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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ug 22. 2022

[방학 특집] 겨울방학 맞이 북서부 여행 (1) 후후이

2022.07.15.~07.20. 아르헨티나 북서부 고산지방 Jujuy

올해 2월 말에 파견 온 이후 처음으로 방학을 맞았다.

아르헨티나는 남반구에 위치해 북반구에 위치한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라, 보통 5월부터 서서히 겨울의 징조가 오면서 6-8월이 춥고, 제일 혹독한 8월이 지나고 8월 말부터는 조금씩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르헨티나에는 연휴가 좀 지나칠 정도로- 이는 정치적인 이유도 섞여있다고 하는데, 과연- 많아서, 그런 징검다리 연휴와 긴 주말들을 이용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도시(코르도바, 로사리오 등)로 짧게 짧게 여행을 했었다.


이번엔 나름 2주간의 시간이 있는 겨울 방학을 맞고서는, 웬만한 곳은 남미에서 안 가본 곳이 없는(일단 아마존 강을 며칠 동안 화물선 타고 건넌 게 레전드...ㅋㅋㅋㅋ) 내가, 칠레에 있을 때 시간 상의 여유로 가지 못했던, 남아있는 남미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 북서부를 다녀왔다. 아르헨티나에서 긴 여행을 한다면 제일 첫 번째로 가고 싶었던, 내가 마음 속으로 늘 그리워하던(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살던 페루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겠지) 안데스 고산 지방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




2022.07.15.금.


어제 방학식을 마친 후 오늘 바로 후후이 Jujuy로 떠날 채비를 하고,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의 잠은 자지 못한 채 새벽부터 아에로빠르께 공항으로 오는 우버를 불러서 타고 왔다.


아에로파르케 Aeroparque(코드명 AEP) 라고 불리우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공항은 꽤 외곽으로 나가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CABA(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안에 있어서 버스로도 쉽게 오갈 수 있다. 국제선 비행기가 드나드는 공항인 에세이사 Ezeiza는 CABA가 아닌 Provincia(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 있기에 뭐 30-40분마다 한대 올까 말까한 버스로도 갈 수는 있지만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고 꽤 멀다. 비행기 표가 싼 경우가 많은데 집이 에세이사와 절대적으로 가까운 게 아니면 아르헨티나 국내여행은 무조건 아에로파르케로 할 것.


후후이 공항에서 시내는 꽤나 먼데다가 아예 대중교통이 없고, 지금이 방학이라 극성수기임을 잊었던 내가 겨우 부킹닷컴으로 잡은 숙소는 시내에서 또 멀어서 택시기사와 두 번의 흥정이 필요했다. 아에로빠르께 공항에서부터 만난 친절한 체육교사 훌리아 덕에 택시를 같이 타고, 나눠내고, 다시 시내를 벗어난 내 숙소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여기 지역 출신 후헤뇨 Jujeño(후후이 사람을 일컫는 말. 남자는 후헤뇨 Jujeño/ 여자는 후헤냐 Jujeña라고 한다)로, 갖가지 여행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도에서 쓰는 사투리 느낌의 뽀르떼뇨 Porteño 억양과는 다른, 페루나 볼리비아, 칠레 북부 느낌의 스페인어라 오히려 이에 익숙한 나에겐 알아듣기 편했다.


숙소에서 내려서 주인인 후안 마누엘과 인사를 나누고 짐을 푼 뒤, 이 숙소와 가장 가깝다는 Jardin Botanico (식물원)으로 갔다.

 

숙소 주인인 후안마가 준비해준 늦은 점저. 오랜만에 먹어보는 동글동글한 안데스 감자가 맛있었다.


식물원이라면 응당 유모차도 끌수 있고, 가족 단위로 가볍게 산책하면서 구경하기 좋은, 가족 친화적인 곳이라는 게 내 상식인데 이 식물원은 시작부터 하드코어... 그냥 등산길이었다. 구글에 어째 악평이 간간히 싶었더니, 아마 가족끼리 여행 온 사람이 남긴 글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무등 태우거나 중간에 하산하는 수 밖에 없는 길이었기에.



후후이 자체도 1260m 정도의 고도가 있는 도시인데 여기서 또 등산이라니.


노부부 어르신들이 무릎과 허리를 잡고 겨우겨우 천천히 올라오시고, 아버지가 징징대는 아들을 무등으로 태워서 헉헉대며 올라오는 광경을 처음부터 보면서 홀로 온 나는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나역시 무작정 등산을 했다.



식물에 대한 표지판은 별로 없지만 중간중간에 저런 귀여운 글이나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식물원인데도 불구하고 식물에 대한 설명도 별로 없고(이상하게도 표지판이 뽑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길도 안내가 잘 되어있는 편이 아닌데다 중간 중간에 내가 문을 따서 열고 나갔다가 다시 닫아야하는 굉장히 괴이한 곳이었다.




