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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Aug 05. 2024

결혼, 지상 최대의 난제 1

지난했던 나의 혼인 활동, 그 서막

오빠, 왜 결혼 안 해?


대학생 시절, 노총각(?) 사촌 오빠에게 친한 척하며 메신저로 던진 이 한 마디가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줄 몰랐다. 분명히 읽은 거로 보이는데 한동안 아무 대꾸가 없어 궁금하던 차에 부모님으로부터 국제 전화가 걸려 왔다. "너 오빠한테 결혼 왜 안 하냐고 했어?" 오빠가 화가 나서 우리 부모님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던 모양, 아빠가 오빠한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고 했다. 할 말도 딱히 없길래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아니 우리 사이에 지나가는 말로 넘길 수도 있지 과민 반응이네 하며 오히려 섭섭해했다. 벌어진 사건은 종결지어야 했기에 형식적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 한 마디가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짜증 나는 말인 지 이해 못 했다. 내가 서른여덟이라는 나이까지 미혼인 상태로 지내고 보니 그 마음도 이해가 되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소개팅 자리 주선을 부탁한 기억이 있다.


내가 처음 결혼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내 나이 스물아홉. 일상이 회사 집, 회사 집의 반복이었고 회사 안에서는 절대 사내 연애를 하지 않으리라 철벽 수비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통로가 필요했다. 그래, 교회 오빠, 교회 커플이 그렇게 많다던데 종교를 활용해 보자! 동네 성당을 가 보자니 다들 누나 누나 하면서 실속 없이 밥이나 사 주게 생겼고, 회사에서도 가깝겠다 좀 더 큰 물인 명동성당에서 활동을 해 보기로 했다. 마침 매 주일마다 가는 미사가 지루하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좋겠다 싶어 성가대 오디션에 지원했다. 내 이 검은 속내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합격!  


성가대 활동을 시작해 보니, 내가 꽤 어린 축에 속했다. 당시 언니 오빠들은 서른셋넷 정도가 평균이고 더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거의 다 미혼이었어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었고 경쟁력? 있는 나이로 대상을 찾아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끼리 1, 2년 새에 서너 커플 짝지어 결혼을 하더라. 내가 관심 있었던 미국 게임 회사에서 일하다가 들어왔다던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오빠도 동갑의 언니와 몰래 연애 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차를 태워 달라는 둥, 공통점을 찾아보자는 둥 여러 접근을 했던 것 같다. 태도를 확실히 하지 않고 계속 여지를 주고, 그 언니와 함께 있는 회식 자리에서 본인이 20대랑 결혼할 수도 있다는 둥 희망을 갖게 한 그 오빠도 지금 와서 보니 참 못됐다. 그 둘은 결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 가 강아지 한 마리와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듯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오라버니를 보내주고 한 동안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한참 활동을 쉬다가 갑자기 나온 듯한 한 오빠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열심히 나오기 시작했다. 연애도 해 본 놈이 잘한다고, 한 회식 자리에서 둘이 뭔가를 사러 나오게 되었는데 원래부터 걸음이 유독 빠른 나에게 좀 천천히 걷자고 하는데 속도를 줄이지 못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나였더라면 "그럴까요?" 하고는 천천히 걸으면서(좀 더 여우짓을 하려면 팔이라도 붙들고) 여러 얘기를 나누며 친해졌을 텐데 하고 나중에 후회했다. 자신이 보인 호의에 내가 거절을 했다고 생각한 그 오빠는 다시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시점부터 신경이 쓰이게 시작되면서 그 오빠가 연출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매일매일 챙겨 듣기 시작했다.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려서 근 1, 2년은 챙겨 들었던 듯싶은데 얼마 안 있어서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야심 차게 시작한 성가대 활동에서의 두 번째 좌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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