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가> - 이나모리 가즈오
책을 읽으면서 독후감에 쓸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작가의 문장에 코멘트를 달고 싶을 때도 있고 책 내용과 관련 없는 일이 생각날 때도 있다.
몇 년 전 최종 폐점했지만 코엑스에 반디앤루니스 서점이 있었다. 코엑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지트였다. 지하 1층 코엑스몰로 들어가면 코즈니와 레코드샵이 보이고 메가박스로 가는 길에는 맛있는 식당과 소품샵이 있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면 스티커사진 가게에 꼭 들렀다. 반대편으로 가면 작은 무대와 아트박스, 그리고 반디앤루니스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후부터 반디앤루니스에 자주 들렀다. 코엑스는 익숙해서 마음이 편했고 오랫동안 놀이터로 인식하다 보니 거기에 있으면 금세 즐거워졌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또래들과 여럿이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 소통을 못해서 그런 거였는데 책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이 칭찬해주었다. 따라서 책 읽기는 인정받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수많은 책이 진열된 모습은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스무 살 때 주말 중 하루는 꼭 반디앤루니스에 갔다. 오전에 가서 읽다가 점심시간이 넘으면 푸드코트에서 밥을 한 끼 사 먹고 저녁에 배고파서 참을 수 없을 때쯤 집으로 돌아오는 루틴이었다. 오후 4시에 돌아올 때도 있고 저녁 늦게까지 있을 때도 있었다. 아무데나 철퍼덕 앉아 원하는 책을 맘껏 읽다가 어쩌다 한 권을 사고. 안 사고 읽기만 할 때도 있고. 그때 책 리뷰를 쓰는 재미에 빠졌다. 책 한 권 읽고 A4 1쪽 이상 독후감을 쓴 다음 프린트해서 파일링 해두기.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쓸까, 싸이 다이어리에 올리면 사람들이 봐주겠지 하면서.
그 시절 나는 스무 살인 내가 온종일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꽤 멋진 인생을 사는 기분도 들고. 십여 년 전 어느 봄에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처음 만났다. 서점 바닥에 앉아 이 책을 읽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다짐했었다. 나중에 일하게 되면 반드시 보람 있게 일해야지. 일하는 목적이 월급이 되지 말아야지. 막상 취업한 후에 나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버티는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가방에 이 책을 넣어 다니며 나를 응원하곤 했다. 자신에 대한 공감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성취감이 조금 있었지만 대체로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었다. 저축한 걸로 2년쯤 일 안 하고 지내보기도 했다. 그때 글도 쓰고 산책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으로 즐기며 일하고 있다. 그동안 일하는 이유에 급여 말고는 딱히 이유를 댈 수 없었는데 드디어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작가는 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일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고. 그러면서 직원을 가연성, 불연성, 자연성으로 구분했다. 가연성은 불에 가까이 대면 타는. 불연성은 불에 가까이 대도 타지 않는. 자연성은 알아서 활활 타는 존재를 말한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며 타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주변이 아무리 활활 타고 있어도 함께 타지 않는 것은 물론 주변의 열까지 빼앗아버린다. 불연성 인간은 어렵거나 힘든 일을 귀찮아하며, 앞서가는 것은 남들한테 찍히는 것이라 믿는다. 그저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지내기만 바란다. 불연성 직원은 절대 나서지 않는다. 명령을 받고 나서야 일하지만, 그 일에 아무런 흥미도 없다. 자연성 직원은 지시를 받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나선다. 자연성 직원에 힘입어 가연성 직원들조차 함께 활활 타오른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자연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불연성 직원이 오래 다닐 수가 없다. 가연성과 자연성 중에서 택하면 되는데 자연성 직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연성 직원을 자연성 직원이 되도록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작가가 만든 인생 방정식은 ‘인생과 일=능력x열의x사고방식’이다. 회사에서 종종 말하는 목표(a), 능력(b), 동기부여(c)와 같다. 방향(a)이 분명하고 할 수 있는 자원(b)이 있다면 실행하느냐(c)의 문제다.
바닥이 차갑고 배가 좀 고파도 종일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공간과 경험을 기분 좋게 인식했기에 그럴 수 있었다. 자연성은 자발적으로 불타기 때문에 신이 난다. 우리 회사에서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만큼 얼마든지 달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예열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재밌게 일하고 싶다. 불연성일 때 나는 마치 정신이 죽은 듯했다. 자연성이 되어야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알아서 활활 탈 때 화기는 활기로 변할 것이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성장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급여를 올리면서 나에 대한 기여가 되고, 내가 성장할수록 회사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면서 즐거울 거고, 그건 다시 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기여가 될 것이다.
이번에 회사에서 시험을 봤는데 시험지가 몰래 숨겨져 있고 시험 시간이 되자 문자로 시험지 위치 정보가 왔다. 시험이 스트레스가 아닌 게임처럼 느껴지면서 이런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재미있었다. 문제 중 일하는 이유에 관해 쓸 기회가 있어 답안에도 간략히 남겼는데 다시 이 글로 정리한다. 한 마디로 재밌어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