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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Feb 25. 2021

<파이트 클럽> 나의 욕망은 어디에

욕망의 주체는 타자의 장에 종속된 상태로서만 주체일 수 있다



마음이 헛헛해지면 무언가를 샀다. 그리고 헛헛함은 종종 찾아왔다. 늘 헛헛하다, 하면서도 그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반복됐다.     



모르는 게 죄였던 첫 일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을 못 해냈다고 가열하게 까였다. 당시에는 그게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매서운 눈초리 속에 안절부절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빛나는 귀걸이를 샀다.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지만 조명을 받아 예쁘게 반짝이는 귀걸이가 부러웠다. 그걸 귀에 걸면 나도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 같았다. 귀걸이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온통 레드카펫이었다. 그리고 그 귀걸이는 다시는 내 귀에 올라오지 않았다.     


이전의 몇 번과 다름없는, 지루한 연애가 끝나면 늘 무언가를 샀다. 그것들은 대부분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이나 열심히 하자며 거금을 주고 산 만년필은 몇 번 쓰지도 못하고 잃어버렸고, 마음껏 귀여워하기 위해 산 작은 인형들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벽장 신세. 분기별로 대청소를 할 때마다 가끔 나타나 존재를 확인시켰다. 한 달. 외로움을 대체하기엔 꽤 짧고 아주 많이 비쌌다.     



무언가 살 때면 가장 활기가 넘쳤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늘 필요해서 사기보다 사고 나서 그 이유를 찾았다. 욕망의 이유는 둘러대기도 쉬웠다. 그게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게 문제였으니까.

'이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데 나도 사야지.'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이 정도도 못 사겠어?'      



현대 사회는 뭐든지 꿈꿀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파이트 클럽>의 잭도 무언가를 계속 산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회사 생활에 못 견딜 때면, 이케아의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를 건다. 그리고 새로운 가구들로 공간을 채운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심한 불면에 시달려 병원을 찾아가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의사는 불면은 고통에 속하지도 않는다며 '진짜 고통을 알고 싶으면 환자들의 모임을 찾아가 보라.'는 처방을 내린다.

모임에 나간 잭은 묘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그의 욕망이 한 단계, 더 심화된 것.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몸이 좋지 않고,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다. 잭은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 흘리는 것을 지켜보며 '타인의 고통'을 소비한다. 그들의 삶을 빌어 그들의 욕망을 좇는다.      




The things you own end up owning you.
네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결국 너를 소유하게 되지.     

이케아의 '따듯하고 안락한 느낌'을 사기 위해 가구를 구입하는 잭이나, '그럴듯하게 살아가는 나름 멋진 나'를 완성하기 위해 쓸모없는 걸 사 모으는 내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것들을 결제할 때 적어도 나는 내 의지로 산다고 믿었다. 몇 되지 않는 주체적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진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맞았을까, 그전에 무심히 넘긴 인스타 광고 때문은 아니었을까. 글쎄, 이건 꼭 장만하셔야 합니다! 이번 봄 이건 반드시 사셔야 해요. 유튜브에서 봤던 올 시즌 트렌드 영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이 사회는 나에게 자꾸 욕망을 학습시킨다. 그래서 종내는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삶을 살게 만든다. 라캉은 '욕망의 주체는 타자의 장에 종속된 상태로서만 주체일 수 있다.'라고 했다. 모든 욕망은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만들어 낸 가상의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핸드폰을 닫고 집을 나섰다. 바람에서 제법 봄 냄새가 나네. 피부에 닿는 바람을 느끼며 한강변을 걷는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다. 조금 빠르게 걸어볼까. 오랜만에 숨이 차오른다. 코로 찬 바람이 들어와 찡하게 아프다. 다리도 뻐근하게 아려온다.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몸의 기관들이 앞다투어 자기주장을 펼친다. 아, 이게 나였구나. 이 모든 감각이 나였음을 새삼 알게 된다. <파이트 클럽>에서 격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거였을까. 소비 사회에서 소비자 153 쯤으로 살다가 오로지 나 자신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쓸 게 없어서, 쓰다 막혀서 괴로운 순간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괴롭지만 계속 쓴다. 더 이상 일회성 욕망 따위에 나를 무책임하게 던져놓지 않을 것이다.                



https://youtu.be/49FB9hhoO6c

Where Is My Mind? · Pixies


Your head will collapse, and there's nothing in it

And you'll ask yourself

의식이 멀어지고, 머리가 텅 비게 되면서

너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겠지


Where is my mind?

내 마음은 어디에 있지?


Way out in the water, see it swimmin'

물의 바깥 저 멀리에서 헤엄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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