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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Sep 07. 2022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돌로 쌓은 성서!

천재 건축가 이상의 전 생애를 신께 봉헌한 수도자 가우디

가우디는 독실한 신앙인이었고, 건축가로서 지성, 감성, 의지를 골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많은 자연의 소재를 형상화하고, 유기적인 형태의 건축을 설계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한다. 즉 구조와 조형을 조화시킨 건축을 실현하는데 집념을 가지고 매달린 예술가였다. 그가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북동쪽 트란셉트 파사드에 조각한 군상들은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탐구하며 만들어냈다. 그가 병으로 피레네에서 요양을 하며 누워있던 1911년에는, 자신의 고통을 투영하여,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한 남서쪽 트란셉트의 파사드를 구상한다.

그를 천재라고 단순히 말해버리고 끝나면, 그가 전 생을 바쳐 기울인 이러한 열정과 노력이 폄하되는 느낌이 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형과 타워를 올라가는 계단, 실내의 스테인드글라스 (왼쪽), 성당의 하중 실험 모형은 거꾸로 보면 지붕의 형태가 된다.(오른쪽)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의 책임을 맡은 것은 1883년, 그의 나이 31살 때부터다. 사실 이곳은 1882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담당 건축가는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아르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였다. 그러다 그가 건축주와 의견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가우디가 그의 후임으로 성당 건축을 맡게 된다. 그래서 건물의 기초와 성당의 지하묘지이자 예배당인 크립트(crypte)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이미 지어진 상태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배치는 십자가의 머리(caput, 카푸트)에 해당하는 제단이 들어가는 압시드(abside(불어), 앱스 apse(영어); 후진)의 방향이 북서향이다. 일반적으로 성당 건축은 유럽 기준에서 예루살렘을 향하는 동쪽으로 제단이 배치된다. 그런 이유로 가우디가 배치를 바꾸고 싶어 했으나, 기초 공사가 끝난 뒤라 그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1914년부터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설현장에 살며, 자신의 삶과 성당 일이 하나가 된다. 그가 교구의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 치여 죽음을 맞는 1926년까지, 가우디는 43년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 작업에 전념했다. 현재 가우디의 시신은 성당의 지하 크립트에 안치되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영면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는 1924년의 가우디 모습과 예수 수난 파사드의 조각가 조셉 수비라슈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가우디의 조각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가우디가 그리스도로, 요셉으로 조각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가우디를 미사를 집전하는 성 필립으로 그려낸 그림도 있는데, 이는 가우디가 신심이 깊은 신앙인이었던 것을 보여준다.


가우디의 무덤이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크립트, 1926년 가우디의 장례식, 성 필립으로, 그리스도로 그려지고 있는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돌로 표현된 성서로, 가우디의 깊은 신앙심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우디는 전례에도 성서에도 깊은 혜안과 통찰력이 있는 종교인이었다. 그래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종교의식에 충실한 평면 위에 종교적 상징이 건축요소 곳곳에 예술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신심이 건축구조로 표현되어, 성당은 상승을 지향하면서도 가벼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높이 올라가는 건축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어서, 두꺼운 벽이나 기둥으로 받쳐야 하는데, 가우디는 이 하중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며, 조형적 아름다움이란 목표도 달성한다. 중세의 고딕 성당은 상승과 빛을 지향하면서,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건축이다. 두꺼운 기둥과 외벽을 받치고 있는 플라잉 버트레스 등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장치들이 발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이런 것들이 없는데, 가우디의 천재성, 혹은 그의 실험정신, 완벽주의적 성격, 집념 등이 여기서도 잘 드러난다. 가우디가 설계한 가느다란 기둥과 쌍곡선의 볼트는 버팀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결정적인 구조 변경은 수평의 하중을 버티는 육중한 각기둥의 트러스 대신 나무 가지 형태의 기둥이 도입되는데, 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아이콘이다. 가우디의 건축에서는 자연 요소들이 많이 이용되고, 그의 건축을 유기적이라고 하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그런 특징들이 다수 존재한다.


