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아들 Jan 30. 2018

자코메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작가

지극히 주관적인 작가아들 의견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를 2시간이 넘게 관람했다.


전시를 보며 3번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중 한 부분이 알베르토의 부인 아네트 자코메티가 남편이 죽은 후 남은 일생을 작품 보존과 아카이브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서랍장 속 정리되지 않은 엄마의 외장하드를 바라보며 이은숙 작가가 작가로서 조명되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멈춰버린 브런치에 로그인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과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눈시울을 붉히던 그 여운을 가지고 방 한 모퉁이에 있는 엄마의 작품을 바라본다. 전혀 손색이 없다. 가벼워 보이고 내구성도 약한 작품이지만, 난 이 작가의 고통과 삶, 그리고 이야기를 이해한다.  그녀의 남은 삶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일까? 자코메티의 작품만큼이나 이은숙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Walking Man (Left),    Walking Mom (Right)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날이 추워 수도가 얼었는지 물이 안 나온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받으면 정말 답답하다.

정말 답답하다.

이은숙 작가는 사실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재능을 보인 작가가 아니다. 그녀 나이 서른, 첫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작업을 하다 전신 화상을 입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작품을 위함이 된 엄마의 글을 옮긴다.


머리카락이 탄 냄새인지, 피부가 탄 냄새인지 역겨운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를 따라다녔다. 내 스스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 물 한 모금조차도 숟가락으로 떠 먹여줘야 했으며 누군가가 24시간 동안 모든 수발을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전시 오픈까지는 아직 5개월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회복해서 작업을 재개하고 개인전 오픈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수개월이 지났고, 퇴원이 아닌 더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큰아이가 병원에 처음으로 나를 보러 왔다. 아이는 오기 전에 엄마의 상태를 여러 번 설명을 듣고 왔다. 달라진 나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나를 보더니 풀 죽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많이 아파? 엄마 주려고 따 왔어요 이거” 하며 진달래 꽃을 작은 고사리 손으로 내민다. 유치원은 잘 다니니?  “유치원은 못 가. 할머니 집에서 너무 멀어서. 명호랑 놀면서 내가 명호 잘 보고 있어” ”엄마 빨리 나으세요.” 아이는 곧 떠났고 병실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은 기가 죽어있었다.  아이를 보고 나니 눈물이 고인다. 작은 아이는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 날씨 좋은 봄날, 어린이날에 아이들하고 다 같이 손 잡고 나들이라도 한번 가야 하는데, 병실에서 누워만 있으니. 빨리 힘을 내야지. 그래야 아이들을 다시 보지.


그러나, 수 없이 이어지는 전신 마취에 피부이식 수술, 날이 갈수록 나아진다기보다는 ‘아. 이렇게 죽어가는 거구나’하며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희미해져 갔고 이 세상과 나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는가? 죽은 후 나는 어디로 가나?  영혼이라는 게 있는가?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가?

내가 죽은 후를 생각해 보았다. 내 꿈이었던 아이들, 내가 없어도 나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러면서 커가겠지. 남편도 살아남겠지. 내가 죽으면 남편은 재혼할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왜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그들은 내가 없어도 살아나갈 거야. 내가 하던 작품은 어떻게 되나? 작품은 내가 없으면 스스로 혼자 클 수도,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데. 작품은 내가 살아야 나와 같이 성장하는 것인데. 내 나이 서른에 겪은 불의의 사고는 내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완전히 뒤 흔들어 놨다.

내가 없이는 성장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내 작품을 위해 난 살아남을 이유가 생겼다.
Birth, 1989

이은숙작가의 주 재료는 실이다.

억압된 실타래에서 풀어져 나오는 실은 자유로움 그 자체이다. 그리고 풀어진 그 실의 모습은 생명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자코메티의 전시장을 나올 때 있던 글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인간이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마 그건 사람이 딱 한번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인간이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진지하고 진실해 질까 라고 상상을 해 봅니다.

한번 죽고 난 그다음엔 어떤 삶을 살 거 같냐고요?

글세요.. 난 지금과 같은 똑같은 일(작업)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다.

이은숙 작가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일을 반복할것이다.


www.instagram.com/eunsooklee.artist

작가의 이전글 자식을 정신과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던 우리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