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생 ver 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Apr 28. 2024

붉은 달

달이 빨갛게 떠오르면 부분이든 개기든 일단 월식인 줄 알았다. 어디서 배우기로 월식은 일식에 비해 자주 일어난다기 때문이다. 누구든 우람한 크기의 달이 붉은 빛을 품고 있으면, 구태여 월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평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오랜만에 제시간에 퇴근한 나로서는 그것이 더욱 크게 다가왔기도 했고.


하지만 밤이 깊어지고 달이 떠오르자 붉은 빛은 점차 희미해졌다. 생각해보니 월식이 아 때에도 달이 붉은 적은 잦았다. 태양-지구-달의 상대적 위치 탓에 달이 직사광선 중 파장이 긴 부분만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달은 종국에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밝고 아름다웠지만, 조금은 아쉬운 모습으로.


붉은색이 꼭 심미적냐하면 그것은 아니다. 고급스럽지만 소름끼치기도 하고, 열정적이지만 잔인하기도 하다. 붉은 달이 독특하다고 느낀 것은 순전히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달이 자주 붉으며 가끔 희고 노랗다면 후자를 기특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한 감탄은 꼭 독특함이 차지하는 몫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지위나 재미상의 귀천이 있다기보다는, 본인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정적이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동경해마지않는 일이 누구에게는 지루한 일상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단순 밥벌이로 취하는 일이 누구에게는 평생의 꿈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대단함은 그가 주로 하고 있는 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겠지만, 의외로 부(副)로 취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이른바 반전매력이라는 것이다. 달이 가끔씩만 붉은 조명을 켜주는 것처럼 말이다.


충분히 오래 살아 물리법칙이 뒤집히거나 내 감각기관이 뒤집힌다면, 달에게서 푸른 모습을 보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설레고 찬란한 광경. 노란 달을 띄우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9to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