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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원 J Nov 04. 2023

다 같이 잘 살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

팬데믹이 밝혀낸 도시의 취약성과 불균형에 대한 담론 속에서

#커리어를 통한 세상 기록 1


감사한 기회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임팩트 투자자 컨퍼런스 SOCAP23에 참여했다. 이곳에서는 임팩트 섹터, 쉽게 말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선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생태계의 플레이어들이 세션을 통해 자신들의 케이스를 소개하거나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들이 마련된다. SOCAP은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려왔는데, 코로나가 기존의 도시 문제들을 가속화시키면서, 요즘 뉴스에서 보이는 '무서운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이 만들어짐에 따라 이를 주제로 한 패널 토의가 이루어졌다.


팬데믹 이전의 샌프란시스코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 '아름다운 관광지', 와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 많았다. 다만 코로나를 겪으며 도시는 점점 비어갔고, 빈 공간으로 홈리스들이 대거 몰려들며 무분별한 통제 속 마약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걱정되는 지역, 안타까운 곳'이라는 부정적 키워드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이번 SOCAP에 참여하기 위해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행사가 개최되던 지난 며칠간 변화된 샌프란시스코를 직접 경험했는데, 그들에게 도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인상을 물으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가 '홈리스'였다. 눈에 띄게 늘어난 '홈리스'가 현상이라면, 이로 인한 표면적인 문제로는 그로 인한 도시 거주자의 안전이나 마약 문제가, 반대로 이런 현상이 불거진 구조적인 문제를 탐색해 보면 결국 주거 안정성과 오피스 공실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피스 공실이 많아지면서 떠오르는 솔루션 중 '거주지와 오피스 전환'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존의 (구매 가능한) 주거 부족 문제와 오피스 공실 문제를 혼합하여, 공실로 남아있는 오피스를 거주지로 바꾸는 움직임이 있는데,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기존의 오피스 빌딩의 구조상 거주지로 사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지점인데, 따라서 전환을 하려면 빌딩이 올라간 뒤 전환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공사 전부터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니까 한마디로 오피스 그만 세우고 주거시설 세우라는 건가) 이에 대한 보완적인 개념으로 역사적(오래된) 건물을 전환하는 방법을 언급한다. 찾아보니 꽤나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 같아 보이긴 하는데, 주거 안정성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컨텍스트가 약간 달라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한 패널은 홈리스가 생겨나는 이유를 굉장히 자세히 분석한 <Homelessness is a Housing Problem>라는 도서를 추천했다. 결론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 현상인 '홈리스'에서 시작해서 어떤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을지를 파고들어 탐구해 나가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부동산 섹터에 있는 패널로서 한 가지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었다. 가령 문제가 크고 작느냐를 따지는 것은 단순히 지역의 거주자 대 홈리스 비율로 보는 것과, 그 인원에게 거주가능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부동산 문제로 접근했을 때 문제의 규모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4,000명의 홈리스는 전체 거주 인구에 비교해 보면 굉장히 작은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이들이 실질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기존 부동산 파이프 라인에 4,000개 유닛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스케일이 달라집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도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어, 이게 '문제'그 자체이기보다는 결국 '미래의 일의 모습'으로 향하는 변화에서 온 과도기적 현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제 현상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도시를 정의하고 바라보던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의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구조를 쌓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도시의 모습은 점점 하이브리드화 되는 업무 환경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크고 거대한 물리적 개념의 본사 건물을 마련하는 것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 팬데믹 등 예측불가한 문제들로 인한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변화를 직원들도 옹호하고 선호한다.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주거비용을 조정하기 위해 점점 교외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긴다. 그렇다면 미래의 모습은 '비도시화'인가? 단순히 비도시화 움직임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오류일 수 있다. '도시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한 패널의 말처럼 그냥 잠깐의 트렌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관점을 바꿔보자면 아예 '도시'의 정의 자체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상상의 아고라에서는 이런 교외지역과 도심 지역 간의 다이내믹을 포괄하는 것 까지도 '미래의 도시 모습'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걸.



