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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Mar 09. 2024

오베르뉴-혼-알프스 여행2

그르노블Grenoble


글 제목을 약간 설명하자면, 오베르뉴-혼-알프스는 최근에 합쳐진 프랑스 레지옹(Région)의 이름이다. 레지옹은 단순 비교하긴 힘들지만, 한국으로 치면 '도'라고 할 수 있다. 주요 도시로는 오베르뉴의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루아르의 상-에티엔St-Étienne, 론의 리옹Lyon, 드롬의 발렁스Valence, 이제르의 그르노블Grenoble, 사부아의 샹베리Chambéry, 오트-사부아의 안시Annecy 등이 있다. 주도는 리옹이다.


물론 주요 도시 이외에도 가볼 만한, 가보고 싶은 도시들이 참 많이 있다. 파리가 포함된 일 드 프랑스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경제력도 큰 지역이다. 문화적으로도 맛볼 만한 것이 많이 있다. 프랑스인 부부의 도움을 받아 나는 아내와 함께 론과 이제르 두 지역을 다녔으니, 실제로는 모든 지역을 다니진 않았으므로 오베르뉴-혼-알프스 여행이라는 제목은 사실 어폐가 있다 하겠다. 다만 도내 지역을 다녔으므로,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나중에 남은 지역들도 모두 다니고 싶다는 소망도 담아서.


그르노블을 향한 길. 멀리 알프스 산맥들이 보인다.


"그르노블은 참 특이한 곳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를 안내한 프랑스인 남편은 그르노블에 가까워지면서 그곳의 지리적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가 말하길, 오래 전 지각판들이 뒤틀려 서로 부러진 상태로 쭉 융기하여 만들어진 산맥 사이에 위치한 그르노블은 그래서 산맥들이 참 특이하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고 했다. 오늘은 그러한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는 바스티유 요새에 올라갈 거라고 했다. 그르노블을 다니며 쭉 이어진 그의 설명은 듣기에 아주 즐거웠고 덕분에 많은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모국어가 프랑스가 아닌 우리를 위해 좀 더 쉽게 설명을 해줬을 것인데,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유료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우리 부부는 고마운 마음에 점심을 샀다. 보헤미안 스타일 식당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식당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었고, 음식은 평범한? 프랑스식 먹거리들이었다. 햄버거, 새우 리조토, 닭고기 꼬치구이 등 여러가지를 시켜서 각자 나눠 먹었다. 그리고 프랑스 부부가 말하길, 사실 그르노블이 피자가 유명하다고 했다. 강변따라 쭉 피자집만 늘어선 곳도 있다고 했다. 구글맵을 켜서 보여준 것을 보니 진짜였다. 아, 다음에 올 때는 피자를 먹어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로, 이쪽 사부아 지역이 이탈리아 문화와 가깝다고 했다. 과거 로마 제국이 마을을 세우면서 그르노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도 했다.


사실 프랑스, 혹은 유럽에서 유서가 깊은 도시나 마을들은 죄다 역사가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가 로마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 미묘하게 자부심으로 통한다. 로마인들은 비정한 정복자였을지언정 훌륭한 건축가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이것은 아시아에선 통용될 수 없는 생각일 것이다. 한국의 어떤 도시가, 혹은 일본의 어떤 도시가 고대 중국 한나라 시절 한족에 의해 조성되어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면, 그것에서 자부심을 느낄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아마 열에 한 명, 아니 백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르노블을 중앙을 통과하는 이제르 강에서 만난 두 마리 파이프 플라밍고. 은근 귀여웠다.


강변을 따라 조금 걸으니, 우리가 탈 케이블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관광객들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잠깐 그냥 걸어갈까를 의논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줄이 사라질 거란 프랑스 남편의 말에 모두 기다리기도 동의했다. 정말 생각보다 빨리 줄이 줄어들긴 했지만,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생각보다 쌀쌀했다. 윗층에 올라가 우리가 탈 즈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까보다 줄이 두 배는 더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우리가 갈 바스티유 요새는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한다. 어른 기준 편도 6.5유로, 왕복 9.6유로. 우리는 걸어서 내려올 예정이었기에 편도를 끊었다.


나중에 요새에서 내려오면서 중간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화장실 옆에 과거 케이블카에서 있었던 사고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간에 고장이 나서 케이블카가 멈췄는데, 헬기 등을 동원해서 승객들을 무사히 구출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나 아찔했을까, 오도가도 못한 채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심장이 쪼그라들었을지. 그런데 이 사실을 왜 산꼭대기 요새 화장실 옆에다 전시를 해놨는지 모르겠다. 이제 타고 내려갈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속셈인가?


바스티유 요새에서 내려다본 그르노블 풍경. 산머리에 눈이 남은 곳들도 아직 많다.


크게 베르코르Vercors, 샤르트르즈Chartreuse, 벨돈느Belledonne, 타이으페Taillefer, 우아장Oisans 다섯 산맥 사이에 위치한 그르노블은 소위 말하는 분지다.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춥다는데, 우리가 찾아간 날이 2월 말이라지만, 생각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작은 강들이 많고, 아직 눈이 덜 녹은 곳도 많아 습도가 높다고 했다. 습도가 높으면 몸이 떨리며 으슬으슬하게 춥다. 스트라스부르도 겨울에 습도가 높기에 익히 잘 아는 추위였다. 문득 대구가 떠올랐다. 여름에는 가본 적 없고 겨울에만 가본 적이 있는데, 따뜻하게 입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는 바람이 정말 차갑게 느껴졌었다. 아마 대구도 분지라 그런 것일까.


