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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Mar 11. 2021

도시의 소음이 음악으로 변신하는 순간 <소울>

조 가드너와 뉴욕 사운즈 쿼텟


Photo by Andrea Cau on Unsplash


도시는 편리하다. 몇 발짝만 걸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특유의 빠른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불러온다.

그러나 도시는 너무 어렵다. 원하는 걸 가질 순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 역시 결코 작지 않다. 매 순간 새롭게 겪는 것들은 너무 빠르고, 너무 피로하다. 잠깐만 놓쳐도 금세 꼬여버리는 스텝, 그 찰나에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는 너무 빨리 사라진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마주하다 보면 이 멋진 도시에서 나는 접착력을 잃은 테이프처럼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이상하게 뉴욕은 정이 가지 않았다. 뉴욕의 아름다운 곳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아도, 누군가의 뉴욕 여행기를 들어도 ‘뽐뿌’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불친절하다며. 뉴욕은 멋지긴 한데 특색이 없잖아. 오리지널리티, 그게 없단 말이지. 나는 남들 다 가는 곳보다는 나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을 갈 거야. 그게 여행의 맛이지! 뉴욕은.. 언젠가 가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누군가 뉴욕 찬양을 할 때마다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멋지지만 부럽진 않은 친구. 내게 뉴욕은 그런 친구였다.     



영화 <소울>의 배경 역시 뉴욕이다. 극 중 주인공인 조 가드너는 음악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로’ 멋진 무대에 오를 날을 꿈꾼다. 영화에서는 그가 근무하는 학교와 어머니의 의상실, 재즈 클럽을 바삐 오가는 조의 모습을 보여주며 뉴욕의 풍경을 소개한다.



걸을 때마다 라디오 주파수처럼 스치는 사람들의 말소리, 도로에서 울리는 온갖 경적음, 그 사이를 뚫고 지나는 사이렌 소리, 뚝딱이는 골목길의 공사 소리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소음들은 내 귓가에 울리며 마치 뉴욕의 어떤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한 번 가본 적 없음에도 조 가드너가 지하철을 타는 순간에는 어디선가 악취가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뉴욕의 지하철은 노후된 시설과 악취로 악명이 높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혹은 순간을 경계한다. 그 목적이 극한의 즐거움일지라도. 조 가드너는 꿈에 그리던 연주를 하게 되고,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 공간은 공교롭게도 ‘잃어버린 영혼(Lost Soul)’들이 머무는 공간과 같은 곳이다. 이곳을 방황하는 영혼들은 어느 한 생각에 사로잡혀 집착하고 그 순간만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이는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한순간에 사로잡히지 말 것. 

조 가드너 역시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르지만 끝난 후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오래도록 간직한 유일한 목표를 드디어 이뤘는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무대를 완성했으니 이제 그의 인생은 끝나도 상관없을까?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젊은 물고기가 늙은 물고기에게 말했지.
“저는 바다라는 곳을 꼭 가고 싶어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했어. 
“네가 지금 있는 이곳이 바다란다.”     

“여기 가요?” 
젊은 물고기가 물었지.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저는 바다를 원한다고요.”     



허탈해하는 조 가드너에게 재즈 뮤지션 도로시아 윌리엄스는 물고기와 바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불꽃이 영혼의 목적이 아니듯, 찰나의 순간이 생 전체를 대표할 순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배경을 뉴욕으로 정한 것은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 뉴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주를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실수를 해도 실수한 대로 또 새로운 음악이 되는 재즈처럼 뉴욕은 다르지만 조화롭다. 소음이라고 느껴졌던 뉴욕의 소리들은 그 자체로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 클럽>에서 김혜리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도시의 교향악’이었다. 새삼 뉴욕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왔고 언젠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jazzing’한 무드 그 자체인 뉴욕의 순간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구름은 유난히 몽글몽글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바람은 적당히, 땅을 딛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경쾌했다. 영화 속 22처럼 바람에 빙글 돌아가는 꽃잎이 눈에 들어왔고, 그걸 보고 감탄하는 내가 꽤 괜찮아 보였다. 22가 말했듯, 나의 불꽃은 어쩌면 하늘 보기나 걷기인지도 모르겠다. 그 불꽃이 비록 다른 사람에겐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마찰 정도일지라도 그 불꽃은 언제나 내 곁에 있으니까. 나는 알아볼 수 있으니까. 불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늘 기억하고 싶다.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새롭게 생겨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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