어떤 지점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나름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문을 열 수가 없어서 근처에 있던 머리가 긴 사람을 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뒷모습을 보니 머리가 길어서 여자 분인가 했더니 불러서 앞을 보니 수염이.... 여튼 이 머리가 긴 청년은 친절하게 나를 도와주었고 나도 고맙다고 인사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도 길어서 여기 근처에 사는 후헤뇨 Jujeño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줄 알았는데, 이 머리가 긴 청년과의 질긴 인연은 이 여행의 첫 날부터,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까지, 그리고 현재 지금 시점까지 계속 되고 있다.)



여튼 후안 마누엘은 등산을 마치고 숙소로 허위허위 돌아오는 나를 보며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축구를 하러 시내로 나가는 길에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나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가볍게 시내 구경을 마친 뒤, 맛있다고 소문난 북부식 엠빠나다를 사들고 다시 숙소로 와서 내일의 투어를 위해 잠을 청했다.



후후이 시내 자체가 작아서 그냥 웬만하면 도보로 다 다닐 수 있다. 후후이의 진짜 볼 것은 후후이 시내 밖 후후이 주와 근처 살타 주에 다 있다!


위치가 시내에서 멀고 주변에 불이 없다는 점(후후이 자체가 큰 도시가 아니라 그렇다)이 단점이지만, 숙소 자체는 참 멋졌다.





2022.07.16.토.

* 아래에 쓰인 지명은 전부 구글맵 검색을 위해 외국어표기법을 따른다.


아르헨티나 북서부 Noroeste Argentino 여행 계획을 짤 때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은, 투어 신청과 투어를 어디에서 시작하느냐였다.


대한민국보다 28배가 크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라 그런지 볼 것이 참 많은 아르헨티나.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십중팔구 여행지로 추천해주는, 아름답기로로 소문난 북서부 Noroeste 에는 정말 갈 만한 장소가 많은데(나도 시간을 짜 내어서 투어를 많이 돈 편인데도 다 못한 게 있다) 지도를 살펴보면 살타에서 더 가까운 곳이 있고 후후이에서 더 가까운 곳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식 소금사막인 살리네스 그란데스 Salinas Grandes나 안데스 지방의 아름답기로 유명한 작은 마을 이루샤 Iruya는 살타 주에 속해있지만, 살타보다는 후후이에서 가는 것이 훨씬 가깝다. Purmamarca 푸르마마르카는 칠레, Tilcara 틸카라, Humahuaca 우마우아카 같은 유명 관광지는 볼리비아 접경지대로 향하는 도로랑 가까워 만약 육로로 칠레나 볼리비아로 가면서 들렸다 갈 수도 있다.

Cafayate 카파샤떼나 Cachi 카치 같은 지역은 살타 주 남부라 살타에서 가는게 훨씬 가깝고.


어차피 살타 시 남부에 위치하고 길도 다른 카파샤테나 카치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북부로 올라오는 모든 투어는 살타에서 출발해서 후후이를 들렸다가 가기 때문에 - 나처럼 살리나스 그란데스, 이루샤, 푸르마마르카, 우마우아카, 틸카라 등을 다 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후후이에 베이스를 잡고 움직이는 것이 시간 낭비와 육신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살타에서 투어 출발은 오전 6시고, 살타 도착은 밤 9시쯤 되지만 경유지인 후후이에는 오전 8시 반~9시 반, 도착은 저녁 빠르면 5시, 보통 6~7시 전후로 도착한다.) 다만 후후이 쪽 투어를 돌게 되면 가는 일정이나 길이 겹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세번씩 같은 풍경을 보는 경우가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이 어긋나면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하지만 - 결국 스트레스를 왕창 받는 - MBTI 유형에서 철저한 J형의 나(내 성격에서 이런 면은 확실히 구렁이 담넘어가듯 모든 일이 성사되는 남미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이 같은 사실을 구글링의 은혜로 알고 있었지만, 어째 미리 예약했던 투어사는 나더러 7시 20분까지 약속 장소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일단 미심쩍긴 했지만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젠장 역시나 그쪽의 실수였다(후술하겠지만 이날의 투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라우라에게 엿을 먹였다).


후후이를 지나는 모든 투어사 버스가 서는 곳이라 여기에 투어 차량 타러 와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이날 Humahuaca 우마우아카 마을과 더불어 Hornocal 오르노칼이라는, 지질학적 이유로 14가지의 색을 가지게 된 멋진 무지개빛 산을 보러가는 투어를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던 투어 차량은 꽤 긴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그날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서 너무 추웠는데 입이라도 얼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이 나와 같은 투어를 신청했었다! 스페인어를 하도 잘해서 여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사람이란다. 이름은 Laura 라우라. 이 친구도 유아교육 및 초등교육 전공을 마치고 작년에 졸업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벨그라노 소재의 유명 이탈리아 학교에 1년 계약으로 일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아무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머리 긴 청년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긴가 민가 하던 찰나에 청년이 기다리던 차량이 온 듯했다. 청년은 혹시 살리나스 그란데스로 가냐고 물었고 우리는 아니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가고 결국 아침부터 우리 둘만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추워서 뒤지겠는데 도대체 이놈의 버스는 언제 오냐고 전화하고 난리치는 통에 겨우 도착한 차량에 탑승했다.


