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9일 수요일의 유치뽕짝
2022년 2월 9일,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개봉했다. 대만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엄청난 열풍을 불고 왔던 데뷔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개봉한 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몬몬몬 몬스터>(2017)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부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작년에 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역시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티켓팅은 서버가 1초 만에 망가질 정도로 치열했던 터라(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분들 보고 계신가요, 서버가 왜 이렇게 유리예요..!!) 작년 부천에선 본 것보다 못 한 작품 하나와 무난한 작품 한 편을 보고 왔던 기억이 난다.
구파도는 사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소설가로 유명했던 인물이라고 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가 기본적으로 자신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이하 <만년>)도 구파도가 2000년대 초반에 썼던 소설 <월로>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사후세계를 묘사하는데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 것 같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였는데 한국의 <신과 함께>를 보고 무척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해서, <만년>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고 영화를 보더라도 아마 <신과 함께>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시작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하는 <만년>의 지옥 시퀀스를 보면 자연스럽게 <신과 함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 경우도 모르고 봤는데 어라랏, <신과 함께>야 뭐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는 어느 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가진동)이 번개를 맞으며 시작한다. "이 번개 맞아 죽을 놈아!"라는 욕을 먹는데 진짜 번개를 맞아 죽어 버린다. 그리고 지옥세계에 가는데, 번개를 맞아 이마가 찢어진 바람에 전생이 읽히지 않는다. 이 지옥에서 모든 망자는 공덕과 죄악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시한 염주를 받게 되는데, 죽는 사람이 하도 많은 바람에 염주가 모두 흰색인 사람만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 물론 검은색이 섞여 있어도 환생할 수 있기는 한데, 검은색 염주의 개수에 따라 바퀴벌레, 해파리, 매미......, 뭐 이런 걸로 환생해야 한다. 그러면 죄악만 쌓아온 사람은 환생의 기회가 없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닌 것이, 지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하얀 염주를 쌓으면 된다.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바로 사람들 간의 인연을 이어 주는 '월하노인'이 되는 것이다. 기억을 잃은 샤오룬은 지옥에서 왜인지 티격태격하게 되는 핑키(왕정)을 만나 파트너를 이루어 환생을 꿈꾼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쫓아다녔던 사랑하는 여인 샤오미(송운화)를 만나 기억을 되찾고 그녀를 다른 누군가와 이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까지 기본 줄거리. 그런데 영화는 이것뿐만 아니라, 사이드 스토리로 이전에는 염라대왕을 보필하는 우두로 활약했으나 500년 전 자신을 죽인 자신의 의형제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귀두성과 메인 스토리가 엮이며 샤오미의 인연 이어 주기는 쉽지 않은 길로 접어든다. 자, 그러면 이 영화가 어땠는지 정리해 본다.
~이 리뷰에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가 부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개봉할 당시에는 128분이었으나 개봉할 때 보니 112분으로 줄었더라고. 기껏해야 16분 잘랐네?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6분은 생각보다 길다. 그 탓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초반에 샤오룬과 핑키가 만나고 월하노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컷 분할이 너무 많고 많은 설명이 필요로 하는 탓에 정신 사납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나처럼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간다고 하면 초반 장면까지는 '이게 대체 뭔 영화지?? 장르가 뭐여?? <그 시절> 같은 영화 아니었음??'하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인 듯하다. 그리고 우리는 <신과 함께>를 보지 않았나? <신과 함께>가 지옥에서 벌어지는 심판을 다루기 때문에 지옥의 모든 방면을 세세하게 짜넣었고, 그 지옥에서 벌이는 심판과 징벌의 내용을 담은 것과 비교하면 <만년>의 지옥은 다소 허술하다. 이들이 월하노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테스트는 솔직히 통과 못하면 멍청이!의 느낌을 줄 정도로 단순하다. 1번은 멈춰 있는 물체에 고리 던지기, 2번은 움직이는 물체에 고리 던지기, 3번은 아무데서나 나타나는 귀신한테 고리 던지기다. 아무리 실을 이어 줘야 한다고 해도 그렇지, 그냥 고리만 던지면 월하노인이 될 수 있는 거냐고요. 단순히 허술하거나 정신없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실 얘네가 시험을 다 통과해서 월하노인이 된 뒤에 인간세계에 나오는 장면까지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오글거린다....... 처음엔 뭔가 극적임을 위해서 주문한 듯한 가진동과 왕정의 연기를 참을 수 없어 몸을 웅크리게 되었다. 이 영화의 후기를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아무래도 이 오글거림에 있는 듯하다. 판타지물에서 세계를 설득하는 것은 감독의 재량인데,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오글거리는 설정에 동의하지 못하면 이 이야기는 그냥 완전 유치뽕짝물이 된다는 말이다. 다행히 대만/일본 콘텐츠에 면역력, 다시 말하면 항마력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여기까지 잘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낫다. 이 세계를 받아들인다면 자, 이제 그 뒤의 이야기를 보자. 이 이야기의 커다란 로그라인은 '샤오룬이 죽은 뒤 월하노인이 되어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좋은 남자와 이어질 수 있도록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자 한다.'