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Apr 07. 2024

법칙과 우리의 관측능력

세계관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단순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할지언정 실제로는 단순히 여러 설정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맺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x=y라는 법칙을 세우는 대신 필요한 값들만 적절히 (1, 1), (2, 2) 등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값들을 관측한 누군가는 x=y가 법칙이라고 주장 것이고, 실제로 관측되었든 관측되지 않았든 세계가 일단 x=y인 값만 내놓도록 설정되어 있다면 그 주장이 꽤 유용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정말 법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값이 생성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법칙이고 무엇이 법칙이 아닌지 분간할 기준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우리의 관측능력이다. 우리의 관측능력이 무한하다면 세계관이 담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고, 그제서야 말 그대로 "모든 경우에" 성립하는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판별법이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무한한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보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측능력이 무한할 때 그 관측능력에 따른 일관된 결과가 법칙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세상이 모든 경우를 하나하나 저장해두었다가 우리가 관측할 때마다 보여준다는 뜻인데 이는 세상의 유한한 저장능력과 모순된다. 따라서 세상이란 우리의 관측(입력)을 계산해 그때마다 결과(출력)를 내놓는 연산장치이며, 그 연산장치를 법칙이라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측능력은 무한한가? 일견 유한해보이지만 간단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한정한다면 인간의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만 소화할 수 있으니 분명 유한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로서 생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지구의 돌멩이나 우주의 혜성까지 각자가 생성, 보유, 삭제하는 정보가 있을 것이기에 이를 모두 우리의 관측능력에 포함시켜야 한다. 결국 관측능력의 무한성 판단 문제는 존재의 무한성 판단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단 한 개의 존재라도 무한한 정보를 처리할 능력이 있는가? 혹은 각자의 능력을 합했을 때 무한한 가능성을 관측하고 세상에 결과를 요구할 수 있는가? 설령 이 세상이, 이 세상 모든 존재의 단순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세상과 존재의 정보집합이 같다는 뜻일 뿐 양자가 모두 무한한지를 밝혀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세상이 유한하다면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세계관은 저장능력을 넘지 않는 사실들의 단순 나열로 구성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전부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바에 따라 세상이 구성된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카페인, 무알코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