어제 살리나스 그란데스 투어 덕에 몇 곳은 이미 섭렵했다는 라우라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즐겁게 투어 시작.


내가 그리워하던 고산의 풍경과 선인장. Cardon이라고 하는 선인장의 일부인데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아르헨 북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보호종이다.
푸르마마르카 마을. 여기도 일곱 가지 색의 산이 유명하다. 이를 보러 등산하다가 우연히 어제 후후이에서 헤어졌던 훌리아를 만났다 ㅋㅋㅋㅋㅋㅋㅋ 셋이서 사이좋게 등산.
아름답다라는 말보다 웅장하고 광활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내가 페루서 살던 곳도 이랬는데. 아마 실제로 다시 가진 않겠지만 항상 마음 속에 남아있을 그 곳.


이후 우리만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스위스 출신의 남미를 장기여행 중인 젊은 커플을 만났다.

남자의 이름은 아민, 여자의 이름은 버지니아인데 이들의 배경도 독특했다. 아민은 부모님이 이라크 난민 출신이고 버지니아는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했다. 둘은 NGO 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연인이 되었다고. 이들과 금방 친해진 우리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우마우아카를 지나 대망의 오르노칼(내가 후후이에서 제일 기대하던 곳이었다)로 가기 위해 4x4 차량으로 바꿔서 이들 커플과 함께 탑승해 중간까지 갔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전화해서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알고보니 투어사가 - 내가 분명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 오르노칼 가는 명단에서 나를 빼버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 씨!@#$%^&* 말그대로 욕나오는 상황이었다.


오르노칼 가는 길은 고산이고 험해서 우리가 타고온 18인승 차량으로는 갈 수 없고, 택시 같은 승용차나 4x4 차량을 타고 와야하는데 이 차량 수배가 안된 것이었다.

라우라는 투어사에서 이 투어에서 간다고 보여주는 사진에 오르노칼이 있어서 투어에 오르노칼이 포함된 줄 알았다고 했다... 라우라는 나처럼 돈을 엑스트라로 내고 명백한 투어사의 실수로 배제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라우라의 경우는 투어사에 낚였다고 볼 수 있었다(...)  

여튼 우리 둘은 후후이에 온 큰 목적이었던 오르노칼에 가지 못해 속이 무지무지 상해 있었고, 사람들이 돌아올 동안 우마우아카 마을 구경이나 하라고 풀어준 가이드의 말에도 웃지 못했다.



밥 먹으라고 간 시장 근처. 형형색색의 안데스 감자는 예뻤고 야마 고기로 만든 밀라네사는 그저 평범했다.
우리 둘은 체념하고 포기하는 대신, 이렇게 된 이상 마을 구경하면서 Plan B나 세워보자며 벌써 오르노칼 가는 택시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 성격이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거대한 Cardón 선인장. 19m까지 자라는 큰 선인장이다. 페루에서 살 때 이 선인장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꾸미고 모자를 씌우곤 했었다.



여튼 포기를 모르는 두 외국인 여자는 방법을 찾았고, 라우라가 시내로 나올 때(후후이는 시내와 버스 터미널 거리도 멀고 대중교통이 없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거나 렌트해야한다) 만났던 택시기사 연락처를 이용해 월요일날 투어가 가능한 사람을 수배했고, 택시기사의 인맥으로 한 사람을 구해 하루 17,000페소를 내고 오르노칼로 가는 택시 투어를 결정했다. 사실 우리 둘다 투어사가 우리에게 준 엿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여기까지 왔으면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생각했기에 결정도 빠르게 내렸다. (아니, 이 투어사는 살타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회사인데 왜 그랬을까 진짜.)

그렇게 뒤로 갈 수록 뭘 구경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오늘의 이상한 투어 종료.


(나중에 돌아온 스위스 커플의 말에 따르면 타고 가던 차가 오르노칼로 가는 길에 펑크가 나서 ㅋㅋㅋㅋㅋ 그들은 그들대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게 뭐냐고 ㅠㅠ)



나보다 며칠 먼저 후후이에 와서 구석구석을 탐험한 라우라 덕에 후후이에서 보기 힘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함께 가게 되었다. 이름은 Finca Cocina Urbana.