이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귀두성 스토리가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이게 대체 왜 부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거냐, 하고 궁금했던 내게 귀두성은 등장하며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일단 대체로 샤오룬, 송운화, 왕정이 등장하는 씬과 다르게 귀두성만 등장하면 갑자기 영화가 엄청 어둡고 잔인해진다. 생각보다 잔인해서 깜짝 놀랐다. ;; 귀두성은 등장해서 자신만의 스토리라인을 가져가는데, 500년 전 자신을 배신한 이들에게 복수를 한다, 는 것이다. 나중에 보면 귀두성이 죽이려고 하는 사람에 '샤오미'도 포함되어 있고 실제로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이게 되면서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얽히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진짜 정신없다. ㅋㅋ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지 않으면 '대체 왜..?? 왜들 그러는 거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귀두성이 등장한 이유도 좀 모호하고 귀두성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도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내 리뷰도 정신없어 보이는 이유다. 영화가, 정신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면 신파를 신파답지 않게 그렸다는 점 정도일까? 아니다. 신파처럼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파를 볼 때, 관객은 세 가지 방향을 취하게 된다. '신파'지만 신파인 줄 모르고 감동받게 되는 경우. 이 경우에는 신파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신파인 줄 알기 때문에 전혀 감동받지 못하고 '뭐야, 감동받으라고 아주 종용을 하네.'하고 팔짱을 끼게 되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신파인 줄 알고서도 엉엉 우는 경우다. 이 영화를 보는 나는 세 번째 관객이었다. 어느 지점이 특별히 감동적이라고 할지는 모르겠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울었던 바람에(저는 고장 난 수도꼭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더니 마스크에 떨어져서 고인 눈물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서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이 영화를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보았다던 G는 "엥? 대체 왜 어디서 운 거지?"했지만 전 눈물이 많이 나더이다. 아마 지금 다시 본다면 옛날처럼 재미있게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시절>처럼 '누군가를 간절하고 소중히 하는 마음' 자체 때문에 그런 듯하다. 사실 <그 시절>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게는 상당히 무례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영화에서 그 소녀는 그저 모두의 짝사랑 상대로 대상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샤오룬은 샤오미의 좋은 친구이자 전생으로부터 샤오미를 사랑해 온 순정남이다. 그는 영화 내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라고 말하며, 그것은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야. 네가 나를 1초만이라도 사랑해 줘도 괜찮아. 나는 그 1초면 됐어. 그렇게 말하는 가진동을 보며 다시 한번 '순정'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아마, 대범하게 사랑했던 핑키가 그런 샤오룬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영화인 법. 정말 싫다는 상대를 쫓아다니며 사랑한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샤오미, 샤오룬, 핑키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작은 동식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가다가도 길가에 달팽이를 죽이지 않는 마음, 개미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매미를 구해 주는 마음,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오래오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마음,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이라면 한편에 있는 법이라고 감독은 믿는 듯하다. 그 메시지는 크레디트에서까지 읽힌다. 솔직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루'를 보며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영화를 봐야 할까? 보지 말아야 할까? 그것은 관객이 선택할 몫이다. 이 영화는 유치하다. 정신없다. 그리고 사실 한편으로는 왜 샤오룬이 굳이 샤오미를 책임지기 위해, 그리고 샤오미를 위해 다른 남자와 엮어 주려고 하는지 설득이 안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없으면 다른 남자라도 엮어 줘서 행복하게 살게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감독이 처음 소설을 썼던 2000년대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20년이나 흐른 지금은 "왜 그러시는 건데요?"하게 된다. 몇 천 줄이 넘는 빨간 실을 터트린 샤오미도 샤오룬에게 묻는다. 왜 니가 아닌 다른 남자와 이어져야 하는 건데? 맞는 말이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꼭 누군가와 연결될 필요는 없다. 현대사회에서 정상 가족의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다만, 연인을 넘어 '인연'의 힘을 믿는다면 이 영화를 다른 시점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 영화에서 월하노인들은 샤오룬과 샤오미를 이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어진다. 샤오룬은 월하노인이 되기 이전에도 자신의 손과 샤오미의 손에 빨간 실을 스스로 엮는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인연을 선택하고 월하노인의 힘이 없을 때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입양하거나 반려자를 선택하거나 그 모든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이 유치한 영화에서 그 점을 읽어내는 관객이 더 많아질 때 외로움의 위기를 맞은 우리 시대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목만큼은 참 잘 지었다. 원래 제목은 월하노인을 뜻하는 <月老(월노)>인데, 이렇게 개봉하지 않은 배급 담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믿지 않더라도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하나라도 마음속에 떠올렸다면, 그것이 아마 지금 당신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아무래도 사랑이다. 그것이 아무리 진부하다더라도.
추신. 이 영화는 갑자기 중간에 <티탄>이 되기도 한다. 보신 분들만 아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