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 Nov 01. 2024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내 집 마련의 간절함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적당히 걸으면서 소화도 시키고 겸사겸사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서 사무실에 복귀할 생각으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걸을 때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하늘이 맑고 예뻐서 시선을 조금 위로 두고 걷다가 건물 화단의 키 낮은 식물과 건물 벽을 지지대 삼아 집을 짓고 있는 거미가 눈에 띄었다. 


나는 곤충류와 파충류, 절지동물을 무서워한다. 특히 다리의 갯수가 많은 거미, 개미, 사마귀, 귀뚜라미, 송충이, 그리마(돈벌레), 바퀴벌레를 정말 무서워하고, 대체로 다들 좋아하는 나비와 잠자리도 제법 무서워한다. 후자는 왜 무서워하는가. 나비를 가까이서 본 일이 있다면 날 이해하실 수 있다. 

의외로...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다만, 예전엔 혐오와 공포가 뒤섞여 무서웠다면 요즘은 '서로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 잘 살자... 근데... w정말 미안한데... 조금만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다...' 정도의 느낌으로 무서워한다. 더 이상 이 친구들이 혐오스럽지는 않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바퀴벌레는... 아직... 온전히 혐오를 다 덜어내진 못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 덕이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알면 사랑한다고 하셨던가. 

나는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절대 아님을,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야 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미와 사마귀와 바퀴벌레 등등을 지구에서 몰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으면서 어우러짐을 이해한다고 여겼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낮에 거대한 집을 짓고 있는 거미를 발견했다. 예전의 막연했던 혐오가 거둬지고 나니까 조금 다른 시선으로 집 짓는 거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신기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자연의 신비라던가 하는 감상보다도 가장 먼저, 부러웠다니. 

무엇이 부러웠는가.

거리낌 없이 원하는 공간에 자기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거미의 삶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인간처럼 내 집 마련에 끙끙댈 걱정도 없고 남의 집 세 들어 살기 위한 전세금 마련할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전세사기와 같은 재산손해를 걱정해야 할 일도 없을 것이고 그저 이 장소가 집을 짓기에 적당한가 아닌가만 판단하면 그때부터 거미줄을 엮으면 된다. 이 얼마나 부러운 삶인가...

물론, 이 거미 친구는 인간의 눈에 띄기 너무 쉬운 위치에 집을 지은 탓에 언제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게 불행일 수 있겠다. 거미에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거미가 그런 것까지 예측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 집을 지으면 거대한 동물에게 생명과 집을 동시에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아마 할 수 없었겠지. 그저 바라건대 건물 관리인이 혹은 청소를 담당하시는 분이 측은지심을 가져주시길 기도해 볼 뿐이다.


거미도, 새도, 지렁이도, 개미도 전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 때로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짐승 앞에 거역할 수 없는 위기도 맞닥뜨리지만 어쨌든 돈 걱정 없이 안식처를 마련해 살아간다.


오로지 인간만이, 내 집 마련에 온갖가지 시련을 동반한다. 내 집을 마련하기나 하면 불행 중 다행인 일이다. 대한민국 인류의 과반 이상은 남의 집을 빌려 세 들어 살면서 한평생 모은 전재산이 언제 잿가루가 되어 휘날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주거불안정을 겪으며 살게 되었는가.

집은 한 가구당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것일진대 그저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살지도 않을 집을 돈 많은 이들이 마구 독점한다.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은 빌고 빌어 겨우 내 몸 하나 뉘일 곳을 얻는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중략-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ㆍ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35조 ①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③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모든 국민이 정말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있는가. 거주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이행하고 있는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거미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낮에 봤던 거미처럼 자유롭고 쾌적하게 안식처를 확보하며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몇이나 될 것인가. 

몹시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덩어리들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