 요청하면 그래그래 내가 한 시간 덜 자면 친구가 마음이 어려운데 내가 의지가 되어줄 수 있겠지, 그래 내가 조금 덜 자면 지금 이 미팅의 의미 있는 대화가 더 잘 이어질 수 있겠지 하는 욕심들 때문이었다. 또 더 깊이 들어가보면, 거절 당할 용기가 없어 상대가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거절 하기도 했었다. 


"인아씨 아니면 이걸 누가 해요, 인아씨 없이 안돼요. 인아님이 이번에 대표로 이거 맡아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인아님, 한 해만 봉사해주세요~ 인아님 보다 더 잘하실 분이 없어요. 인아씨가 생각났어요, 이 자리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인아씨 바쁜 거 알지만, 이건 진짜 중요한 일인 거 아시죠. 인아, 네가 없으면 우리가 만나는 이유가 없지. 인아야 얼른 와서 밥만 먹고 가라. 인아 이거 한 줄만 써줄 수 있어? 인아야 이거 번역 한 번만 봐주라. 길진 않아서 5분이면 볼거야. 인아 이거 먹어, 너 주려고 내가 어제 잠도 안 자고 만들었어. 인아, 여기야. 올 수 있지? 인아 애들 데리고 와. 얼굴은 보고 가야지."


돌아보면 내가 빠져들었던 늪의 뱀파이어가 나를 유혹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성당의 단체장을 맡았고, 그렇게 독서 모임의 리더가 되었으며 그렇게 모든 모임에 불려 갔고,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 합창단의 운영진이 되었다. 그렇게 신심 단체의 봉사 활동에 끌려다녔고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섰으며 어른들을 설득하는 자리에서 늘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이제 연말 찬 바람이 불어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팠고, 아이들도 아프고, 신랑마저 아프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족, 건강, 성장, 사랑 그리고 부와 나눔의 가치를 얼마나 살았나 돌아보려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2023년 나는 나를 갉아먹는 모든 관계의 '손절'을 결심한다. 손절이란 주식에서 사용하는 '손절매'에서 왔을 것이라 생각하는 단어로, '관계를 끊다.'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요즘 사람들의 단어이다. 손절매란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여,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쌓아 온 관계, 신뢰 키워 온 단체, 그룹들에서 내가 갑작스럽게 떠나면 이제까지 들이부은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 손해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꾸준히 키워가야 할 가족, 건강, 성장, 사랑 그리고 부와 나눔의 핵심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과감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관계의 뱀파이어에게 나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감정을 다 뺏겨서 결국 나 스스로 말라죽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정말 중요한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이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이번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그때 가족 행사가 있어서 참석이 어렵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좀 더 키워서 제가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더 단체를 잘 맡아서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근데 저희가 벌써 식사를 했어요. 우리 다음 달로 약속을 잡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가 이번 달까지 끝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많이 바쁘네요.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행사에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인수인계를 하고 자리를 떠나겠습니다."


잘 가라, 에너지 뱀파이어야.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라. 

징한 것... 내가 너한테 또 당할 순 없지! 넌 정말 이제 손절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너무 빨리 커버린 아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