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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원 J Sep 21. 2024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을때 그냥 눈물이 미친 듯이 나더라

스물 아홉, 내 인생 첫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를 찾아가는 기록들 8

2024. 06. 23


20대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한다. 어릴적부터 집안에 직장인이 없던 나는 너무도 자연스레 대학원 진학만을 생각했고, 따라서 스물 네 살, 남들보다 한참 뒤에야 취업 준비를 시작하며 쉼 없이 달렸던 것 같다. 세 번의 인턴, 그 과정에서 교육 연수와 대외 활동을 겸했고, 27살 취준에 성공했다.


너무 급하게만 달려온 나머지 나에 대한 이해도는 현저히 낮았고, 그래서 나는 계속 뭔가 헛발딛음을 하는 듯한 돌고 도는 인생, 정답이 없는 고민과 우울감, 남들과의 비교와 조급함에 시달렸다. 작고 큰 혼란들이 나를 갉아먹었고, 그것에 삼켜질 위험 앞에서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나를 찾고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 위해 퇴사라는 변화를 감행했다.


절대로 회사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대기업 취업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반항 없이 순종하던 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이맘때 즈음에는 취업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가 던져진 이 시스템 속에서 높은 확률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계층, 컴퍼스로 재어놓은 듯한 그 범위 밖으로 크게 이동할 수 없다. 생각은 고착화되고, 편안함에 안주한다. 그래서 그 주어진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스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개인적 사고의 뿌리, 즉 철학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해서 살아간다‘면, 이 욕심 많은 나란 놈이 얼마나 큰 정신적 좌절감에 무너질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이직을 하고 1년이 조금 넘었다. 감사하게도 난 이 곳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았고, 넓은 범위의 일을 경험했고, 수많은 문화적 배경의 혹은 직위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알게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는 넓어진 듯 하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 뒤부터 나는 계속 스스로에 대한 인생 철학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나에 대한 색과 향이 점점 진해지는 과정에서도 나는 여전히 흔들림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글을 씀으로써 잡음을 털어내고, 이를 해결할 방법들을 고민한다.


일상 중 좋은 문장이 생각나거나, 좋은 질문이나 글감이 떠오르면 (한마디로 고민이 많을 때) 나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글을 쓰고 발행한다. 오늘은 이 글들이 어느정도 종합되어 나온 산출물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은 자신의 인생철학을 완성하는데,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철학적으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 같다. 오늘의 글은 위 문장으로 만들어낸 그래프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래는 챗 GPT에 요청한 ‘인생철학과 시간’의 상관관계와 그 과정에서 생기는 흔들림을 시각화한 그래프이다. 그냥 그려보고 싶었다.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어려움은 하늘색 음영 그래프로 표시 되었다. 그리고 빨간 점선은 그래프에 나오듯, 불안정성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요동의 진폭과 빈도는 줄어들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살기 위한 독서


살기 위한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인생의 챕터였다.


살기 위한 독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서적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고, 두 개의 북클럽에 가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매일 시간이 빌 때마다 책을 읽는다. 활자를 자주 접하니 활자에 대한 몰입력이 생기고, 몰입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런 저런 철학책들을 들여다보며 요즘 나는 나만의 인생 철학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철학은 ‘나’에 대한 내면 철학과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외면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두 가지 철학이 모두 있어야 흔들림 없는 단단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의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무언가에 설득되기 위해서는 어떤 명제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어야한다. 그러다보니 상황도 사람도, 그리고 나 조차도 잘 믿지 않는다. 지난 일희일비의 순간이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던 순간 나는 그간의 달리기 과정이 너무나 아프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나를 기쁘게 했던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나 칭찬 따위를 한 귀로 흘려 보내는 연습을 했다. 나를 칭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스스로가 나를 인정할 때만 가능했다. 그런 연습을 몇 년간 하고나니 남들의 어떠한 칭찬을 들어도, 무슨 글을 읽어도 모두 억지스럽게 짜낸 자기 위로와 그저 형식상 하는 이야기들로 느껴졌다반면 발전을 위해 남들의 따가운 피드백은 차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많이도 스스로를 다그쳤고 의심했다. 


나에 대한 수많은 의심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 '끈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의심이 언제나 있었다. 일년 반을 채 채우지 않은 퇴사였기에, 나름대로 이유 있는 퇴사였지만 사실은 꾸준하지 못한 성격 탓에 스스로 '이유가 있었다고' 합리화하고 있진 않은걸까 하는 의심은 점점 커졌다. 이 의심을 깨뜨리고 싶던 그때는 나에 대한 믿음이 바닥난, 정말이지 취약했던 시기였고, 그 때 나는 합정의 한 클래식 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파트타임 잡을 시작한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컸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이것 마저 오래하지 못한다면 너한테 난 크게 실망할거 같아’라는 말을 한 건 분명히 기억이 난다. 나약하고 뒷심 없는 내가 아니라고 내게 증명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파트타임 잡은 어느새 10개월차에 이르렀다. 컨디션만 허용한다면 1년이고 2년이고 계속해서 이 곳에서 일하고 싶다. 뭐든 집중하지 못하고 빠르게 질려할 거라는 나에 대한 의심은, 그저 내가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하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어 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재미있는 일에는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는 길이 늘 즐거워 쉽사리 그만둘 수가 없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 그리고 다양한 감정으로 혼란했던 당시의 나와 함께했던, 나를 받아줬던 공간이라 너무 정이 들어버렸달까.


