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작가아들 의견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를 2시간이 넘게 관람했다.
전시를 보며 3번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중 한 부분이 알베르토의 부인 아네트 자코메티가 남편이 죽은 후 남은 일생을 작품 보존과 아카이브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서랍장 속 정리되지 않은 엄마의 외장하드를 바라보며 이은숙 작가가 작가로서 조명되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멈춰버린 브런치에 로그인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과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눈시울을 붉히던 그 여운을 가지고 방 한 모퉁이에 있는 엄마의 작품을 바라본다. 전혀 손색이 없다. 가벼워 보이고 내구성도 약한 작품이지만, 난 이 작가의 고통과 삶, 그리고 이야기를 이해한다. 그녀의 남은 삶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일까? 자코메티의 작품만큼이나 이은숙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날이 추워 수도가 얼었는지 물이 안 나온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받으면 정말 답답하다.
이은숙 작가는 사실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재능을 보인 작가가 아니다. 그녀 나이 서른, 첫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작업을 하다 전신 화상을 입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작품을 위함이 된 엄마의 글을 옮긴다.
머리카락이 탄 냄새인지, 피부가 탄 냄새인지 역겨운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를 따라다녔다. 내 스스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 물 한 모금조차도 숟가락으로 떠 먹여줘야 했으며 누군가가 24시간 동안 모든 수발을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전시 오픈까지는 아직 5개월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회복해서 작업을 재개하고 개인전 오픈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수개월이 지났고, 퇴원이 아닌 더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큰아이가 병원에 처음으로 나를 보러 왔다. 아이는 오기 전에 엄마의 상태를 여러 번 설명을 듣고 왔다. 달라진 나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나를 보더니 풀 죽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많이 아파? 엄마 주려고 따 왔어요 이거” 하며 진달래 꽃을 작은 고사리 손으로 내민다. 유치원은 잘 다니니? “유치원은 못 가. 할머니 집에서 너무 멀어서. 명호랑 놀면서 내가 명호 잘 보고 있어” ”엄마 빨리 나으세요.” 아이는 곧 떠났고 병실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은 기가 죽어있었다. 아이를 보고 나니 눈물이 고인다. 작은 아이는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 날씨 좋은 봄날, 어린이날에 아이들하고 다 같이 손 잡고 나들이라도 한번 가야 하는데, 병실에서 누워만 있으니. 빨리 힘을 내야지. 그래야 아이들을 다시 보지.
그러나, 수 없이 이어지는 전신 마취에 피부이식 수술, 날이 갈수록 나아진다기보다는 ‘아. 이렇게 죽어가는 거구나’하며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희미해져 갔고 이 세상과 나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는가? 죽은 후 나는 어디로 가나? 영혼이라는 게 있는가?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가?
내가 죽은 후를 생각해 보았다. 내 꿈이었던 아이들, 내가 없어도 나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러면서 커가겠지. 남편도 살아남겠지. 내가 죽으면 남편은 재혼할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왜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그들은 내가 없어도 살아나갈 거야. 내가 하던 작품은 어떻게 되나? 작품은 내가 없으면 스스로 혼자 클 수도,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데. 작품은 내가 살아야 나와 같이 성장하는 것인데. 내 나이 서른에 겪은 불의의 사고는 내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완전히 뒤 흔들어 놨다.
내가 없이는 성장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내 작품을 위해 난 살아남을 이유가 생겼다.
이은숙작가의 주 재료는 실이다.
억압된 실타래에서 풀어져 나오는 실은 자유로움 그 자체이다. 그리고 풀어진 그 실의 모습은 생명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자코메티의 전시장을 나올 때 있던 글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인간이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마 그건 사람이 딱 한번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인간이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진지하고 진실해 질까 라고 상상을 해 봅니다.
한번 죽고 난 그다음엔 어떤 삶을 살 거 같냐고요?
글세요.. 난 지금과 같은 똑같은 일(작업)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다.
이은숙 작가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일을 반복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