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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Sep 08. 2021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에 대하여

[그 도시에 대하여]④

미국 뉴욕, 2006년 12월.


롤링스톤스의 드러머 찰리 워츠가 2021년 8월24일 사망했다. 영원히 구를 것 같던 롤링스톤스의 멤버 중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찰리 워츠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2006년 12월 뉴욕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원히 반짝이 옷을 입고 게다리춤을 출 것 같았던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사망과 관련한 얘기다.


2006년 당시 나는 캐나다의 북쪽 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놀고 다녔다. 지갑이 넉넉치 않았지만 록의 본토에 온 만큼 여러가지 콘서트를 가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캐나다 북쪽'이라는 지역 특성상 굵직한 아티스트들을 보긴 힘들었다는 데 있다.


교환학생 일정을 마치면 2006년 12월 곧바로 뉴욕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브루클린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외삼촌의 집에서 신세를 지려고 했다. 뉴욕은 2006년이나 2021년이나 뉴욕이다. 100년 전에도 뉴욕이었을 것이다. 그해 여름부터 뉴욕에서 누구의 콘서트를 볼 지 리스트를 뽑았던 기억이 난다.


1번 타자는 제임스 브라운이었다. 블루스의 전설 비비킹(BB King)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무려 12월31일, 뉴이어스데이 이브에 맞춰 제임스 브라운이 공연을 한다고 했다. 관람비는 100달러쯤 했던 거 같다. 공연을 보며 맥주 두 잔쯤 먹고 팁 내고 하면 200달러 정도 쓸 거 같았다.


돈이 없어 정말 거지 처럼 뉴욕에서 지냈던 기억이 나지만, 그래도 영끌을 해서 제임스 브라운의 12월31일 공연 만큼은 보자고 마음 먹었다. 비비킹의 클럽은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해 있던 만큼, 뉴욕의 그 유명한 뉴이어스 이브 행사에도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미리 문의했더니 제임스 브라운 공연 티켓을 가진 사람은 타임스스퀘어에 프리패스로 들어올 수 있다고도 했다.


2006년의 마지막 날,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비비킹의 클럽에서, 반짝이 옷을 입은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get up, get on up, like a sex machine"(그냥 노래 가사일 뿐이다)을 외칠 광란의 순간을 수개월 동안 꿈꿨다.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도 비비킹 클럽의 위치였다. 번쩍번쩍 화려했던 클럽 앞길 조차도 근사했다.


그런데 2006년 12월25일.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타블로이드지 1면에 '부고'가 실린 것을 보았다. 제임스 브라운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뭐야 그 유명한 미국의 지라시인가? 아 근데 네이버에도 한글 기사로 제임스 브라운의 사망 소식이 나온다. 네이버는 믿어야지. 이럴수가. 애틀랜타에서 폐렴 악화로 제임스 브라운이 사망했다고 한다.


슬픈 소식을 뒤로하고 12월31일 공연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비비킹 클럽 측에서는 그날 제임스 브라운의 추모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제임스 브라운이 없는 콘서트는 의미가 없어요. 그럼 예약 티켓을 가져오렴, 환불해줄게.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한 걸음에 타임스스퀘어의 비비킹 클럽으로 갔다. 클럽 앞에서 이미 제임스 브라운을 추모하는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었다. 현수막에는 제임스 브라운의 환하게 웃는 얼굴과 'in memory, the godfather of soul James Brown, rest in peace'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i don't want nobody to give me nothing'. 클럽 관계자들이 이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펑키한 추모식이었다.

'i don't want nobody to give me nothing'에 맞춘 펑키한 추모식

클럽 관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다가와 팬을 건네며 "뭐라도 써봐"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현수막에는 행인들이 남긴 추모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한글로 "제임스 고마웠어요. 편히 쉬어요"라고 적었다. 그 관계자는 "이게 너네 나라 말이야?"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뷰티풀"이라며 웃어보였다.    


환불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제임스 브라운의 장례식이 며칠 후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란 정보를 얻었다. 가볼 생각이었지만 가지 못했다. 마침 그날이 캐나다에서 함께 뉴욕으로 건너온 아는 형님이 퀸즈에 둥지를 트는 날이었다.


아는 형님의 이사를 돕는다고 제임스 브라운의 장례식에 가지 못한 것이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 남은 사람의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다음날 타블로이드지에는 제임스 브라운의 장례식 소식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대충 보니 마이클 잭슨도 오고 그랬단다.


장례식에 갔으면  발치에서 마이클 잭슨도 봤을  있으려나. 따위 생각 등을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해 1231일에는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 대신 타임스스퀘어 뉴이어스 이브 행사를 관람했다. 거의 10시간을 화장실도 못가고 길바닥에 있었던  같다.


행사에서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fighter'를 맛깔나게 불렀다. 물론 아길레라는 내 손톱 보다 작게 보였지만 2006년 12월31일은 내 인생 가장 재미있었던 날 중 하루가 됐다. 제임스 브라운의 콘서트를 못봐서 아쉽다는 생각은 다음날 점심쯤 해장 피자를 먹으며 했던 거 같다.

제임스 브라운 사후 만들어진 비비킹 클럽의 추모 현수막

이듬해 2월 뉴욕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비비킹의 클럽을 찾았다. 여전히 떠들썩했지만 제임스 브라운을 추모하던 현수막도,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도 없었다. 공허한 느낌을 안고 타임스스퀘어를 떠났다.


그리고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의 자취방에서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이 떠올랐다.


2016년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서울의 신혼집에서 역시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이 생각났다.


그리고 2021년에는 영원히 믹 재거의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드럼을 칠 거 같던 찰리 워츠가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사이에 또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글까지 쓰고 있다.


믹 재거도 언젠간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때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든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을 생각할 게 유력하다.


10대 시절부터 덕질하던 인물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걸 목도하는 것의 느낌은 언제나 공허하다. '뉴욕의 제임스 브라운'이 준 그 공허한 느낌이 반복되는 이유같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가 나에게 남긴 이미지 중 하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뉴욕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임스 브라운이 사망한 날은 맑았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아폴로 극장 장례식 소식을 담은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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