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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후생 Dec 26. 2020

극혐하는 한인 모임


  한인 모임 같은 것에 나가서는 안 된다. 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짚어보자. 해외에 나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던가? 돈을 벌거나 현지인을 만나 언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여행이 목적일 때조차 편한 모국어가 아닌 불편한 외국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데 한.인.모.임.이라니? 외국까지 나와서 한국인을 만나고 자빠지겠다는 소린가.


  그것이 내가 한인 모임에 대해 품은 전반적인 인상이었다. '시간의 낭비'. 하지만 공교로운 일이 일어났다. 이다지 완강하던 나였으나 한인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관심 있게 보던 유튜버 겸 '선배' 워홀러가 정모 공지를 띄웠다. 워홀살이에 관한 정보를 귀동냥이라도 할까 걱정 반 호기심 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신주쿠 근처의(근처라고는 해도 걸어서 13분) 라멘집에 모였다. 총 9명의 사람이 테이블 두 개로 찢어져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이?", "나이는?", "일본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얼마나 있으실 거예요?", "일은 구하셨나요?" 등등의 회화가 핑퐁처럼 오고 갔다. 간단한 식사가 끝난 뒤 2차는 모임장이 빌린 '방'에서 이어졌다. 입실하기 전에 우리는 마트에서 안주와 술을 풍족히 샀다. 일행 가운데 「신」이라는 분은 얼음과 양주를 자비로 계산하며 분위기를 후끈 달구었다. 우리는 그분을 「배포가 크신 분」이라 불렀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화사한 가랜드가 우릴 반겼다. 깔끔하고 널찍한 좋은 방이었다.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고 술을 기울이며 농담도 건넸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점차 왁자지껄해졌다. 모임장이 유튜버였으므로 우리의 노는 모습은 촬영되었다. '오, 내가 방송에?' 라는 생각이 들어 행동이 경직됐지만 슬슬 긴장이 풀려 개의치 않게 되었다. 


  자리가 깊어질수록 기대했던 것보다도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토박이 한국인으로서 비슷하지만 다른 '일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맺어야 하는지 등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전혀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다. 먼저 체험한 이들의 경험담을 흡수할 수 있는 귀한 공부에 가까웠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없으니 모임은 위화감 없이 즐거웠다. 해외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더 끈끈한 '정'(?)을 느꼈달까.


  '그래, 실로 얼마만의 한국어인가?'

  '얼마만의 한국인인가?'


  11시가 넘고 우리는 방을 비워야 했다. 10시까지 사용이었으나 이미 한 번 연장한 것이었다. 쓱쓱싹싹 짧은 시간만에 새 집과 같이 탈바꿈시킨 후에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새벽 다섯 시 첫 차를 타기까지 3차는 이자카야에 서였다. '극혐'했던 것치고 너무 재밌게 놀아서 민망하다. 이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부를까 한다. '애지중지하는' 한인 모임으로.


  낯선 곳에서 외국어만 쓰기를 몇 달,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뭐였나 싶을 때 한국인들을 만났다. 가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술자리를 가졌다. 다른 문화권에서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극혐할 일도 나쁠 일도 아니었다.


  '얼마만의 한국인가'


집 근처 작은 다리의 강물을 보며 나는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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