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gela B Jun 06. 2018

키워드 프로젝트 - 4. 여자

라틴아메리카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동양인 외국 여자인 것의 의미


내가 여기 모케구아에서 사는 곳은 도시 외곽 산 안토니오 지역의 작은 아파트 단지인데, 여기에서 구할 수 있는 옵션 중 그나마 학교와 가장 가깝고 안전한 곳이라는 평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그리로 집을 구해 이사를 갔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2단지 아파트에서는 간헐적으로 새벽밤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간간히 물건을 부수는 것 같은 소리도 함께 들린다. 처음에 스페인어를 잘 몰랐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귀가 열리고 보니 제발 때리지 말라고 매달려 애원하는 소리였다. 이후에 남자가 고함을 지르고, 아이들이 엉엉 우는 소리도 들렸다. 놀라서 작은 베란다로 몸을 바짝 붙여서 소리를 들어보니 여자가 아이들은 때리지 말아달라며 울면서 부탁하고, 남자가 또 흥분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 


이는 틀림없는 가정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경찰에 신고할 결심이 섰고, 이를 위해 친한 코아르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했는데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들 날 말렸다. 그러지 말라고.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에게 한 선생님이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첫 번째는 외국인이고 여자인 내가 가정폭력범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에게 후에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고, 더 충격적인 두 번째 이유는 - 이런 일이 여기서는 너무 흔해서 경찰에 신고도 먹히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2015년 페루의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자료. 교육수준이 낮은 시골 지역 (특히 고산지방)이나 인구가 많은 경우에 가정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높다.  


약 3분의 1의 여성인구가 신체적,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30%이상은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살인당한다는 WHO 스페인어 통계자료이다.



멕시코 문화를 주제로 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 등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여자 어른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 것은 중남미 문화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그것이 사회적 지위로 연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년 가까이 살아온 내 경험으로는 되려 "너네는 가정의 일이나 사소한 일만 맡거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건 우리 우월한 남자들이 알아서 할게." 이런식으로 여성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더 강했다. 

사실 에콰도르 남자랑 이 주제로 예전에 언성이 살짝 높아졌었다. 그 남자는 "중남미 대부분의 가정에서 나이 많으신 여자 어르신들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니 여성의 지위는 높은 편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것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깔린 시각임을 지적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마음으로는 내 말을 못 받아 들이더라. 남미 여자는 여기에서 대학을 나와도 한달에 400~500달러 벌기도 힘든 직종을 얻는 일이 과반수인데 말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자들은 집안 형편 상 초등학교나 세쿤다리아(남미의 5학년 학제.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 중간 쯤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성교육이 부실한 탓인지 피임을 딱히 하지 않아 10대 중후반에 여자들이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강한 가톨릭 문화상 낙태가 금지이므로 주로 여자들이 감내하고 낳아 기른다. (남자들은 여자를 임신시키고 - 속된 말로 "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전반적으로 중남미 남자들은 책임감이 부실한 편이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싱글맘이 어떻게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자신의 자식들을 잘 교육시켜서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겠는가? 중남미의 대부분은 복지나 사회적 인프라도 굉장히 부실한 개발도상국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10대 싱글맘의 자식들은 여지 없이 10대 싱글맘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저소득층의 삶을 물려받는다.  


https://archive.org/details/ChristianRodriguez_2017G

(라틴아메리카 싱글맘에 관련된 TED Talk. 우루과이 출신 TED 연사인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역시 자신이 10대 싱글맘의 아들임을 밝히고,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불합리한 현실이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




이웃집의 일 (물론, 이 공포스러운 일은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때문에 궁금해서 신문기사를 찾아 읽어보았고, 그 덕에 여성살해나 폭력은 이곳에서 생각보다 정말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얼마 전 리마에서 자기 여자친구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그녀에게 염산을 부어버리고 때려 죽이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요즘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라고 하고,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성폭력이나 여성살해 (스페인어로 feminicidio 혹은 femicidio 라고 한다) 가 흔해서 이와 관련된 시위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가 다른 대륙에 비해 여성살해 비율이 높아 하루에 적어도 12명이 살해를 당한다고 하니, 이곳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고단한 일일 수 밖에 없다. 과연 이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중남미에서 얼마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지 알 수 있는 기사들. 혹시 스페인어가 되시는 분은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문기사 링크들을 하나씩 여기에 옮긴다.)







