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하는 게 미니멀 캠퍼인 걸까

전기차를 사버린 미니멀 캠퍼 등장

by 소서

언제부턴가 필요 없는 물건이 집에 있는 게 싫었다. 물건은 제 용도에 맞게 쓰여야 하고, 사용하지 않는 건 불필요하다 여겼다. 엄청난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넘쳐나는 소비 속에서 적어도 ‘합리적 소비’를 하고 싶었다. 20대에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짐이 늘어날수록 삶이 불편해지는 걸 몸소 겪으면서, 자연스레 최소한의 물건만 두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며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한 뒤,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겼다. 그때부터 이 습관은 더욱 단단해졌다.


캠핑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9년이 넘었다. 그렇지만 내 캠핑 장비를 언급하면 아마 초보 캠퍼보다도 못할 것이다. 나에게 차박은 그저 이불 몇 개 챙겨 한적한 곳에 가서 맥주 한잔 마시고, 아침 햇살에 눈을 뜨는 정도의 일이다. 평탄화 보드를 산 건 4년이 지나서였고, 그 이후 자충매트 정도만 사서 차박을 다녔다. 그나마도 밤이가 오고 나서야 조금씩 장비가 늘었다. 작년엔 겨울에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침낭과 작은 파워뱅크와 전기매트를 추가했다.


그리고 결국, 올해 전기차를 계약했다.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는 있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밤이를 차에 두어야 할 때가 많다. 휴게소에서 강아지가 있으면 내부 시설은 물론, 화장실도 이용하기 어렵다. 전화로 ‘가능하다’고 확인받고 찾아가도 중형견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선선한 날이라면 잠깐 혼자 두고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여름이 길어진 지금의 한국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여행할 수 있는 계절이 너무 짧아진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건 필요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기변을 선택했다.


출고를 기다리며 전기차 차박 카페를 기웃거리다 보니, 정말 세상에는 놀라운 사람들이 많았다. 냉장고, 꼬리 텐트, TV, 에어프라이어… 나는 그저 이불 덮고 자는 사람인데, 그들의 차는 거의 이동형 주택이었다. 나름 충만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장비 축에도 들지 않았다.


예전에 친구 따라 처음 캠핑장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차박만 하던 내가 캠핑을 자주 다니는 친구를 따라나섰는데, SUV 뒷자리를 가득 채운 짐들을 보고 기겁했다. 하지만 그 짐들은 모두 의미가 있었고, 덕분에 너무 편한 캠핑을 했다. 텐트를 치고 정리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친구가 같이 캠핑하자고 권했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난 이런 짐을 이고 지고 살 용기가 없어.” 이것만 보면 나는 명확하게 미니멀을 추구한다.


그런데 결국 나는 전기차를 사버린 미니멀 캠퍼가 되었다. 가장 비싼 장비를 마련해 버린 셈이다. 요즘은 차가 출고되면 뒷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종종 상상한다. 순정 그대로, 지금처럼 단출하게 둘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며 장비를 하나둘 들이게 될까.


스스로도 궁금하다. 진짜 미니멀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은 필요하고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사서 충분히 활용하는 것인데, 지금의 나는 미니멀을 추구하고 있는 게 맞을까?


내년 이맘때즈음 다시 내 캠핑 스타일을 회고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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