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건 아니건 1 _ 내가 비건을 지속하는 이유
나는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이를 위해 자신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모두’ 라는 것과 ‘확신’이 붙는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명제인지 알고 있음에도, 꽤 비관적인 사람임에도 이 말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천만 명의 시민이 촛불 광장에 나와서 시위했을 때 봤다.
그 중에서도 이런 낙관을 하게 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에 대한 판결에 대한 분노로 노재팬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수입 맥주 1위를 달리고 있던 아사히 맥주는 매대에서 사라졌다. 2년이 지나고 일본 맥주는 시장에서 86% 매출 하락을 기록했다. (참고 기사) 분명 얼마 전까지 세일 기간이면 줄이 늘어서던 유니클로 매장들에는 사람들이 한산했고, 아시아 최대 규모 매장인 명동 유니클로는 문을 닫았다. 그 당시 어떤 네티즌들은 일본 제품을 구별해내기 위해 바코드 번호를 파악하는 법을 공유하며 철저히 노재팬 운동을 했다. (참고 기사) 노재팬 운동에 전 국민의 반이 넘게 참여하고 있다 답했다.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소비 하나에 대한 결과에 의심하지 않았다.
노재팬 운동을 보면서 시민들은 자신의 선택이 세상에 영향을 끼침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일련의 국가적인 단위의 불매 운동을 보면서 의심하기를 멈추기로 했다. ‘나의 실천이 의미가 있을까, 나 하나 소비하지 않는다고 바뀔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의심을 멈추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으니까.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는 스스로 확신하게 만들기로 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의 확신은 이끌어낼 수 있다.
위의 다짐과 낙관은 나의 비건 실천에 대한 다짐이었다. 동물권이란 말이 낯선 세상에서, ‘치느님’이라는 단어가 유머로 쓰이는 세상에서 나라는 한 사람의 변화와 확신이 유효함을 나 스스로 믿기로 했다. 비건도 일종의 불매운동이라면, 폭력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계속 비폭력을 구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거 안 해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내가 쓰지 않는 말이다. 후회는 과거에 했던 것에 대한 후회이기에 과거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후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 역시 “어찌”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 일들이 다음 세대에서 어찌 할 수 있었던 일로 밝혀지기도 한다.
노예제 폐지나, 여성 운동, 수많은 시민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한 몇 대에 걸친 싸움 끝에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며 지금도 계속 대를 이어가며 더 어쩔 수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일이다. 이런 거대한 시대적 변화들은 한 사람의 일생 내에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모든 동물이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그들의 권리와 존재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사회를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내 생에 이들이 그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여기 어찌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고 믿는 인간 동물이 있고,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인간 동물이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어찌할 수 있었던 일로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길고 회의감이 들 때는 가까운 역사를 돌아본다. 2013년만 해도 방송에서 야동을 보는 행위들을 농담처럼 사용하고는 했다.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시대다. 2019년에만 해도 비건 상품을 일상에서 찾기 어려웠다. 2022년의 지금 편의점에는 비건 참치와 마요네즈를 쓴 삼각김밥이 나오고, 비건 화장품 광고가 버스에 붙어 다닌다. 항상 누군가에게 인생에서 처음 보는 채식인이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2, 3번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채식과 관련된 서적들이 늘어났고, 채식 요리 프로그램들도 방영됐다.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나는 다시 확신한다. 나의 비빔국수 위에 계란을 빼달라는 작은 불매는 의미 있다. 노재팬 운동 시기에 사람들이 바코드의 앞 번호를 보며 일본제품을 피했던 것처럼, 알레르기 성분표를 보면서 이들의 죽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음식들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한 변화다.
처음 비건이 됐을 때는 거대한 폭력에 매일 매일 화가 났다. 내가 소비하지 않는 죽음에 비해 하루에 죽어 나가는 축산동물은 너무나 많았다. 채식 메뉴가 개발되고 매대에 들어오는 속도는 느렸다. 작은 낙관들은 커다란 비극 앞에 연약했다. 비관은 눈앞에 널려있고, 낙관은 느리게, 멀리 내다봐야 찾아왔다.
비건이건 아니건, 우리는 거대한 폭력 앞에 비관하기 쉽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붙들어 둔 문장이 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맞서 감옥에서 싸운 그람시가 동생 카를로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던 말이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내가 비축해놓은 의지력을 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해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 있단다.”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된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나의 낙관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의 낙관을 열심히 수집한다. 비관에 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희망을, 낙관을, 꿈을 나눈다.
<비건이건 아니건>은 말 그대로 내가 비건이건! 네가 비건이 아니건! 우리가 조금씩 비건 지향 생활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비거니즘과 조금 더 친해지는 생활,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요.
* 이 글은 녹색연합 월간지 녹색희망 28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