바스티유 요새는 역사가 그리 깊은 곳은 아닌데,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었다. 원래 바스티유Bastille는 성채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군대가 주둔하여 무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또한 감옥으로서의 기능도 겸한다. 그래서 파리 혁명 당시 혁명군들이 파리 바스티유를 털어 무기를 탈취했던 것이다.


프랑스 부부 아내가 말하길, 예전에는 그르노블 시내에 나무가 더 무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램 길을 내고 도로를 확장하면서 나무들을 왕창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 진심으로 슬퍼 보였다. 사실 그녀는 그르노블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그르노블을 향한 마음의 깊이가 달랐으리라 짐작했다. 예전과 모습을 달리하는, 심지어 지금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 못하다고 한다면, 그 슬픈 마음의 웅덩이는 얼마나 깊을까.


곳곳에서 결이 위로 솟은 바위들을 볼 수 있었다. 지각활동의 결과물들이다. 바위 틈에 피어난 이름모를 풀꽃들이 정겨웠다.

 

어느 순간 꺾인 채, 어마어마한 세월 동안 솟아올라 지금의 모습을 갖춘 그르노블의 지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곳곳마다 꺾여 솟아오른 바위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구경할 거리가 넘쳐흘러서 그런지, 요새에서 걸어 내려오는 길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이리저리 난 길따라 내려가며 과거 감옥 역할을 했던 곳도 지나고, 바위를 뚫어 동굴을 만들어 길을 낸 곳도 지나가고. 중간에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도 하고, 바위 틈에 피어난 이름모를 들꽃들도 보고. 내려가는 데 한 40여 분 좀 더 걸렸던 것 같은데 그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쭉 내려왔던 것 같다.


요새 구경을 마친 우리는 차에 탑승했고, 그대로 떠나지 않고 시내와 그르노블 대학을 한 바퀴 돌았다. 프랑스인 두 부부는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해주었지만 바깥이 좀 추웠던지 나와 아내는 금새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중에 깨보니, 차는 그르노블을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좀 미안했다. 차는 달리고 달려 대형 슈퍼마켓인 SuperU에 도착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들른 것이다. 오늘 저녁 식사를 아내와 내가 차리기로 했기 때문에, 간단히 돼지 삼겹살과 목살을 사서 집에서 굽고, 상추에 싸서 먹기로 했다. 곁들일 쌈장과 새우젓장은 집에서 미리 만들어둔 것을 가져와 이 집 냉장고에 넣어놨었다.


디저트로 맛보기 위해 산 치즈들. 덕분에 치즈에 대한 지식이 더 늘었다.


프랑스 부부는 우리를 위해 여러 종류의 치즈를 샀다. 그리고 치즈들이 하나 같이 우리 취향에 잘 맞았다. 냄새가 너무 심하지 않고, 맛이나 풍미가 아주 뛰어났다. 특히 파베 다피누아Pavé d'Affinois 치즈는 잘라보니 속에 치즈가 걸쭉한 액체로 흘러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식감도 크리미하고 별다른 향 없이 부드럽게 목을 넘어갔다. 아내가 제일로 꼽은 치즈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 경우,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좋았지만, 특히 인상에 남은 게 콤테Comté 치즈였다. 물기가 거의 없이 굳은 이 치즈는 적어도 18개월 이상 숙성된 것이 좋다고 했다. 이 또한 별다른 향 없이 진한 치즈의 맛이 내 혀를 자극했다.


아내는 떡볶이를, 나는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상추를 준비했다. 결과는 대성공!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 친구 부부는 이미 리옹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많은 것을 맛본 뒤였다. 또 놀랍게도 집에서 떡국, 잡채, 김밥 등등 해본 한국 요리도 많았다. 아내 쪽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지만, 남편 쪽은 매운 것도 전혀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어떤 한식을 준비할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삼겹살 목살을 구워 먹어본 적은 없다고 해서 쉽사리 결정이 났다. 불판 위에 자른 고기를 올려 직접 구워먹는 문화는 여기선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재미있어하고, 또 맛있게 먹어주었다. 미리 만들어간 쌈장, 새우젓장에 대한 인기도 좋았다. 마늘, 파, 양파까지 잘게 썰어 넣은 풍미를 아주 좋아했고, 새우젓장의 경우도 '맛있는 짠맛'이라며 좋아했다. 아내가 만든 떡볶이도 대호평이었다. 오히려 별로 안맵고 단짠이 조화로워 맛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접시를 남김없이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 그르노블에서의 여행 감상도 나누며, 또 하루가 편안하게 지나갔다. 다음 날은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모레엔 일찍 나서서 리옹 빠흐디유의 오전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은 리옹 근처의 작은 마을들을 보고, 리옹 시내에 가서 아주 특별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 우리를 데리고 다니느라 정말 피곤했을텐데도, 쉼없이 이야기를 꺼내며 즐거워하는 이들 부부에게 참 고마움을 느꼈다. 가식없이 진심과 진심이 서로 통하는 친구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타국에서, 얼굴색과 말이 다른 사람들과. 낯선 곳에 와서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떠나야, 또 두고 와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번 여행의 참된 의미도 그것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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