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4일 금요일의 마돈나
오늘은 2020년 박스 오피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2006년 개봉작, 이해영, 이해준 감독이 연출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았다. 2006년에 나는 아무튼 이 영화를 볼 수 없이 어렸는데 이 영화의 존재감만큼은 굉장히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닌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시나리오와 실제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으려고 했는데 일단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을 예정이다. 2006년이면 샤이니가 "누나가 너무 예쁘다"며 데뷔하기 2년 전의 일이고, 이게 벌써 16년 전에 나온 영화라고 생각하니 정말 까마득하다. 각설하고, <천하장사 마돈나>에 대해 알아보자.
주연은 지금이야 훨씬 잘 알려진 류덕환. 맛있게 잘 먹는 문세윤도 이때는 덩치1로 등장한다. 커피프린스에서 도장을 찍었던 이언은 여기서 경원고의 주장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 이상하리만큼 수상한 감독은 역시나 <타짜>에서도 수상하게 등장하는 백윤식이, 그리고 덜 유명했던 김윤석이 류덕환이 맡은 동구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영어 선생님으로 등장했던 동구의 짝사랑 상대는 별안간 일본어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초난강.
영화는 2006년 8월에 개봉했는데, 개봉 전 시사회에서도 무척 반응이 좋았고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며 전석 매진이라는 쾌거를 기록했으나 국내 반응은 영 좋지 못해 관객 수 약 70만을 겨우 넘었다. 손익분기점은 아쉽게도 150만이었으니 반토막 실적이 영화에 비해 아깝다는 평들이 많았다. 아쉽지만, 당시 전후로 개봉하던 영화들이 봉준호의 <괴물>이나 최동훈의 <타짜>(백윤식 선생님은 아쉬울 것 없었겠군)였으니 그전에는 단역이나 조연만 맡아오던 '류덕환'을 앞세운 '여자'가 되고 싶은 남고생의 씨름 이야기가 70만 관객이나 든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극 중 열일곱 살인 오동구(류덕환 분)는 왕년에 복싱 선수였으나 부상을 당해 지금은 술만 먹는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사실 '여자'가 되고 싶다. 500만 원만 있으면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기에 부둣가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데, 이마저 아버지가 술 마시고 사장을 패버리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쓰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종만으로부터 씨름 대회에서 우승하면 장학금 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동구는 씨름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퀴어를 다루면서도 주인공 동구가 '나는 왜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와 같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구는, 이미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치파오를 입어보고 싶고 립스틱을 바르고 마돈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더 나아가 아예 '여자가 되기 위하여' 돈을 모은다. 동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확신하니 관객 역시 '그래서 너는 왜 여자가 되고 싶은 건데?'와 같은 고민은 하지 않게 된다. 이는 오히려 이야기를 깔끔하게 만들고 동구의 성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게 한다. 그저 관객은 함께 고민한다.
그러면 동구야, 500만 원을 어떻게 만들 건데?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게, 살집도 있고 힘도 센 동구가 씨름부에 들어가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씨름부에 있는 주장, 덩치1, 덩치2, 덩치3도 나름의 개성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함께 연습하며 춤과 씨름을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씨름에 대한 자세에 대해 다투기도 하며 성장한다. 동구가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모습은 이 씨름부에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씨름부 사람들은 오히려 동구의 이 '여성성'을 비웃거나 차별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게 이 영화의 좋은 점이다. 시종일관 영화를 보면 류덕환의 세심한 연기에 놀라게 되는데, 그것은 비단 류덕환의 가는 목소리나 작은 체구뿐만 아니라 모든 씬마다 아주 섬세하게 동구라는 인물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쩍 다리를 벌린 친구 옆에서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다거나, 샅바를 잡을 때 새끼손가락을 올린다거나, 어깨를 자꾸 움츠리는 등, 류덕환은 대사보다 몸으로 보여 준다. 동구라는 인물은 이렇다는 것을.