솔루션을 위해


단순히 도시 문제가 어떤 치명적인 crisis(위기)로 포장되어선 안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Crisis라는 단어는 결국 잘 '판매'되는 단어일 뿐이고, 표면에 드러난 문제의 이면에 있는 구조적이고 방대한 문제를 단순화시켜버리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 도시 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던 문제이고, 따라서 단어를 배제한 '주거 문제'와 앞서 언급된 '오피스 공간이라는 개념의 변화' 혹은 더 나아가 '미래의 도시의 모습'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패널들은 '포괄적 해법의 필요성'에 대해서 우선 언급했다. 이 도시문제를 '암'이라는 질병과 비교했는데, 결국 암이라는 질병은 통상적으로 표기하길 신체의 한 부위에서 발병한 질병으로 소통하나 사실상 우리의 몸 전체가 암이라는 질병에 걸린 상태이며, 따라서 특정 부위를 조지는(?) 방사선 치료법은 결국 우리의 몸이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되도록 만들 뿐이며 전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동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밸류체인', 그리고 '시스템 차원'에서의 문제 해결 방법을 주제로 진행된 내용들과 일맥 상통하는 의견이었다.


부동산 영리 섹터 혹은 사모펀드의 주체로서 세 가지 철칙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패널은 덧붙였다. 자신들의 투자 행위가 가져오는 경제적 수익이나 손실 외의 예상치 못한 거시적 차원의 결과들을 분석해야 하고, 커뮤니티로부터 뺏어낸 가치(extracted value)가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알아야 하며, 커뮤니티를 번영시킬 수 있는 시각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몇 가지 개인적인 배움을 남겨보고 싶었는데, 먼저 Value Extraction에 대한 개념이다. 나는 이 개념을 처음 알았는데,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Value Creation을 통해 쉽게 설명해 보자면, 전자는 기 존재하는 크기의 파이에서 더 큰 파이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체적인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 Value Extraction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수익(return)을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동일한 가치 위해 수당을 얹어 추가적인 수익을 끌어오는 것, 정말 말 그대로 추출(Extraction)이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추출을 당하게 되고, 결국 '이기는 놈'과 '지는 놈'으로 구분되는 운동장이 생겨난다.(그리고 inequality의 문제가 대두된다.) Value Creation은 반대로 이 운동장을 win-win으로 만들자는 개념이다. 가치가 한정된 세상에서, 이를 분배하는 방법으로는, 보다 심플한 Extraction 모델로 플레이어들이 점점 집착할 수 있는데, 이 개념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다시 생태계와 커뮤니티의 담론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  


결국 커뮤니티를 번영하게 만드는 시각에서의 투자는, 생태계의 또 다른 이해관계자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가치를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데 꼭 필요한 관점(Lens)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멋진 샌프란시스코의 공실률은 34%정도라고 한다.


생각 마무리하기


집이 없어지면 인구가 감소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반대로 집이 생기면 사람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이 들어온다. 결국 플레이어 모두가 윈윈 하는 게임이다. 자금의 흐름이 임팩트로 향하면, 조금은 느리고 많이 복잡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균형으로 다 같이 잘 살 수는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포함하여 이후 계속되는 기후위기와 전쟁과 같은 이슈들도 결국은 나를 똑같은 결론으로 이끈다. 결국 모두가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세상은 알게 모르게 너무나도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딘가가 과도하게 불균형해지면 결국 망가진다.


망가진 세상은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결국 그걸 풀어갈 수 있는 주체도 사람이다. 다양한 커뮤니티 경험을 하면서 난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다 같이 잘 살고자 하는 커뮤니티 프렌들리 마인드가 있다'라고 믿게 되었는데, 이런 임팩트 섹터 컨퍼런스에 참여하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 자꾸만 그런 나이브한 믿음들이 더 확고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섹터에 들어온 동기를 항상 리마인드 하게 된다. 난 무조건 '다 같이 잘 살고 말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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