십자가 교차부의 나무 가지 형태 기둥 모습 (왼쪽) 상승과 빛을 지향하면서도, 가벼운 구조적 해결을 보여주는 성당 단면도 (오른쪽)


성당의 꼭대기에는 18개의 탑이 있다. 로마 십자가 모양의 평면 교차부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170미터의 가장 높은 탑이 우뚝 서있다.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탑은 제단이 있는 압시드 위에 자리한다. 성모의 탑 정상에는 12개 꼭짓점이 있는 7.5미터 길이 성모의 별이 2021년 12월에 설치되어 바르셀로나의 밤을 밝힌다. 그리고 각각의 면에 4개 탑이 있어서, 총 18개의 탑이 있다. 16개의 탑은 4명의 복음서 저자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와 12명의 그리스도 제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탑 높이는 바르셀로나의 몽주익 산 높이가 192미터인 것을 감안한 것이다. 가우디는 자신의 탑이 신이 창조물인 산보다 더 높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그리스도 탑'인데, 나름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다. 하느님의 창조물을 넘보지는 않지만,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는 그리스도의 상징이 으뜸이다 하는 선언 아닐까!


18개의 타워 중 2021년에 별모양 피나클이 올라간 성모의 탑 (왼쪽) 생명의 나무 위 삼위일체 피나클, 사제들과 성찬에 쓰이는 포도와 밀 상징 피나클 (오른쪽)



각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사건들 즉 탄생, 죽음 그리고 영광을 그려낸다. 그중 가우디가 생전에 작업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주제인 북동쪽 파사드이다. 이 면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의 사랑, 왼쪽으로 소망, 오른쪽으로 믿음이 주제다. 소망의 문을 장식하고 있는 아취에는 배를 타고 있는 성 요셉이 있는데, 교회를 이끄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얼굴은 가우디를 모델로 하고 있다. 조각가가 가우디 사후 그를 기리며 형상화한 것이다.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를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따뜻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신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도록, 일상의 모티브를 따오고, 배경도 생명으로 가득한 자연의 소재들로 채운다. 영성체에 사용하는 전병을 만드는 밀은 생명을 상징하고, 마찬가지로 성찬에 쓰이는 포도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한다. 바르셀로나 지방에서 많이 키우는 라벤더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등 가우디의 조각에 들어간 많은 식물들은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예수탄생 파사드의 소망(왼쪽), 사랑(중앙), 믿음(오른쪽) 문의 전경과 부분


가우디의 설계에 따르면 남동향 영광의 파사드가 주출입구로 계획되었다. 이곳에는 7개의 샤펠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고, 성 요셉의 샤펠도 있다. 외관에 있는 빗물받이 조각은 이무기 돌이라 한다. 어려운 건축 용어로 석루조(石漏槽)라 하는데, 말 그대로 빗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돌이다. 이무기는 그 모양 생김새가 전설상의 동물로 뿔이 없는 용, 열대지방의 뱀을 이른다. 그 머리 모양으로 추녀 끝을 보호하는 귀면형 장식 기와 토수(吐首)를 만들기도 하고, 빗물이 흘러내리게 돌로 만든 석루조(石漏槽)도 이무기나 용을 새긴다. 둘 다 이무기, 용의 무서운 형상이 악한 기운을 쫓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궁궐의 지붕에 잡상이라는 동물 조각들을 올리고, 장식 기와로 기괴한 괴물의 형상을 한 귀면와(鬼面瓦)를 쓰는 것도 집을 보호하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중세 성당의 빗물받이 괴물들도 악마를 쫓아내는 기능을 한다. 특히나 비가 많이 올 때, 이 괴물들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가우디는 이 빗물받이 조각의 모티브로 달팽이, 개구리, 도마뱀, 도롱뇽, 카멜레온과 같은 파충류와 양서류를 이용했다. 가우디는 상상의 괴물보다는 뱀처럼 실제로 볼 수 있는 자연의 생물들을 더 선호한 것 같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 공원에서도 여러 종류의 파충류를 쉽게 볼 수 있다.

뱀은 성서에서도 인간을 유혹에 빠뜨리는 악의 상징으로 나오는데, 동물 중에 가장 신중한 것으로 여겨져,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는 곳에서 상징으로 도입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상원의원들이 신중한 결정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의자에 거울과 뱀을 새겨 넣는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스스로의 결점을 헤아려 깨닫고, 결정을 할 때 뱀처럼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다. 상원의원들 뿐만 아니라, 법무부의 상징으로도 거울과 뱀을 쓰는데, 모두 같은 기원을 담는다. 우리나라에서 법무부와 법을 다루는 이들이 거울과 뱀의 상징을 마음에 담고 일을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영광의 파사드, 압시드쪽 입면, 도마뱀 세부 (왼쪽) 이무깃돌과 프랑스 법무부의 상징 뱀과 거울, 상원의원 의자에 새겨진 뱀과 거울 (오른쪽)


