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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un 25. 2024

모든 것은 이 책(혹은 이와 비슷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증거라곤 이것 하나뿐이다.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는 이 책이다. 책상에 반듯이 놓여 있는 이 책을 촬영한 것이 이 책의 표지이다. 그런데 그 촬영되었다는 책은 또 촬영된 책을 표지로 하고 있으며, 그렇게 촬영된 책의 표지 역시 그 책을 찍은 것이다. 책의 표지가 책의 표지인, 말만 들으면 그럴싸한 심각한 영겁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세상의 근원일까?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난도는 기껏해야 근원의 난도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처럼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천지이다. 비슷한 예로 거울을 비치는 거울, 방송화면을 송출하는 방송화면 등등이 있다. 유한으로부터 무한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반면 그 반대는 가능할 것이므로 이 책은 세상을 도출할 자격이 있다.


스스로를 담는 것으로 스스로를 구성하는 재귀적인 상황은 실체에 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아무 내용도 없이 세상에 무한한 연산만 강제하는 이 존재들은 왜 존재하는가? 아니, 정말 존재한다고 볼 수는 있는가? 혹은 유한한 연산을 이해할 수 있는 것(실체가 있는 것)으로 의역하는 유한 중심적 사고가 애당초 잘못된 것은 아닌가? 우리가 공리를 둔다 함은 무한의 증명을 포기하고 유한의 편익만을 취하겠다는 주의적 발상은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여러 방면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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