중간에 있는 식물에 에피타이저로 김튀김 같은 게 걸려서 나온다. 상당히 맛있음. 분위기도 좋고 멋진 레스토랑이다.
후후이 지방에서 나는 토속적인 재료를 주로 사용해서 맛을 낸다고 하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대망의 디저트. 키누아와 초콜렛 그 자체를 함께 내왔는데 아이스크림이 아니면서 아이스크림 맛을 내는 이 희한하고 입에 살살 녹는 맛을 뭐라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다. 오늘의 베스트!


저 디저트 때문에라도 다시 오고 싶었지만 이 식당이 일요일은 열지 않아서 다음 날은 못갔다는... ㅠㅠㅠ 혹시나 후후이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기 레스토랑 강추. 파인다이닝 느낌이라 가격은 다른 일반 식당에 비해서 좀 나가지만 가격값을 한다. 되도록 후후이에서 나는 재료를 고집하는 주방장과 함께, 후후이가 속한 고장인 북서부산 와인 선택지가 넓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여튼 여행사의 삽질로 인해 고생 좀 한 하루였지만, 라우라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한 하루였다.

내일도 같은 여행사인데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하며 잠들었던 것 같다.





2022.07.17.일

오늘은 살리나스 그란데스 투어를 가는 길이다.

어제 여행사에서 저지른 여러 가지 실수로 인해 코레아나인 내 이름이 단단히 각인이 박힌 것인지, 어째 관심병사 같은 취급을 받으며(...) 이번에는 가이드가 아침 일찍부터 직접 친절히 이제 살타에서 출발한다고 문자도 오고, 중간에 전화가 와서 지금 8시 40~50분쯤 도착할 것 같으니 그때 나오라면서 오늘은 아주 친절에 친절을 퍼붓듯 했다. 어제의 매사 심드렁한 가이드에 비하면 더 친절하고 좋은 사람 같긴 했지만, 어째 어제 지은 죄가 있으니 쩔쩔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여행사에서 나를 좀 더 잘 케어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만남의 장소가 Vea(그냥 후후이 경유지는 모두 여기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슈퍼마켓이었는데 오늘 나와 같은 투어를 하는 사람은 멘도사에서 온 엄마 나탈리아와 아들 마르틴이었다. 특히 마르틴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데 보통의 그 나이대 남자애 같지 않고 정말 착하고 의젓한 아이였다. 나는 이 모자 여행자와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마르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 내가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게 신기했는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계속 나를 힐끔거리고, 또 나를 챙겼다. 귀여운 녀석.


살리나스 그란데스 가는 길도 여튼 푸르마마르카를 지나서 들어가는 길이라 푸르마마르카를 한 번 더 가게 되었다. 푸르마마르카도 여행 엽서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예쁜 마을인데 그만큼 수요가 세서 성수기에 숙소 잡기가 엄청 힘들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 왓츠앱, 이메일 등으로만 예약이 가능한 곳이 많아서 그것도 불편한 점이었다. 나는 결국 말그대로 열군데가 넘는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나서 틸카라로 숙소를 잡았다.



푸르마마르카 전망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과, 심장을 부여잡고 가야하는  낭떠러지 그 자체인 살리나스 그란데스 가는 길.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현재 주변에서 리튬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곳이라(한국의 포스코도 여기에 참전해있다) 우유니 같은 풍경까지는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 길이 예쁨.
아르헨티나 북부의 전통 음식인 Locro 로크로. 국기의 날이나 독립기념일 같은 아르헨 국경일에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먹는 전통 음식이다. 수도에서 은근히 찾기 힘든 음식.
나탈리아와 마르틴 모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다시 걸었던 푸르마마르카. 북부 투어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한 풍경을 몇 번씩 보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시 봐도 그림같다.


나와 소중한 하루를 함께 보내준 멘도사에서 온 모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후후이 시내로 일찍 돌아온 나는 라우라와 다시 만났다. 라우라는 원래 근처 온천을 갈 계획이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뻗어버렸다고. 대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길래 함께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곳을 찾아 돌아다녀보았다.

일요일의 후후이는 거의 유령도시나 다름 없었다. 중심부 광장 옆 카페 말고는 문을 연 곳이 없어서, 거기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시켰다. 벌써 저녁 예닐곱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Merienda 메리엔다 (오후 간식;;)을 팔고 있는 여기는 아르헨티나. 보통 사람들이 빨라도 밤 9시 반, 10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식당도 대부분 늦게 열고 해서 한국 사람들로서는 적응이 잘 안되는 부분 중에 하나다.




완전 관광지 중심가였는지라 솔직히 맛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매우 훌륭했다.



