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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27. 2017

뮤지컬 <캣츠>

변화의 뮤지컬


캣츠에 대한 명확한 기억은, 10살 때 학교에서 보여준 비디오이다. 1998년 TV 영화를 통해 소개되어 DVD화 된 뮤지컬 <캣츠>를 본 10살의 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 명을 그때서야 알게 된다. (그 이전에 분명히 어린이 뮤지컬 등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은 것은 10살 때이다.)


럼 텀 터거의 넘버가 어린 내 마음에 쿡 박히게 되면서 "뮤지컬은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진 출처: 캣츠 뮤지컬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그로부터 10년이 넘은 뒤에야, 실제로 <캣츠>를 관람하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캣츠> 뿐 아니라 훨씬 많은 작품들을 안다. 최초의 기억에 있는 <캣츠>는 화려함이란 이런 것이고, 무대는 이렇게 화려할 수 있으며, 그걸 영상에, 연출을 해서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20대가 되어 본 <캣츠>에서는 성경적 메타포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라는 생각을 드문드문할 수 있는 장치들이 보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아멘/

스토리 라인이 작가의 문화권의 신화에 기반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메타포가 <캣츠>에서견되는 것은 크게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드 듀터러노미는 일종의 ‘그분’, 즉 신.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그리자벨라에게 다가가 손을 건네는 빅토리아는 예언자로 해석될 여지가 보인다. 만약 좀더 확대해석한다면, 빅토리아는 올드 듀터러노미의 의사대로 움직이며, 가장 순수한 인간인 ‘예수’로까지도 해석이 가능하다. 젤리클 고양이들은 자신들이 개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형적힌 선민의 정서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자벨라는, 그 선택된 젤리클 고양이들 중에서도 가장 비천하고 낮은 존재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막달라 마리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 <캣츠> 팬들의 세계관과 원작 <지혜로운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에서의 올드 듀터러노미는 "선지자"로 표현된다. (사진 출처: 캣츠 뮤지컬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애초에 국내에서만 존재하는 ‘그리자벨라는 매춘부 고양이이다’ 라는 해석을 만든, ‘<캣츠>는 <지져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유사한 플롯을 가졌다’라는 가정 위에 존재하는 것이고, 글쓴이 본인이 느낀 바이기 때문에 사실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캣츠>라는 뮤지컬이 ‘가장 비천한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마지막에는 구원받는다’라는 내용이 끝인데, 그 이외의 이야기들은 사실 팬들이 쓴 픽션들에 기초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원작자들은 작품의 해석에 대해서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캣츠>의 변화/


제니 애니닷은 기존에 귀부인적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제는 사령관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사진 출처: 캣츠 뮤지컬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캣츠의 대표적인 변화는 우선 검비 고양이, 즉 ‘제니 애니닷’의 탭댄스의 추가가 있다.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봤지만 ‘첫’ <캣츠> 였던 1998년도의 <캣츠>에는 해당 장면이 없다.)


아직도 캣츠 공식 홈페이지에는 힙합 고양이로 나와있다.(사진 출처: Cats the Musical 공식 홈페이지 Character 소개)


2014년도 버전(런던)에서 보였던 변화 중 일부가 다시 원작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 2014년 재연한 캣츠에서의 럼 텀 터거는 락스타 고양이에서 힙합(!) 고양이가 되었다. 물론 그 버전을 보진 못했고, 이후 2016년 브로드웨이 재연 기사에서도 관련한 기사가 보였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럼 텀 터거는 락스타 고양이로 돌아온 모양.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보게 된다면 힙합 버전의 럼 텀 터거도 궁금하다. (물론 궁금하다는 것이지, 계속 유지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내 럼 텀 터거는 영원히 락스타이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변화이지만, TV 영화(1998)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그로울타이거’ 넘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관련해서 기억이 없어 찾아보니, 이 넘버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넘버인 모양인지, 간간히 불만 섞인 <캣츠> 팬들의 불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이번 버전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아예 국내에서 하는 공연의 버전은 국내 관객을 위해 여러번 수정을 거쳤다는 기사도 봤다.)

어찌되었건, 가장 파격적이었던 ‘컨셉 뮤지컬’ <캣츠>는 이렇게 변화하며 살아남고 있다. (비록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타이틀은 <오페라의 유령>에게 넘겨줬지만) 이번에 내한한 <캣츠>를 보면서 ‘내 시각 또한 꾸준히 변화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 뭐, 취향에 안 맞는다는 (우리 엄마나 동생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첫번째’라는 기억은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캣츠> 또한 내게는 영원히 지속되는 나의 판타지, 나의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중의, 먼 미래의 <캣츠> 또한 내가 찾아 보러갈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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