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엄마가 병원에 데려간 자식은 우리 형.
이은숙 설치미술 작가는 1992년부터 '효과적인 부모 역할훈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햇수로 25년이다.
자격증을 딴 후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면 지금쯤 심리학 교수 정도 될듯한 기간이다.
게다가 예술 작가이니 미술치료로 확장하면 꽤나 좋았을 법하다.
그런데 설치미술작가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이 '효과적인 부모 역할훈련 자격증'을 딴것일까?
우리 엄마는 절대로 효과적인 부모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25년 전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 장면
엄마가 형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서던 그 모습
목적지는 신경정신과 병원
그렇다.
형은 어려서부터 엄마의 작품 활동이 못마땅했다.
그 어린 나이에 설치미술은 길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엄마의 작품을 부시기도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난 옆에 있다 그냥 맞았다.
이런 형을 엄마는 정신병원에 데려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병원 담당 의사의 한마디.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고 똑똑합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좀..
그런데 어머니가 좀..
그러니까 우리 형은 지극히 정상에 똑똑하기까지 하니 걱정 없고
엄마가 상태가 안 좋다.. 그래서 치료 좀 받아야겠다..라는 진단을 받아 왔다.
사실 형한테 많이 맞고 자라던 나 또한 내심 형이 좀 상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시 의사가 나를 보지 않은게 다행스럽다.
생각해보면 아래 사진 속 누워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가 맞고
이는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 올바랐음을 뒷받침 해준다.
당시를 회상하며 쓴 이은숙 작가의 글이 있어 아래에 옮긴다.
내 작업에 빠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도 한글 한번 가르쳐 준일이 없고 숙제는 물론 준비물을 챙겨 준 적이 없다. 체육시간이 있는 날 체육복을 안 말려 세탁기 속에 젖어있는 체육복을 보고 우는 아이한테 왜 꼭 체육복을 입어야 하냐며 우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 본 적도 없다. 늦어서 혼나면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알아서 일찍 일어나도록 놔두었다. 나는 자율이라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방종이라 했다. 성적은 중요한 게 아니니 알아서 능력 것 하라고 했는데 4학년이 되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 큰아이가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자 예전과 달라 자기 멋대로다. 무릎을 꿇고 야단을 맞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하는 게 자식 잘 키우는 건 줄 아세요?” 하면서 아빠한테 대들고는 방문을 부서져라 꽝 닫고 나가질 않나, 등치가 나만해져 나를 밀어젖히니 내가 바닥에 나동 그라 지지를 않나, 동생은 공부 안 한다고 마구 때리지를 않나, 더구나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죽도록 만들어놓은 작품을 베란다 밖으로 던지고, 당시 비싸게 작업한 네온 기구들이 내가 없는 사이 깨져있지를 않나 더 이상 내 손아귀에서 놀던 아이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해 아이를 데리고 심리상담을 찾았다. 첫날, 상담 교수님은 아이 따로, 나 따로 각각 얘기를 듣더니 나를 혼자 들어오라고 한다. 초조 한마음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리고 아주 똑똑합니다. 엄마가 상담을 받아야겠습니다.” “네? 제가요?” “국민학교 5학년 아이는 지금 양쪽에 물지게를 지고 동생도 돌보며 힘겹게 가면서 좀 봐달라고 엄마를 쳐다보는데 엄마는 위로를 해주는 게 아니고 거기다 대고 채찍질을 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작품은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해도 되지만 아이는 지금 관계가 빗나가면 평생 힘들어진다”는 선배의 충고. 나는 매해 해오던 개인전을 다음 해로 미루고 상담을 받았다. 당시 상담은 1시간에 5만 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얘기하다 보면 1시간 이후 딱 지나간다. 그것도 선생님이 얘기하는 게 아니고 내 얘기를 눈물 콧물 흐리며 내가 한다. 상담비를 절약하기 위해 상담 가기 전에 내가 할 얘기들을 집에서 정리를 하며 쫙 써 내려가면서 나 자신 스스로를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상담자이며 선생님 역할을 거치니 상담 시간도 많이 절약이 되었다. 아이들한테 참 철없는 모진 엄마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면서 “효과적인 부모 훈련”이란 코스를 등록해 배우는 대로 아이에게 당장 적용해가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입장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며 대화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효과적인 부모 훈련” 이수를 거쳐 내가 가르칠 수도 있는 자격증도 생겼다. 아이들은 커가고, 커가는 아이 따라 배우고 그러면서 같이 큰다.
"이렇게 하는 게 자식 잘 키우는 줄 아세요?"라고 소리치며 문을 부서져라 닫던 형의 모습이 생각난다.
형이 자기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 내가 지켜봐야겠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