라우라와는 우선 외국에 나와서는 싱글 여성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서로 직종이 같아서인지, 서로 인생 이야기도 하고 드문드문 속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라우라네 학교는 유럽 표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학제라 마지막 학년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 졸업 시험을 보고 졸업장을 받으면 유럽의 대학으로 바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굉장히 학비도 비싼 편이라는데, 유치원부터 15년을 오로지 그 졸업장을 위해 투자를 할 수 있는 부모들일테니 얼마나 돈이 많겠는가. 하지만 그 뿐이라며, 라우라는 기본적인 양육조차 학교에 떠맡기는 부모들의 이기심과 철없음을 비판했다. 나 역시 만 10년 넘게 비슷한 학령의 아이들을 가르쳐온 사람이라 그런지 10년 전과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보인다. 아이를 낳으면 그것으로 부모의 할 일을 다 마친 양, 마치 학교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부모들이 꽤 많아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들의 잘못으로 망친 아이 Spoiled child 들을 보면 굉장히 미래가 암울해보인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라우라와 나는 비슷한 종류의 외로움이 있었는데, 바로 여기서 믿을 만한 친구를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차가운 편이고, 자신의 가족과 어렸을 적 친구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지라 우리같은 이방인이 그 자리를 비집고 나만의 인맥이나 친구를 만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든 편이다. 이 작업도 최소 몇 년은 걸릴 텐데 라우라나 나나 사실 그 전에 떠나버릴 사람들이라.

모든 외국 살이는 외향적이여야 더 재밌게 살 수 있는데 - 사실 라우라나 나나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토로를 하는 걸 보면 어쩌면 우리는 외향적이라서 이런 슬픔을 남들보다 더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찾은 대안은 여기서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었는데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지 친구는 아니다.


모든 대도시 살이의 디폴트 값인지, 여기만 특별히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포르테뇨(Porteño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출신 사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사람)들이 차갑다는 이야기는 그나마 보나렌세(Bonaerense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출신 사람, 우리나라로 치면 수도권이나 경기도 사람으로 치환가능 할 것 같다)들은 따뜻하고 정이 있는 편이긴 한 것 같은데, 이들도 포르테뇨들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보면 포르테뇨들의 태도 문제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외국 살이에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나마 거의 매일 강제적으로 보는 친구들이라도 존재하는 학생으로 사는 것이 아닌 - 직장을 가지고 살게 되면 더더욱.


라우라와 이야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 있는 다른 투숙객과 숙소 주인인 후안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이라고 와인도 같이 마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이 대화를 통해 아르헨티나에서 피부색깔로 인한 차별이 여전히 견고하고 뿌리깊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얼마나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겠나 싶지만, 단편적으로나마 아픔을 이해하고 싶다. 그나저나 오늘 만난 커플도 내일 우마우아카로 간다고 해서 나와 라우라가 빌린 오르노칼 투어용 택시를 타겠냐고 물어보았더니 오케이 한다. 여행은 사람이 많을 수록 즐겁지.





2022.07.18.월

오늘은 아침부터 라우라와 나, 그리고 커플과 택시로 우마우아카로 갔다가 오르노칼로 가는 날이다. 비용 때문에 여러 잡음이 있긴 했지만, 결국 어차피 우리나 내기로 했던 비용이니 그건 우리가 다 내는 걸로 하고 택시기사가 엑스트라로 요구한 비용만 더 내라고 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살인적으로, 현재 연 50퍼센트의 상승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오른 곳은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나 아이티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나나 라우라나 급여 기준이 페소가 아니라 달러화와 유로화가 기준인 외국인이라 크게 상관은 없다지만 일반 국민이 느낄 경제적 부담과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에 이 나라에 대선이 있는데 거의 매일 시위가 열리는 걸 보아하니 정권교체는 분명히 될 것 같다. 이렇듯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국민의 삶 곳곳에 스며 있는 우리의 일상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택시기사인 다비드 왈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엠파나다도 같이 먹어보고, 조상이 모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피렌체가 유명하다)에서 왔다는 커플 중 남자인 에제키엘과 이탈리아 이야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사실 이탈리아 밖에서 이탈리아계가 가장 많은 나라로 유명한데 이것 때문에 라우라는 살짝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해서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탈리아는 무려 8세대 위까지 조상이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게 증명만 되면 쉽게 여권을 얻을 수 있는 나라(나의 영국 유학 시절 베프인 브라질 친구가 말해준 사실이다. 얘도 자신의 양가 조부모가 모두 이탈리아에서 온 이탈리아계 브라질인이라 복수국적을 쉽게 얻었다)라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이탈리아 여권을 복수국적으로 함께 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이탈리아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이탈리아에 와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태어난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업신 여기기까지 하는 태도에 라우라는 경악했다고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모두가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이나 애국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기보다는 - 이탈리아가 현재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잘 사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고 싶어서라는 게 라우라의 견해인데,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라는 것을 깊게 생각해보게 되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단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튼 커플과 우마우아카에서 헤어지고, 오르노칼로 올라가려고 하는 길목에서 벨기에 출신 히치하이커 막스를 만나 함께 태우게 되었다. 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10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시간이 비어 남미여행을 하게 되었단다. 알고 보니 대학 시절 함께 공부한 절친한 친구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이라서 아르헨티나로 오게 되었다고. 오르노칼을 보고 나면 볼리비아 국경 키아카 Quiaca로 넘어가 우유니 투어를 할 계획이란다. 여튼 두 사람이 빠지고 다시 한 사람이 들어온 오늘의 오르노칼 택시 투어 시작.


