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선자령 천천히 스미던

조용히 닮아가다

by 소서


그날은 폭우가 내렸다.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휴게소까지 가는 길, 이 여행이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버지와 밤이가 처음 만난 건 그보다 몇 달 전이었다. 내가 강아지를 입양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겸사겸사 얼굴이라도 보자며 서울로 올라오셨다. 평소엔 강아지에 별 관심이 없던 분이었는데, 애교 많은 털뭉치 앞에서 금세 마음이 녹은 듯했다.

그날 나는 약속이 있어 잠시 집을 비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밤이는 내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조용히 애교를 부렸다고 했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진 모르지만, 아버지가 밤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전화를 걸면 아버지는 늘 “밤이는 뭐 하냐?”고 물었다. 질문이 내가 아니라 밤이를 향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오랜만에 오는 주말에 시간이 빈다고 했다. 나도 내심 바람을 쐬고 싶던 참이라 즉흥적으로 강원도에서 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에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폭우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대로 휴게소에서 만났다. 너무 세차게 내리는 비에 어이가 없어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창문만 살짝 내려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냥 웃었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와 맥주를 사고, 급하게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안주는 생밤이었다. 생밤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밤이랑 첫 여행인데 밤은 사야지.” 아버지의 엉뚱한 말에 결국 웃으며 샀다. 아버지와 사소한 말 한마디를 나누며 웃던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다음날, 비가 그쳤다. 자욱하던 안개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열렸다.

우리는 선자령으로 향했다.

나는 원래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하지만 밤이가 산에서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을 느낀 뒤로는 주말마다 동네 뒷산, 서울 근교 산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지난해 정년퇴직 후 심심하다며 등산을 즐겨 다니셨다. 1년 내내 산을 오르다, 혼자 다니는 게 적적하다며 다시 일을 시작하신 참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취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가장 앞서서 걸었다. 그 뒤를 밤이가 따르고, 나는 그 뒤에서 밤이의 줄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 젖은 흙냄새, 차가운 공기,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하얀 꼬리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서로의 침묵이 오히려 대화처럼 느껴졌다.

선자령의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비가 그치고 난 뒤, 남은 건 고요함이었다.


함께 걸음으로써,

같은 속도로 걷는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스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