중남미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함부로 해도 되거나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이상한 형태의 남성우월주의, 이른바 Machismo 마치스모 문화가 강한 편인데, 남미에서 특이하게 강한 이유는 "식민시대"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내게도 팔팔한 젊은이부터 다 늙은 할배까지 -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려는 인간들이 굉장히 많았다. 제일 흔한 예시로서는 - 아마 남미에 오신 여성여행자들이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한번쯤은 겪어보셨을 - Piropo 삐로뽀. (영어로는 catcalling 이라고 하는, 한마디로 수작거는 짓거리 -_-;; 를 말한다) 


다른 서구권에서도 catcalling 은 일어나는 일이지만 - 문제는 여기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이를 시전하면 굉장히 문란한 여성, 행실이 더러운 여자 등으로 여긴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여자는 수동적이어야 한다" 라는 틀에 있는 것이다. 이게 이성 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그래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사실 여성의 피동적임, 수동적임을 강조하는 문화는 마치스모 문화와 함께 사회 전반에 내재되어 있다.


예전에 남미 친구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이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곳 사람들은 이 행동이 이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비판적 시각 자체를 갖지 못했다. 

내 페루 제자들 중에 가장 똑똑한 축에 드는 여학생에게도 "난 이 문화를 이해를 못하겠어서, 요즘은 필요하지 않으면 집밖에 나가지도 않고 외출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특히 드문 동양인이라, 정말 나가기만 하면 Chinita bonita (치니따 보니따, 한마디로 예쁜 중국 여자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동양인의 대명사가 치노, 치나이다. 치니따는 치나를 더 귀엽게 일컫는 말) 하면서 별 시덥지 않은 놈들이 나에게 다가와 원치 않는 삐로뽀를 듣는 확률이 100퍼센트다" 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 "그래요?" 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나마 내가 아는 페루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한 내가 Tio 띠오 (스페인어로 삼촌) 라고 부르는 데니스 선생님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이곳의 오래 된 문화이고 네가 이뻐서 그런거니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이라" 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아르헨티나에서는, 많이 배운 지식인층이나 장관부터가 나서서 "삐로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라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했다며 아르헨티나 출신 여자애가 치를 떨었었지. 아직은 라틴아메리카가 여성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전혀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삐로뽀의 종류와 대처법. (....)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그 삐로뽀를 행한 사람의 몫이여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런 문화와 함께 -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도 심한 편인데, 예전에는 잘 몰랐을 때는 생각없이 들었던 노래들도 - 차라리 내가 스페인어를 아예 몰랐으면 좋았겠다 -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골적인 노래가 많다. 성인이 듣는 것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이런 노래를 아이들이 금방 듣고 따라한다는 것. 우리나라 같았으면 음악방송에서 다 편집되어 나왔을 것이고, 유럽이나 미국만 하더라도 explicit 을 달거나 표시를 하겠지만 여긴 어린, 초등학생도 안되어 보이는 애들도 그런 노골적인 노래를 줄창 따라부르고 있는 걸. 


티비 프로그램조차 너무나 노골적인 유사성행위를 대낮부터 보여주는데, 대부분 여자가 헐벗은 것만 보여주지 남자는 꽁꽁 싸매고(....) 있다. 그걸 다섯살 짜리 아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보면 기가 찬다. 그리고 이곳은 장거리 버스를 타면 영화를 틀어주는데, 분명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18세 이용 관람불가 영화가 나와서 (...) 나로서는 굉장히 낮뜨거웠다. 그런데 이곳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못보게 하거나 관람 지도조차 하지 않더라. 모든 인간들이 저런 선정적인 것만 계속 보고 자라니까 - 이 다음세대 아이들 역시 여성에 대한, 굉장히 천한 시각밖에 가질 수가 없겠구나 싶어서 - 이들의 미래가 걱정이 심각하게 될 정도였다. 