멀미날 정도로 어지러운 꼬불꼬불 오르노칼 가는 길. 여기도 해발고도가 4000미터가 넘어서, 고산병이 심한 사람에게는 쥐약의 고생길이다.


중간에 라우라가 운전을 해서 올라갔다. 나는 자동 운전만 해본지라 수동은 엄두가 안나서(대부분의 렌트가 수동이다) 렌트는 엄두도 못내고 그냥 얌전히 투어만 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수동 기어로 꽤 운전을 했다는 라우라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이다. 이거, 라우라한테 돈을 내야하는 거 아닌가?


여튼 이 날은 날씨도 좋아서 파란 하늘 아래의 총천연색 오르노칼 산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고산 지대라 날씨 예측이 어렵고, 대부분의 날이 너무 추워서 한 2분 정도 사진 찍고 나면 사람들이 바로 비명을 지르며 투어차량으로 들어올 정도로 날씨가 극악이라는데, 정말 운이 좋았는지 바람은 불어도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로 마음껏 감상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여행에서 날씨 운은 좋은 편인데, 오늘 오기 잘 한 것 같다.


아르헨 북서부 여행의 큰 목적 중 하나였던 오르노칼. 유네스코 지정으로 관리되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미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오늘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아르헨티나 깃발.



오르노칼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택시기사가 한 명씩 노래를 시켜서(...) 나는 아이유 노래를 불렀고, 막스는 랩을 했으며, 라우라는 이탈리아 칸초네를 불렀다. 요즘 유행하는 아르헨티나 노래도 틀고 쿰비아 Cumbia(중남미 전역에 걸친 음악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트로트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뭔가 절대 질리지 않는 특유의 음색과 가사가 일품이다) 도 틀면서 어깨 춤추고... 그렇게 오르노칼 구경을 재밌게 하고 막스와 헤어지고 나는 틸카라로 왔다. 라우라는 택시기사와 후후이까지 이동하고 내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복귀한다. (수요일 밤에는 라우라의 부모님이 딸을 보러 이탈리아에서 일주일 정도 여행을 오시기로 하셨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북적이다가 다시 홀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 적막함이란. 하지만 이를 끌어안고 다시 새롭게 나의 여행을 시작해야겠지. 틸카라에서 돌아다니다가 예쁜 기념품 상점도 발견하고, 거기서 또 다른 기념품 집도 추천받고, 카페에서 피자 먹으면서 글도 쓰고, 빨래도 맡기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틸카라는 작지만 알찬 느낌의 관광지였고, 부에노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틸카라에서만 있는 것보다는 또 다른 모험을 해보고 싶어서 내일 아침 일찍, 하루에 한 대 있는 살타 주의 이루샤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직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찍 와야 할 거라고 했다. 음?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던 틸카라의 저녁하늘.






2022.07.19.화

틸카라에서 이루샤 Iruya로 당일치기를 가는 날. 나는 남미식 계산으로 일찍 오라는 직원의 말을 한 10분쯤 일찍 오라는 것으로 듣고 대충 맞춰서 갔는데, 이건 나의 오산이었다. 이루샤로 가는 버스는 깔끔한 2층버스나 투어차량 같은 버스가 아닌 정말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의 시내버스 같은 차량이었고, 완행버스 그 자체라 자리가 없으면 이루샤까지 서서 가야했다. 나보다 뒤에 온 사람들은 어찌어찌 낑겨탔다. 나는 홀로 온 여행객이라 딱 한 자리 비어있는데 앉아가기를 겨우 성공했다. 중간중간에 말도 안되게 작은 마을과 포인트들을 거쳐서(이때 화장실을 못가면 죽음 뿐) 이루샤에 도착.


이루샤 가는 길 도로 이름은 El fin de mundo... 즉 세상 끝이란 소리인데 직접 가보면 무슨 소린지 알게 된다. 천길 낭떠러지라 고비고비마다 수없이 성호를 그었다.



도로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따위는 없고, 2차선이 될만한 너비도 아닌지라 차가 마주오면 후진(!)도 한다. 안 그래도 고소공포증 증세도 있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는데, 눈을 질끈 감으며 창밖을 보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옆자리 앉은 아저씨가 얼마나 웃어댔는지 모른다. 네 시간 반 만에 겨우 도착한 이루샤. 운전사의 운전에 경의를 표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루샤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살타 주에 위치한 곳이지만 이렇게 후후이에서 가는 것이 더욱 가까운 곳으로, 전화 연결조차 잡히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도 이 주변에서는 큰 마을로, 이루샤에서 안데스 산자락의 더 작은 마을들로 트레킹처럼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일행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시도해 봤음직했겠지만 홀로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로서는 권장사항이 아닌 것 같아(나는 무조건 나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당일치기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 오는 길도 너무 험하고 힘들어서 여기를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과감히 하루를 투자한 것이라 별로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리자마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 뿐. 이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매력에 짧은 시간이나마 푹 빠질 수 있었다.



