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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대겸 Feb 08. 2020

VR특집 휴먼 다큐 너를 만났다.

초월적 가상현실에 대해

근 1년 만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는군요.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때문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최근 mbc에서 VR 관련 방송을 하는 것을 봤는데 기획이 좋은 것 같고 또 제 연구 주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짧게 몇 자 적으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병으로 죽은 딸을 디지털 휴먼화 하여 7개월의 제작 기간 끝에 엄마 죽은 딸을 가상공간 속에서 만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방송 전부터 온/오프 라인에서 굉장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더라고요. 이 콘텐츠가 VR이 대중적으로 친근해지는 데 있어서 좋은 기능을 할 것 같아서 개념적으로 설명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오랜만에 블로그를 켰습니다.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텔레 프레즌스

한국말로 하면 '원격 현장감' 정도 될 듯합니다. 스카이프처럼 원격 화상통화가 일반화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 영상으로 원격의 대상과 소통하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상통화 같은 기술 이면에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적인 개념은 물리적으로 원격의 '장소'에 가는 것이 물리적인 조건이나 거리에 의해 쉽지 않을 때 이러한 물리적인 조건들을 뛰어넘는 기술로써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존재의 공간에 대한 원격 현장감을 구현하는데 쓰였습니다.

출처: mbc

기술적으로 텔레프레즌스가 적용된 것은 아폴로 13호가 최초 일수 있습니다. 우주선의 외부를 내부와 연결하는 통신 기술 덕택에 최초의 원격 현장감이 구현된 것입니다. 외부의 영상을 내부 엔지니어들에게 보여주는 통신 기술이 오늘날 텔레비전의 시초가 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화상통화, 소셜 VR과 같은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원격 현장감의 기원이기도 한데 이는 텔레비전과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의 관련성은 원격으로 영상을 송출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하지만 이때 원격의 대상과 소통한다거나 명령을 내린다는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주선 내부의 엔지니어가 외부의 영상을 보고 입력/명령을 내리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당시 쓰인 사례가 오늘날의 원격 현장감의 시초로 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주로 탐사선 내부 엔지니어들이 외부 상황을 보고 간단한 명령을 내리는 용도로 쓰인 사례

 기술적으로는 그렇고요. 원격 현장감을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은 AI의 선구자로 알려진 마빈 민스키에 의해서입니다. 민스키의 최초의 논문은 기술에 대한 실증 논문은 아니고, 만약 근 미래에 이러이러한 기술이 가능해지면 원격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데 이때 에너지와 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떠한 혁신성이 기대되는가 하는 관점을 다룬 논문입니다. 그가 주장한 개념은 오늘날 산업용 VR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이 개념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원격 현장감으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것은 일종의 내추럴 인터 페이스 NUI라고 봅니다. 저는 생산적 측면에서도 감성, 감정적 소통이 때로는 이성적 판단에 의한 행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며 직관성이 중요한 역활을 한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의 아버지이자 텔레프레즌스에 대한 개념을 세운 Marvin Minsky


오늘날 가상현실, VR의 장점은 공간이나 사물을 기존의 평면 이미지가 아닌 3차원 이미지로 구현하여 원격 현장감을 높인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3차원 이미지로 구현할 때 대부분의 경우에 쓰이는 방식은 아바타를 활용한 방식인데 이는 유저 인터페이스 개념으로 보면 그래픽 기반 유저 인터페이스 GUI와 내추럴 유저 인터페이스 NUI 사이에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의 몰입의 정도로 어느 용어에 더 가까운지가 결정됩니다. 아바타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죠.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로써 '강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소통에서 쓰이는 주요 수단 중 하나가 고대 신비주의적 개념을 갖고 있는 단어인 겁니다. 인도네시아처럼 힌두교를 믿는 나라를 가면 다양한 조각상들을 보고 있는데 이는 비누슈와 같은 상위 신의 존재가 강림한 아바타입니다. 사물에 실제 하진 않지만 영적 존재가 있다고 믿는 개념으로부터 아바타의 개념을 가져온 것입니다.

디지털 공간 내에서 어떠한 존재의 대리인으로 몰입감이 극단적으로 낮다면 단순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되는 것이고, 인물의 대리인으로 상당한 몰입감을 갖고 있다면 NUI의 일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 휴먼화 기술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너를 만났다'에 쓰인 디지털 휴먼에 대해서 짧게 요약하면, NUI로써 몰입감을 갖기 위한 일명 언카니 벨리 uncanny valley를 콘텐츠의 구현 기술이 넘었는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데- 망자의 제한적인 정보들만을 활용하므로- 엄마와 딸의 관계 문맥은 보는 이에게도 실제의 대리인으로 아바타에 대한 불신의 거리를 단번에 메우기에 충분했습니다.


2. 가상현실의 초월성

본 글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혼과 산사람이 만나는 본 콘텐츠의 신비주의적 체험이 실감 매체에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는 '초월' transdence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를 만났다'에서 왜 산 자와 죽은 자의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 낯설면서도 또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웠을까요? 저는 이 이유가 VR의 기하학적 공간 형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가상현실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보면 땅 아래가 없는 원형 돔인 로툰다와 가장 흡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사 크기의 이미지에 둘러싸이는 공간은 기원전부터 있었는데 개인적 판타지를 구현한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간은 그림의 대상인 신을 환영적으로 체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Villa of mysteries와 같은 공간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체험자들이 환각상태에 빠지기 위해 약물과 같은 수단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승에 살고 있는 체험자가 신계의 존재와 만나는 초월적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

기독교 문화가 발생한 이후 우상숭배는 금기시되었고 신의 존재는 묵상이나 빛의 존재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판테온 신전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초기에 판테온 신전은 신을 묵상을 통해서 영접하는 공간이었다가 중세 이후로는 망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바뀌었죠. 현대 사회에서 로툰다는 역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간이나 납골당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돔 위쪽에 난 구멍은 오큘러스 (눈)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용도가 있는데 빛을 통해 영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구현하는 것과 제사에 쓰이는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yad vashem의 이름의 방입니다. 로툰다 내부에는 500명의 희생자 사진이, 옆면 에는 모든 희생자의 이름이 든 파일들이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로툰다가 현대 사회의 건축양식으로 쓰일 때의 역할입니다. '너를 만났다'와 같이 디지털 휴먼화 한 형태는 아니지만 현대사회의 로툰다는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고 영을 기리는 초월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죽은 사람의 형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느냐 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것은 망자에 대한 산자의 감정적 이입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이렇듯 반구형 환영 공간에서 산자가 망자를 만나는 행위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반구형 환영공간은 일종의 인터페이스로 기능해 왔습니다.


 VR 장비를 통하지 않더라도 로툰다 공간은 오래전부터 체험자를 이 생에서 가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공간을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물리적 공간에서 망자와 산자의 조우 보다 가상공간에서 이러한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은 그곳에서는 망자와 산자 모두 가상의 존재이며 위치의 상대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망자와 동등한 지위로 가상공간에 있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운 것이죠.


저는 죽은 자를 산자가 기억해주는 행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로이 에스콧이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상호작용을 축축한 매체 Moist media라고 불렀던 것처럼, 가상현실은 차갑고 냉정한 미디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따뜻한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실감형 미디어가 앞으로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사람을 만나고, 또 여러 명이 같이 지나간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 봅니다.


출처: mbc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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