2006년에 개봉한 영화이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으로 봤을 때 아쉬운 게 많은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시기를 생각해 보았을 때 지금의 한국 영화와 비교해도 이 영화에는 좋은 점이 많다. 특히, 소재나 영화에 쓰인 은유 등이 좋았는데 내가 좋았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보라색 샅바
동구는 씨름부에 들어가고 나서 빨간색과 파란색 샅바를 함께 빨다가 샅바의 물이 전부 빠져 그 샅바들이 모두 보라색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영화의 초반, 동구가 씨름부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된 이후 감독은 동구에게 샅바를 둘러 주며 무릇 샅바란, '불알'(영화에서 이렇게 나옵니다)의 상징, 거기서 나오는 힘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샅바란, 일종의 '남성성'의 상징인 것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상징되는 샅바의 색을 동구는 모두 허물어버린다. 아마, 경원고 씨름부에서 씨름을 치르는 동안은 '여자'도 '남자'도 상관없어진 것이 아닐까? 이 샅바를 동구만 매는 것이 아닌, 경원고 씨름부 전원이 매게 된다는 것은 여기서는 이 문제만큼은 성별을 떠나는 공간이라는 안전띠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씨름부 내부에서 동구의 성정체성에 대한 의심이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덩치1과는 게이 로맨스의 느낌을 풍기며 그 경계를 자연스레 오간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이 영화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뒤집기
동구는 유독 씨름 기술 중 '뒤집기'에 집착한다. 씨름의 다양한 경기 중에서 '뒤집기'만이 꼭 최고의 기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동구가 그 재미없는 씨름 교과서에서 북 찢어 마돈나의 옆에 뒤집기 사진을 붙여두는 것은 포스터에 적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인생도 한번 '뒤집어보고 싶다'는 동구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자신의 성별을 뒤집겠다는 동구의 다짐을 말 그대로 보여 준 것이 바로 '뒤집기' 기술이다. 심지어 처음 친선 경기에 나갔을 때 뒤집기로 한 판 승부를 노려보던 동구는 무참하게 패배하고 이 때문에 씨름을 그만두려고 한다. 씨름을 그만둔다는 것은 곧 장학금을 포기하고 여자가 되는 길과 멀어진다는 것과 같은 말. 그때, 어쭙잖은 이유로 씨름을 대한다는 이유에서 동구를 싫어하던 주장은 자신만의 균형을 찾으면 언젠가는 너도 뒤집기를 할 수 있게 되리라 조언한다. 힘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닌, 자신만의 균형을 찾을 것. 상대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일 것. 이 말 때문이었는지 동구는 엄마가 남겨둔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차려 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아버지 앞에 선다. 아버지는 동구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구를 흠씬 두들겨 팬다. (정말 말 그대로 두들겨 팬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시대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가장 왜 들어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다. 자신을 혐오하는 존재를 넣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동구는 있는 힘껏, 아버지를 들어 올려 뒤집어 날려 버린다. 땅에 박힌 아버지를 뒤로 하고 동구는 간다. 자신만의 길을. 그리고 결국 자신의 인생을 뒤집는다.
3. 씨름
왜 씨름이었을까? 많고 많은 스포츠 중에 레슬링도 아니고 왜 씨름이었을까? 이 이유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씨름이 '남성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자부 씨름 경기도 당연히 있지만, 응당 씨름은 남자들의 경기로 여겨진다. 아까 감독이 말한 샅바의 정의만 해도 그렇지 않았나.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주인공은 남성성이 가득한 씨름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동구는 계속해서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지만 남자의 몸으로 상대를 쓰러트리고 끝끝내 천하장사가 된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 영화의 제목이 그것을 말해 주지 않던가. 동구는, 남성성을 전복하고 마침내 거기서 승리를 쟁취해 낸 디바이며 마침내 뒤집기를 성공시켜 자신을 긍정하며 자신의 인생으로 힘차게 뛰어들어간 주인공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세상을 저주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은 사랑스럽다. 이 영화가 그저 퀴어 영화로 치부되지 않고 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비단 성소수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 다시 보자. 우리는 모두 남들과는 조금 다르고 어긋나 있다. 그저 세상에 눈에 띄지 않게끔 그것을 잘 가리고 사는 것이다. 손가락질받고 싸움을 걸리기 싫으니까. 그렇지만 동구는 자신을 있는 힘껏 긍정한다. 여기가 여자 탈의실이냐? 놀리는 동급생들을, 변태냐? 며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첫사랑 선생님을 차례차례 지나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주인공을 어느새 우리는 응원하고 있다. 그래, 이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덧붙이자면 씨름이나 레슬링이 상당히 섹슈얼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감독들이 그런 부분까지 염두해서 동구의 종목을 씨름으로 고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가진 좋은 점에 대해 적어 보았다. 영화 외적으로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여기서 동구가 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여성성을 지닌 여성'이다. 립스틱을 바르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여성. 그러나 한편으로 이 여성은 어떻게 취급받는가? 음문이라는 뜻의 '벌버(Vulva)'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고 가슴이 크다며 성추행을 당하는 동구의 상황에서 우리는 여성 혐오를 읽어낸다. (여기서 혐오가 HATE가 아니라는 점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이라면 동의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2006년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가 양호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2년, 세계의 여성들은 이 여성성이 허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을 사람으로, 한 개인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라고 외친다. 동구는 왜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영화는 묻지 않고 동구도 묻지 않기에 이 질문은 할 필요가 없지만 영화가 끝나고 'Like a Virgin'을 부르는 동구가 여자로 행복하게 살았을지는 모르겠다. 하긴, 타인의 행복을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