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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만이 May 06. 2020

왜 도토리소년이냐고요?

그건...

진짜 나라니...
중학교 일기장에나 나올법한 단어 같은데.
상대가 나를 귀찮아하는지 끊임없이 반응을 살피며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하는 말에 굶주린 수다스러운 나와, 사실은 허무의 극치를 달리며 비관의 바닥을 치는 심하게 낯가리는 나는 어떤 게 진짜 일까.
웃기는 소리를 계속해가며 상대가 웃는 것에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명랑만화 주인공 친구 3쯤 되어 보이는 나도 나고...
사는 게 무섭다고 밤마다 끄억끄억 울어대는 것도 난데, 어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진짜 나를 아는 것일까.

예민하지만 둔하다. 이렇게 바보 같은 것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손님들에게 열심을 다해 만든 음료를 만들어드리고 다정한 시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나의 기쁨. 나라는 아이의 한 부분을 쪼개서 다정함을 조금 내어드리는 것으로 이 작은 가게에서 나의 몫은 다했다고 초보 사장은 생각했다.
거기에 인터뷰는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질문은 시작된다. 가게 이름부터 이곳을 선택한 이유...
한 번 두 번 같은 대답을 하다 보니 말하는 중간에 한숨이 새어 나올 정도인데, 같은 대답을 수십 번 말하는 것보다 이게 진짜 힘든 이유는 비자발작으로 나의 개인적인 어떤 부분 들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성의 없이 대답해서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4개월 차의 일인 카페를 하는 초보 사장으로 하루 종일 동동거리면서 꾹꾹 누르고 누르는 어떤 감정들은 보여주기 싫다. 너무나도 작은 부엌이라 지저분한 것들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런 창피함과는 다른 나의 어떤 마음을 내게는 아직은 입 밖으로 내기가 싫다.
그러고 보니 참 싫은 게 많구나...
가게의 이름의 탄생 이유를 묻고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사람들은 가볍게 물어본다. 나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씩씩하게 대답해주지만 쉬이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기 때문에... 한참 다시 마음을 꾹꾹 누르느라 힘이 든다.

이것이 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나름의 복병이 되다니.
“제19살 된 개가 치매였어요. 저는 외출이 어려워서 가게를 온라인으로만 겨우 찾아볼 수 있었지요......”
여기까지만 해도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큰소리로 울어버리고 싶다.
내 개가 죽었다고요. 나는 걔밖에 없었는데! 친구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애인도 없었는데!
죽어버렸는데! 나는 밥을 먹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요! 이제 그만 물어봐줘요.
도토리 소년은 내 마음속의 내 개를 생각하면서 지었으니까. 이런저런 살을 붙이기도 하고 다른 이유도 말하지만 우리는 도토리를 좋아했고, 나는 혼자 살아남아 내 개를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싶다.

오늘도 왜 가게 이름이 도토리 소년인가요?라는 호기심 가득한 손님들에게 나는 심호흡 한번 하고 말에 굶주린 수다쟁이 모드로 변신한다.
“제가 도토리를 좋아했어요. 몇 년 전에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도토리 모양 빵틀을 선물 받아서 마들렌을 만들었는데 너무 이쁜 거여요. 그래서 언젠가 과자집을 하게 되면 도토리 마들렌을 시그니처로 해야지. 꼭 도토리가 들어간 가게 이름을 지어야지 했답니다. 그런데 도토리로 검색해보니 도토리 식당, 키친, 다방, 자매, 형제, 시스터, 슈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름이 이미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지었어요!
아! 왜 소녀가 아니고 소년이냐고요? 저는 이 사회에서 강요하는 소녀의 이미지가 별로인 것 같아요. 짧은 세일러복을 입고 발목양말을 신고 두 손을 모으고 오빠를 기다리는 그런 이미지요. 사실 소녀들은 알겠지만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프훕... 그런 소녀는 없답니다.
마침 21세기 소년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가게는 여자여자한데 이름은 소년이라니 저도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제 주변에 남자가 하도 없다 보니 남자복도 좀 들어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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