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세대가 공유하는 유년의 기억
세대는 나이와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연령 효과(age effect)’와 ‘동년배 효과(cohort effect)’로 설명한다. 전자는 사람들이 나이에 맞게 행동하기 마련이라는 관점이고, 후자는 젊은 시절의 경험이 각인되면 나이 들어도 그것이 유지된다는 관점이다. 이 둘은 같은 듯 다르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연령집단 세대와 동년배 세대를 구분한다고.
연령 세대는 각 연령 단계의 사람들이 나잇값(연령 규범)을 하려고 공통된 태도나 행동을 보일 때 쓴다. 동년배 세대는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기에 축적된 경험이 세대 정체성의 구성 요소가 된다.
사회학자 전상진의 책 《세대 게임》의 한 구절이다. 이에 따르면 작금의 세대 담론에서 불거지는 각 세대의 주장과 관점은 ‘동년배 세대’ 관점에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험이 지금의 정체성을 만들었을까?
5060 세대에게 영향을 끼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여러 커뮤니티에 물어보았다. 대부분 민주화운동과 IMF, 그리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떠올렸다. 역사적 사건들이 이 세대의 젊은 시절 뇌리에 박혀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화적 소양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198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생 시절에 듣던 라디오 음악방송이 기억납니다. 해외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팝 음악으로 바깥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죠.”
50대 지인 여럿이 라디오 음악방송을 떠올렸다. 음악을 신청하려고 엽서에 목록을 적어 보냈다거나, 그렇게 보낸 신청 사연이 뽑혀 상품까지 받았다는 기억을 가진 이도 있었다. 라디오가 청소년 시절의 추억과 경험을 담고 있다면 어린이 잡지는 초등학생 시절의 그것을 담고 있었다.
“어깨동무와 새소년, 그리고 소년중앙 같은 잡지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어요. 흥미로운 이야기, 실용적인 정보와 상식, 무엇보다 만화가 많이 실려서 다음 달을 기다리게 했죠. 모든 잡지를 살 수 없어서 친구들과 서로 다른 것을 사서 돌려본 기억도 납니다.”
지금과 달리 방송 매체도 별로 없고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도 부족했던 시절이라 50대와 60대들은 어린이 잡지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기억했다. 친구들과 돌려보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어린이가 어린이 잡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즉,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많은 어린이는 잡지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했다. 다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좁았기에 어린이 잡지들에 담긴 내용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어린이 잡지의 흔적을 찾아서
〈어깨동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가 창립한 육영재단에서 1967년 1월에 창간해 1987년 5월에 폐간했다. 〈새소년〉은 1964년 5월에 창간해 1989년 5월에 폐간했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한 〈소년중앙〉은 1969년에 창간해 1994년 9월에 폐간했다.
이에서 보듯 5060 세대의 어린 시절과 함께했던 잡지들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찾아서 읽고 싶었다. 청계천과 동묘의 헌책방에 문의하니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나오더라도 가격이 비쌀 거라고 했다.
한 온라인 중고책방을 뒤져보니 과연 그랬다. 호가이긴 하지만 〈소년중앙〉 1983년 6월호가 3십만원에 육박했다. 당시 정가는 1,900원이었다.
오프라인에서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국립중앙도서관’을 뒤져봤다. 디지털 자료로 보관된 어린이 잡지들이 있었다. 〈소년중앙〉은 없었지만 〈새소년〉과 〈어깨동무〉는 발행됐던 많은 호를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두 잡지가 40년 전에 발행한 1982년 2월호와 3월호, 그리고 50년 전에 발행한 1972년 2월호와 3월호를 살펴봤다. 잡지 가격은 1982년에 1800원, 1972년에는 250원이었다.
전반적으로 많이 보이는 소재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스포츠였다. 동물의 생태, 혹은 과학사를 다룬 기사들이 많았다. 당시 경직된 남북 상황을 반영한 반공 콘텐츠도 눈에 띄었다. 기사 형식이든 만화든 반공 소재는 항상 포함된 듯 보였다.
〈어깨동무〉 1972년 3월호에는 껌 공장 탐방 기사가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껌 공장이고 최신 시설을 자랑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견학에 나선 어린이들은 수십 년 후 우리나라가 기술 강국이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새소년〉 1972년 3월호에는 불과 화재를 소재로 삼은 기사가 있다. 그 전해인 1971년 12월 25일에 벌어진 명동 대연각 빌딩 화재 때문으로 보인다. 1982년 3월호에는 그해 봄 출범하는 프로야구와 관련한 콘텐츠도 눈에 띈다. 어린이 잡지들은 이처럼 시의성 있는 기사로 어린이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정부 시책을 에둘러 홍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5060 세대가 기억하는 어린이 잡지의 매력은 연재 만화에 있었다. 지금 훑어봐도 이들 잡지에서 만화 비중이 높다. 5060 커뮤니티에는 〈새소년〉에서 연재한 ‘바벨2세’나 ‘유리의 성’을, 〈소년중앙〉에서 연재한 ‘꺼벙이’나 ‘타이거 마스크’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가 꽤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어린이 잡지들에 실린 만화들 대부분은 일본 원작을 그대로 베끼거나 아류인 사례가 많았다. 저작권 적용이 지금과 같지 않던 시대였다. 대표적으로 ‘유리의 성’은 1972년과 1982년의 작가 이름이 다르다. 그림체는 그대로였고.
만화가 돈이 되는 시장이었을까. 〈새소년〉은 연재만화를 ‘클로버 문고’라는 독립 출판물로 만들어 히트 상품을 만들었고, 〈어깨동무〉는 만화만 별도로 실은 별책부록인 ‘보물섬’의 인기에 힘입어 만화 전문 잡지 〈보물섬〉을 창간했다. 결국,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어린이 잡지가 저물고 만화 잡지의 시대가 열렸다.
어린이였던 그들은 어린이 잡지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잡지 연구자들은 어느 잡지나 그 콘텐츠를 살펴보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1970년대 어린이 잡지에는 “과학기술과 잡학지식, 모험과 표류의 주제가 반복”해 보인다는 분석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어린이 잡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입국’을 지향한 우리나라의 당시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교육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주입식’이 떠오를 것이다. 크게 빨리 발전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해결사였다. 어린이 잡지도 이에 영향을 받아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동 인력을 급속도로 만들어내기 위한 ‘주입식 지식생산’을 담당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어린이 잡지를 읽으며 자란 5060 세대는 ‘기술보국’ 및 ‘과학입국’ 정책에 앞장선 산업역군이 되었고, 정권 친화적인 주입식 교육을 떨쳐낸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5060 세대는 동료 의식, 혹은 '동년배' 의식 또한 강하다. 왜일까. 그들이 국가 성장과 민주화의 발판을 함께 끌어낸 전우이기도 하지만 비약하자면 어린이 잡지로 주입된 문화적 소양과 배경이 엇비슷해서는 아닐까.
아무튼, 5060 세대가 동년배를 챙기는 강한 유대감에 힘입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를 주도해 온 것도, 그 때문에 비판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순(耳順)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진리를 깨닫기 위해 귀 담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왜 선현들이 '예순에는 귀가 순해진다(六十而耳順)'라는 말을 명심하고 살았을까. 지금까지 주로 말을 하고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귀 기울이며 살아가라고 선현들이 깨우쳐 주는 것은 아닐까.
뉴스포스트(http://www.newspost.kr)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