1986년부터 바르셀로나 조각가이자 화가인 조셉 수비라슈(Josep Subirachs)가 예수 탄생의 맞은편 파사드, '예수의 수난'을 조각한다. 가우디 작품의 맥을 이으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각지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그의 조각들은, 카사 밀라의 지붕 테라스에 세워진 유명한 굴뚝의 조각들과 유사한 조형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배경은 여백처럼 비어 있어서 허한 느낌, 혹은 차가운 느낌이 들어, 식물 장식으로 가득 찬 가우디의 예수 탄생 파사드와의 대조가 크게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가 가우디와 다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우디의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지만,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슬픔을 전하는, 대조적인 상황이라는 반론 제기도 가능하다.


조셉 수비라슈의 예수의 수난 파사드 전경(왼쪽)과 세부, 예수의 수난(중앙), 최후의 만찬(오른쪽)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속죄의 성가족 성당이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의도로 지어진 성당이라 애초부터 모금에 의해서 건설비용을 충당하고자 했다. 1990년부터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복잡한 기하학의 컴퓨터 모델링 실험이 진행되고, 여러 크레인과 진보된 다양한 건설 기술들이 총체적으로 집합되어 있다. 2010년에는 교황 브누와 16세에 의해 바실리카로 축성되며 성당의 지위가 바티칸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격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2026년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해에 완공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동안 공사가 지연되었어서, 그 계획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긴 한다.

1882년부터 시작된 공사가 14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의 내전으로 인해 약 30년간 공사가 지연되고 멈췄었다. 게다가 1936년, 가우디 사후 10년 뒤 과격한 카탈루냐 반종교 주의자들이 성당을 방화하면서, 그곳에 있던 가우디의 아뜰리에가 대부분 불에 탄다. 그러면서 가우디의 아이디어 스케치, 디테일 드로잉, 도면 자료들, 모형과 조각들이 모두 파괴된다. 그렇게 가우디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가우디의 작업을 이어받은 건축가들, 엔지니어들은 가우디 설계의 복원과 해석에 힘을 쏟으며, 구조적인 해결, 마감부의 결정, 다양한 디테일의 적용, 다른 재료들이 만나는 연결부 등 본래의 아이디어를 충실하게 살려내며 지금의 공사를 진행한다. 또한 독일 건축팀의 노력으로 가우디의 아뜰리에를 찍은 사진들을 자료를 분석하여, 가우디 생전의 아뜰리에를 3D로 복원했다. 그 외에도 정교한 석조 건축 기술과 첨단의 3D 프린팅 기술이 도입되고, 고강고 콘크리트가 사용되는 등 가우디의 설계를 이어받기 위해 현대 다양한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1928년, 1908년, 2019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왼쪽) 성당의 도면과 성당 내 가우디의 아뜰리에, 가우디의 무덤이 있는 지하 크립트 (오른쪽)


가우디는 자신이 죽기 전에 성당이 완공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사후에도 자신의 설계가 변형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며 공사를 진행한다. 일반적인 성당 공사의 진행 순서는 가장 핵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제단이 놓이는 압시드(앱스)와 성가대석을 먼저 공사하고, 신자석 쪽으로 확장해 간다. 가우디는 일부러 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짓지 않고, 파사드와 종탑을 만들어 간다. 최대한 설계가 변동될 수 없는 방법을 강구하며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의 사후에도 그의 설계 원형을 최대한 존중하며 지어지고 있다. 심지어 설계도와 자료들이 소실된 어려운 환경을 딛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의 아이디어를 살려내고 있다.


2004년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모뉴먼트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넘어섰다고 한다. 2005년에는 가우디 생전 지어진 크립트(지하묘지)와 예수 탄생 파사트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320만 이상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선견지명이 성당의 공사를 지속하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우디의 건축을 사랑하고 보러 오는 것도 큰 몫을 한다.

사람들이 그의 건축을 찾는 데에는 그의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가우디만의 독창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석수, 조각가, 목수와 철물공 등 수 십 명의 협력자들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공사다. 그 일이 가능하도록 가우디가 쏟아부은 열정과 집념은 머리가 좋은 천재 건축가 이상의 신념이자 신앙이 바탕을 이룬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가능하게 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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