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앞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이 너무 힘들 때, 나약한 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시련을 줄 때,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울 때, 멍하니 한숨을 쉬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었을 때, 별이 보이지 않는 까만 밤하늘이 서글퍼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질 때, 마지막으로 활짝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떠나고 싶다. 어디론가 조용한 곳으로, 잠들기 전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내 숨통을 조이고, 내 몸을 옭아매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이런 생각.
물론 나는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다. 그저 꿈꿀 뿐이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져 있을 때 ‘판타지’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것이니까. 이 헛소리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대한민국의 YOLO족들을 존경한다. 판타지를 현실로 이뤄내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다. 다만 ‘You Only Live Once’라는 글귀가 주는 당당함에 매료되어 자기가 YOLO족이랍시고 허세를 내세우기 위한 도구로 써먹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싶다.
YOLO족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정형적인 삶의 방식, ‘가짜 행복’을 거부하고 자신이 진정하고 싶어 하는 것, ‘진짜 행복’을 좇으며 살아간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제약을 거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들은 영웅이라 할 만하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떤 용기를 내었고 어떤 고뇌를 하였는지, 감히 나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사실 YOLO의 맹점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기에 그들이 YOLO족이겠지만, 나는 보장되지 않는 미래가 두렵다. 안 그래도 불투명한 내 미래를 더욱 뿌옇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이미 내 가족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아마 내 인생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가 가족에게 받은 것 이상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YOLO는 내게 판타지일 뿐, 절대 현실이 되지 못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판타지는 판타지로 내버려둬야 판타지가 되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가끔 가슴을 쑤셔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을 본다. 나PD의 프로그램은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가끔씩 이상을 올려다보는 수많은 ‘나’를 위로한다. 개인적으로 나영석 PD의 제일 가치 있는 능력은 우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는 판타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PD는 그러한 판타지를 방송이라는 매체로 실현시켜 준다. 은퇴한 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친구들과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 문명의 이기(利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첩첩산중의 시골에서 삼시세끼 해 먹고사는 것, 사랑하는 인생의 동반자와 단둘이 강원도 어느 산구석에서 살아보는 것, 낯선 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듯한, 너무나도 허무맹랑해서 누구에게 말하기는 조금 꺼려지는 그러한 판타지.
현실이 거는 제약에 주야장천 상상의 나래만 펼쳐야 하는 우리에게 나영석의 프로그램은 간접적으로 꿈을 이뤄주는 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랄까. 그래서 나는 나PD의 프로그램을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밉다.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에 없다며 아이들의 동심을 무참히 깨 버리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