북서부 여행 엽서에 등장하는 이루샤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찍었다.
안데스 산자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 이런 커뮤니티가 더 있다니 궁금하기도 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십자가 전망대 올라가는 길. 고산 지방에서 어딘가를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숨을 켁켁대며 올라가는 일이다.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마을에서 며칠 묵으면서 속세의 번잡함을 잊는 것도 힐링의 방법이 될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마을 공동묘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묻히면 어떨까. 이런 곳에서 살면 죄라고는 겨우 옆집 계란 하나 훔친 정도로 작게 짓지 않을까.



공동 묘지에서 코르도바에서 온 커플을 만나 말을 섞게 되어 간단히 엠파나다에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섞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곳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5년 전에도 이 곳을 찾았다고 했는데, 지금도 작지만 그 때는 더 작은 마을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며칠 간 여기를 베이스 캠프로 잡고 작은 커뮤니티 마을들을 돌아다녔다는데 어떤 마을은 걸어서 가는데만 왕복 8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 커뮤니티에서는 딱히 돈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그들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모두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여튼 그들에게 다른 아르헨티나 여행 정보도 좀 듣고 교회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아까 이루샤에 도착하자마자 틸카라로 오는 티켓을 사 두었고, 내 버스는 3시 반이었지만 아침의 끔찍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 시도 안 되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젠장! 이루샤는 이렇게 당일치기 하는 경우도 많아서 성수기에는 빠르게 볼 것을 보고 줄을 서야 한다. 겨우 내 자리를 하나 잡아서 또 다시 천길 낭떠러지를 건너 틸카라로 도착. 눈은 즐겁지만 심장에는 안 좋은 여행이다.  



틸카라를 돌아다니면서 괜찮아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나를 신기하고도 반가운 눈으로 맞아 주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잘 없는 동양인이지만 북부에만 와도 정말 동양인은 드물어서 더 그렇다. (나는 추후 후술할 살타의 한인슈퍼 사장님 이외의 동양인을 여행다니는 2주 간 본 적이 없었다.) 좋든 싫든, 어딜가도 시선을 잡아끌게 되어있는 나의 외모.  


가볍게 먹고 싶어서 채식 메뉴 위주로 시켰는데 다 너무 맛있었다. 사장님은 부에노스와 틸카라를 오가며 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내일 또 와야지.


음식은 합격점. 북부식의 토속적임과 퓨전을 잘 섞어낸 맛있는 집이었다. 레스토랑 이름은 Senador Tilcara. 친절한 사장님과 레스토랑 사람들을 뒤로 하고 틸카라의 밤거리를 걸었다. 중심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어딜 가도 별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아주 오랜만에, 별들을 실컷 보고 있다.



숙소 옥상에서 보이던 반짝이는 별들. 전갈자리, 궁수자리 등 남반구 겨울 별자리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남십자성도.





2022.07.20.수

오늘은 틸카라에서 시간을 보내며 유적지도 보고, 마을 구경도 좀 더 하고, 밀린 글도 쓰고, 봐 두었던 Aguayo 아구아쇼와 식탁보로 쓸 Manta 만타(담요)를 살 생각이었다.

아구아쇼는 볼리비아나 페루,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등 안데스 지역의 전통 공동체에서 만드는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모양의 담요 같은 것으로, 마을 공동체의 무늬나 안데스 지역의 동식물을 심볼로 만들어서 무늬로 꾸며 만든다. 한 쪽에는 A 커뮤니티, 다른 한 쪽은 또 다른 B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서 반쪽씩을 이어서 붙인다고 하는데 다 같은 모양이 없다고 할 정도로 특색이 있는 상품이라, 반드시 이번 여행에서 하나 사가야지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던 상황이었다.


내가 며칠 전 추천받은 곳은 틸카라 내 유적지인 Pucará de Tilcara 푸카라 데 틸카라에서 맞은 편에 있다고 하여 틸카라 유적지로 갔다.


틸카라 유적지 가는 길.



유적지 매표소 바로 맞은 편에 있어서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곳의 주인은 레게머리가 멋진 남성으로,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페루의 안데스 커뮤니티 내 400명의 직물사들과 염색사 등과 협업하며 만드는 작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직물들은 모두 손으로 만드는 것이고, 만드는 데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반드시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하여 만들 것, 그들에게 공정하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는 원칙을 지켜 직물을 판매하는 그들의 노력이 돋보이고, 여기 있는 직물들이 다들 너무 예뻐서 마음 같으면 전부 사가고 싶었지만 현실 상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직물을 골라서 두 개 사왔다.