처음 만든 뷰카레 시음해보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냥 눈물이 미친 듯이 나더라


어릴 적부터 나는 물공포증이 있었다. 짙은 파란색을 바라보지 못했고, 따라서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깊은 바다 색도 눈뜨고 보지 못했고, 보더라도 심장이 조여오는 공포감을 느꼈다. 물 속에 들어가면 수압이 내 몸을 누르는 느낌이 심장을 조여오는 느낌같았다. 물에만 들어가면 턱은 달달 입술은 덜덜 떨렸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되기 전, 물에 들어갈 일이 있기 두 달 정도 전부터 그 느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수영장을 다니곤 했다.


물 공포증이 있었지만, 극복하고자 한 것은 당시 물을 좋아했던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물에만 들어가면 너무 행복해 보였는데, 나도 그렇게 물을 좋아하고 싶었다. ’물놀이‘라는 단어에 광분하는 친구들, 빠지, 워터파크를 좋아하는, 그래서 여름만 오길 기대하는 그런 사람들 처럼 나도 물에만 들어가면 잔뜩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17년 양양에서 서핑을, 오키나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2018년 포르투갈 서핑 호스텔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숙식을 제공 받으며 무료로 서핑 보드를 빌려 근처 바닷가에서 동료들과 서핑을 즐겼다. 파도가 엄청나게 큰 근처 바닷가로도 원정도 갔다. 비바람이 치는 거친 날씨에 나를 삼키고도 남는 엄청난 크기의 거친 파도가 치는 곳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파도를 타는 친구들을 따라 나도 마치 파도를 사랑하는 사람마냥 달달 덜덜 떨리는 입술과 턱에 힘을 잔뜩 주고, 거침없(어보이)게 물 속으로 들어갔다.


같은해 갔던 모로코 여행은 서핑이 가능한 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했고, 이틀간 신나게 홀로 서핑을 즐겼다. 바다의 거친 파도는 위로 부딪혀 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잠수해 부드럽게 넘기는 것임을 알았다. 기진맥진해 파도의 끝자락이 겨우 밀려 닫는 모래사장에 누워 햇빛과 바람과 바다를 온 몸으로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바다와 자연에 대한 사랑, 행복에 대한 한줄 철학을 정립했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 내륙으로의 여행을 포기하고 일주일 간 다합에 갔다. 그 곳에서 미래지향 SF영화에서 본 홀로그램마냥 주변 색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문어를 보았다. 정박한 작은 보트 아래로 모여있는 수천마리 작은 물고기 떼를 보았다. 색이 아름다운 열대어 무리를 보았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그 때가 처음이었다, 가벼운 스노쿨 장비와 핀, 그 외 별 장비 없이 깊은 바다로 들어갔던 것이. 새파란 바다였지만 두려움보단 바닷 속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컸다.


한국으로 돌아와 2019년, 한강에서 패들보드를 시작했고, 2020년 웨이크보드를 배웠고, 포르투갈의 서핑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즈음 2021년 혼자 중문에서 서핑을 하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크고 빠른 파도를 잡아 타며 파도의 멋진 감각을 상기했다. 그 외로도 틈틈이 바닷가로 여행을 가면 패들과 서핑 그리고 바다 수영을 즐겼다. 물론 즐기는 척도 했다.


올해 회사 일정으로 갔던 양양에서 나는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자마자 또 다시 그 놈의 즉흥병이 도져, 첫 날부터 바로 바다로 들어갔다. 물이 무척 차고 사람은 없었다. 목이 잠기는 깊이까지 들어가 놀았다. 한창 놀고 나서야 내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거 있잖아. 항상 하늘만 보고 살며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주인공이 어느날 아래를 보니 원래 하늘을 날고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러면 주인공은 ‘나 날고 있네? 나 날고 있어!’ 하고 환희에 소리치는 그런 동화속 이야기. 그때 내가 딱 그랬다. ‘나 안 무섭네? 안 무서워! 안 무서워ㅠㅠㅠ!‘ : 놀람과 기쁨과 감동의 그런 감정의 쓰리콤보. (물 속 물고기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를 제외하곤 조금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왜 난 물고기가 무서울까)


다음날 스케줄에 따라 서핑 강습을 받으러 또 다시 해변을 찾았고,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물 속에 뛰어 들어가며 몸을 던지는 것. 발이 닫지 않는 곳 까지 수영해 들어가는 것. 모두 내가 두려워 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제는 아무 의식 없이 그냥 하고 있었다. 장장 7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인생 동안 가지고 있던 물공포증을 극복했다고 느꼈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나, 그리고 시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떨어진 자존감이 어찌보면 절정에 달하는 시기였다. 


여정에서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 때의 감정을 글로 남겼고, 이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인생 철학 한 줄을 정립했다. 내게 있어 인생이란 나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가는 여정일 거라고. 이 한마디에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터졌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던 스스로를 못 믿어준 게 미안해서, 살려고 아득바득 발버둥치던 나 안의 나 자신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서였던 것 같다. 그냥 눈물이 나오는대로 펑펑 울었다.


7년이 훌쩍 넘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검증의 과정이었다, 시간을 들인 만큼 더 단단한 이론 혹은 사실이 되겠지. 이 확신의 기분은 정말 잊고 싶지 않다. 백번 넘어져도 백한번 일으켜주는 그런 힘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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