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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Feb 20. 2021

<야구소녀> 재능이 가진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99.8%는 100%가 아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으로 일하던 첫 몇 년간은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게 된 것이 좋았다. 진짜 작가는 아니었지만 어디를 가면 ‘작가님’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내가 찾고 정리한 아이템이 실제 출연자의 입을 통해 나가고, 자막으로 올라가는 게 뿌듯했다.



몇 년 후, 본격적으로 나의 글을 구성하고 써내려 가면서 나는 좌절했다. 아무리 아이템을 구성하고 기획안을 짜도 별로였다. 누가 써도 쓸 것 같은 뻔한 내용. 뻔한 결론. 특색 없는 질문. 

선배가 아이템과 구성에 대해 물어보면 뾰족하게 말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나도 동료도 설득하지 못하는 글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글에 소질이 있기보다 그냥 글 쓰는 나 자신이 좋았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건 과연 무엇인가. 생각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에 반비례해 자존감은 뚝뚝 떨어졌다. 매너리즘에 빠졌고 그 어떤 프로그램도 감흥이 없어졌다. 




야구소녀를 보며 재능의 가능성에만 매달리던 지난날의 내가 생각났다.


중학교 때까지 ‘천재 야구소녀’로 이름을 날리던 고등학생 야구선수 수인. 그녀의 꿈은 다른 고교 야구선수와 다르지 않다.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 하지만 이 꿈을 들은 사람들은 말한다. 너는 '여자'라서 힘도 약하고, 속도도 안 나고, 그래서 프로팀에 가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수인은 계속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한다. 이동진 평론가 님의 말처럼 그녀는 꿋꿋하게 길을 가고, 그 꿋꿋함은 그녀의 미래까지 변화시킨다. 모두가 그녀에게 더 이상 재능이 없다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스스로 입증했다. 



수인의 코치인 진태는 그녀처럼 재능을 입증하지 못했다. 프로팀에 입단하지 못하고 독립구단만 전전하던 진태는 수인의 학교에 코치로 오게 되고, 수인의 장점을 한눈에 파악하고 이를 전력으로 끌어올려 수인의 강점을 만들어준다. 그의 재능은 야구 '선수’가 아닌, 야구선수의 ‘코치’인 것이다. 하지만 수인을 만나기 전까지 진태는 그걸 알지 못한 채 야구선수가 되는 것에 매달린다. 그리고 수인을 통해 그도 자신의 재능을 새롭게 찾는다.



가능성만 있는 재능. 이 얼마나 가혹한 말일까. 

'쟤는 재능은 있는데 운이 뒤따라 주지 않더라고.'
'우리 애가 재능은 있는데 노력을 안 해서..'


‘가능성’은 말 그대로 100%가 될 것 같은 확률. 가능성은 결코 100%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해냈다.'는 말보다 '~할 것 같다.'라는 말로 끝나곤 한다. 프로 선수가 될 것 같았지만, 시험에 합격할 것 같았지만, 원하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리곤 그때의 순간에 매몰되어 취해버린다. 98% 정도 달성했던 애매한 그 순간에. ‘내가 왕년에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말이야.’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3년 안에 시험에 붙을 거라고. 그때까지 합격하지 못한다면 깨끗하게 도전을 포기할 거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는 거지 왜 벌써부터 기한을 정하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다 보면 '조금만' 증후군이 생긴대.
조금만 공부를 더 하면 내년엔 진짜 붙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거야. '붙을 것 같은데'는 객관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냥 내 기분이거든. 그렇게 가능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결국 시험에 붙는 것보다 공부 자체에 집착을 하게 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는 거지.
거기에 플러스.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막 불쌍해. 친구들은 연애에, 취업에 열심히 사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남이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건데 말이야. 그럼 결국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가여운 나’만 보이고 자기 연민 늪에 빠지는 거야.

그 친구는 모든 연락을 끊고 독하게 공부한 끝에 2년 반 만에 원하던 시험에 합격했다.





나는 정말 이 일에 재능이 있을까. 진태처럼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 길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 속 진태는 다행히도 그의 재능을 찾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게 내 재능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설픈 재능은 꿈을 꾸게 만든다. 그 꿈은 한여름밤보다 짧아 깨고 나면 한없이 슬퍼진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재능이 있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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