이 방에 있는 직물들은 정말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야마 털 뿐만 아니라 알파카 털이나 귀한 비쿠냐 털도 있다고 했다. 가격이 3배 이상


형형색색의 아구아쇼들. 하나도 같은 무늬가 없어서 신기했다.
안데스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안데스 직물들 Andean textiles. 구경하면서 정말 눈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안데스 커뮤니티나 인디오 커뮤니티에는 대대손손 이렇게 직물들을 만들며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많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솜씨가 좋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혹시나 이 지역에 기념품을 찾고 있다면 이런 거 하나 사서 집에 두는 걸 추천한다. 원주민 여자들은 이를 아이를 싸는 강보로 쓰기도 하고, 식탁보나 외출용 복장으로 두르기도 한다. 뛰어난 유틸리티를 자랑하는 안데스식 멀티 천.



마음에 드는 직물을 사 두고 맡긴 다음 천천히 유적지로 올라갔다. 고산 지대 식물들을 함께 심어두고 식물원처럼 함께 꾸민 곳이었다.다른 나라에서는 좀 귀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카르돈 선인장이 아르헨티나 북부 지방에서는 정말 어딜가도 보일 정도로 흔하게 보인다.





유적지 끝까지 올라갔는데 나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고 그게 자기 딴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악의없이 웃는 머저리가 있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중남미는 동양사람이 별로 없는 지역이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인종차별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또한 자각이 없는 편이라(옛날에 데이트 하던 놈이 내 눈이 아름답다고 눈을 찢는 포즈를 취했던 경우가 있었다; 내가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즉각 말해서 당장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다른 데서는 당장 항의를 들을 만한 일을 한 번씩 겪게 된다. 하긴 자국민들에게도 인종차별을 하는데 외국인이라고 다를 바가 뭐가 있겠나. 여튼 이런 일을 겪다보면 무뎌지거나, 된통 싸우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거나 - 이렇게 반응을 하게 되는데 저 멍청이는 계속 볼 사람도 아니니 나는 화를 삭히며 한번 째려보고 지나가는 수 밖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지나가니 이 예쁜 풍경을 봐도 그냥 무덤덤해지게 된다.
숙소로 돌아와 시간을 내어 여행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영수증이나 티켓을 붙여놓으면 그는 그대로 또 기념품이 된다.



한참을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니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다. 내일이면 떠날 틸카라이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뿌릴 기념품을 좀더 사고 싶어 돌아다니기로 했다. 푸르마마르카와 틸카라가 북부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해서 기념품이나 물건을 사기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나는 식탁보로 아무렇게나 쓸 만타를 하나 더 샀다.


그리고 며칠 전 틸카라에 온 첫날 들렸던 기념품 가게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 여자 주인은 원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20대까지 거기에서 보내고 직장생활까지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북서부가 마음이 편해서 몇 년을 짧게 혹은 길게 여행으로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아예 몇 년 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리를 잡았다고.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수도에 있지만 자기는 여기가 사람들도 더 친절하고, 불안에 떨면서 살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더 편하고 좋다고, 앞으로도 여기에 쭉 살 생각이라고 했다. 이렇게 부에노스를 떠나서 다른 지방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데 우리나라 제주살이와 비슷한 걸까. 여튼 그녀의 삶이 앞으로도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단지 푸르마마르카에 숙소를 잡을 수 없어서 틸카라로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틸카라는 생각 외로 너무나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저렴한 물가, 교통도 나름 괜찮고. 다음에 오게 된다면 다시 여기를 들려서 직물도 실컷 구경하고, 광장에서 사람 구경도 하고, 밤에는 별을 보고, 그렇게 머물고 싶다.



북서부는 가장 먼저 콩키스타도르들이 점령해서 종교를 앞세운 식민지화에 앞장 선 곳이기 때문에 그의 영향으로 종교색이 짙은 지역이다. 평일 미사인데도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제 갔던 레스토랑. 내가 빨래 찾느라 너무 늦게 와서인지 많이 기다려서 먹었고, 어제보다 친절도나 여유가 떨어졌다. 하지만 음식은 맛있었음.



이제 내일이면 후후이 지방을 떠나 살타로 이동한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다채로운 색깔을 뿜어내는, 후후이의 슬로건 그대로 생기가 넘치는 곳. 후후이에서의 여행은 그래서 하루하루가 감동이고 감사했는데 살타에서도 아마 그렇겠지? 살타에 대한 칭찬이나 살타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페루나 칠레에 있을 때도 많이 들었어서 기대가 된다.



궁수자리와 전갈자리를 찍으려고 노력했으나 절반의 성공. 대신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별자리들을 실컷 즐겼다.



조용히 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틸카라의 별들을 보며 여기서의 일정을 마무리.

내일은 반나절 이상 투자해 살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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