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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an 28. 2024

스마트폰

스마트폰에 의지를 불어넣어서 그가 나의 일상을 살도록 설정했다. 의외로 그의 일상은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알림을 따릉따릉 울리고, (세면 같은 귀찮은 과정은 생략 채) 노래 몇 곡과 함께 직장을 향한다. 메신저로 남들과 소통하고, 구글로 정보를 찾아나서다 어느덧 퇴근. 남은 날의 여가는 또 유튜브의 몫이니, 나의 희로애락은 온통 150g가량에 맡겨 있던 셈이다.


그러나 150g 전에도 삶은 있었다. 한때는 컴퓨터였고, 다른 시절엔 놀이터였으며, 아주 이전에는 집안의 모든 것이었다. 세상이 복잡함의 균형을 유지하는 탓에 150g이 까다로워질수록 그 바깥 것들은 단순해지고 있다. 귀찮음을 해소할 방법이 늘어남과 동시에 귀찮음 자체가 크게 늘어난 느낌이다. 불가결함이 가져다주는 폐쇄성이나 결과적인 지루함을 생각하면 디지털 감옥이라 일컬어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150g이 삶의 적이라는 결론은 몹시 섣부르다. 나의 오랜 엉뚱함은 온갖 게임과 영상의 산물이며, 가끔의 연락이라도 버튼 하나로 쉽게 저지를 수 있다. 또 그의 스마트함이 없었다면 세상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하려 들었을지. 위의 비난들은 그의 똑똑함이 나를 세상의 변방으로 몰아내는 데서 비롯된 위기의식일지도 모른다. 하긴, 그는 내게 입 한 번 벙긋한 적 없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친우일지 악우일지는 전적으로 종잇장 같은 내 마음에 달려 있을 터. 모든 것을 대체할 악마 같은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강력한 경쟁상대로 여기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되지 않을까. 반대로 그쪽이 나를 경쟁상대로 인정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네임태그를 붙이는 건 온전히 인간의 영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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