여튼 백문이불여일견. 이곳에서 대히트를 쳤고 아이들도 다 춤을 따라췄던 레게톤 (중남미 스페인어권 음악. 노골적인 가사가 일품으로 특유의 꿀렁꿀렁한 리듬이 의외로 중독성이 있다는 -_-;; ㅋㅋㅋㅋㅋ) 과 바일리 펑키 (브라질에서 최근 유행하는 장르로 - 빈민촌인 파벨라 쪽에서 파생된 음악이라 그런지 역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가사와 뮤비가 돋보인다 -_- ;;;) 뮤직비디오 링크 몇개를 아래 걸어두겠다. 

과연 여기에서 헐벗지 않고, 뭔가 뇌쇄적인 눈빛으로 굶주려 보이지 않는 여자가 안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있는지 없는지 한 번 직접 알아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aKuivabiOns

내가 처음에 남미에 왔었을 때 이미 메가 히트 급 유행을 하고 있던 Shaky Shaky. 미국인 친구가 보고 충격먹었었다며 이야기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kJQP7kiw5Fk

작년에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다고 들은 남미 레게톤 대히트곡 데스빠씨또. 가사를 들어보면 훌륭한 야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yd_eoMOvqk

가사는 별로 좋지 않지만.... 리듬 때문에 여기서도 인기가 많았던 브라질쪽 펑키 장르 MC Kevinho - Olha a Explosão (KondZilla).....

https://www.youtube.com/watch?v=EWcOY14GWwM

남미로 파견 나가기 요즘 브라질서 유행하는 음악이라며 추천 (?) 받았던 MCs Zaac & Jerry - Bumbum Granada 난 이걸 보고 충격에 빠졌다

(참고로 한국 같은 동아시아권 문화와는 달리 - 중남미에서 최고로 치는 여성의 예쁜 몸매 기준은 무조건 curvy 하고 sexy 한 것이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들 모두가 큰 엉덩이, 가슴, 허벅지가 아주 매력적이다. 북미 출신 친구들이나 사는 한국 친구들 말로는 북미의 기준도 비슷하다네. 아메리카의 기준인가보다.)




오죽하면 브라질 친구가 예전의 가사와 멜로디가 감미롭고, 삶과 사랑에 대해 시처럼 노래하던 아름다운 브라질 음악은 이젠 거의 다 죽었고, 이젠 마약과 폭력, 섹스를 옹호하고 - 선정적이며 여성을 비하하는 음악만 남았으며, 지금 10-20대 세대들은 그런 음악만 좋아한다며 한탄을 거듭했겠는가. 브라질 친구 뿐만 아니라 똑같은 이야기를 칠레 친구에게도 들었었다. 예전 독재에 항거하며 불렀던 아름다운 저항음악들은 가고 현재 남미에는 저질 음악만이 판을 친다며 혀를 끌끌차던 친구들.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곳에서 K-POP이 상대적으로 Pure 한 음악으로 인정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인기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도 크지 않나 생각한다.





-


전반적인 문화 자체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곳.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 자체가 미비한 곳.

이런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들 입장에서)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곳의 여성 문화에 비판적인 사고로 딴지를 거는 동양인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 참으로 피곤하고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덧붙임.

언제 에콰도르 호스텔에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익숙한 나와 다른 친구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중남미 여행을 약 7개월 정도 해 온 싱가포르 친구가 말하기를 - 

"이곳 중남미 남자들은 종종 여자를 무슨 고깃덩어리로 보는 거 같다" 는 이야기를 대놓고 했었는데, 

그 말에 거기 모인 우리들은,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 아주 슬픈 일이지만 - 그 말이 맞다고 강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워드 프로젝트 - 3. 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