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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Dec 05. 2022

Diario BA #5 돌아온 여름

아르헨 국기를 닮은 예쁜 색깔의 하늘 아래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하루하루


0.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덧 한여름 가운데에 서있다.

매일이 경이로운 12월의 여름에 접어들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간단히 기록.




1.

10월 28일 금요일 저녁에 콜드플레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콘서트를 다녀왔다.

콜드플레이가 내한공연 왔을 때는 내가 한국에 없었고, 영국에서 공연할 때는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기에 티켓을 살 돈이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투어도 티켓을 1년 전에 팔았다는데 이미 한시간도 안되서 다 나갔단다. 결국 4월에 비아고고로 세컨 티켓을 샀는데, 공연 1주일 전에 방탄소년단 진이 새 곡을 발표할 겸 크리스 마틴의 소개를 받아서 온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아! 이런 행운이! 한국에 있는 내 아미 친구들이 바로 카톡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를 정도로 정말 부러워 했었다. 나는 콜드플레이 노래를 좋아해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세컨 티켓에 스탠딩 석이라도 산건데 방탄소년단이라는 행운도 함께 따라왔다.  


공연장이 북동쪽 벨그라노 지역에 있어 남서쪽인 학교랑 정반대에 위치한데다 교통체증, 그리고 어딜 가나 긴 줄(아르헨티노들은 줄 서기가 취미인가?)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결국 잘 도착했다. 참고로 표에 적힌 것은 7시에 공연 시작이라고 되어있었으나 결국 9시에 시작했다. 저번 두아 리파 콘서트 때도 그랬고 마네스킨 콘서트 때도 그랬고 2시간 내내 의미 없게 서있었다는 생각에 열받았다. 다시는 적힌 시간에 맞춰가지 않으리...

공연장이었던 리버 플레이트 스타디움. 축구 경기가 없을 때는 대규모 공연장으로 변하는데 정말 멋졌다.
긴 기다림을 상쇄할 정도로 공연은 멋지고 재미있었다. 옆에 서 계신 가족들과 신나게 뛰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새 곡을 발표하던 방탄소년단의 진. 군 입대를 앞두고 다음 장의 인생을 살게 될 그로서,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나는 컨셉의 노래가 좋았다.
밴드의 프런트맨인 크리스 마틴을 비롯 콜드플레이의 다양한 메시지들이 잘 느껴지던 공연.


뒤늦게 소식을 들은 남미의 방탄팬들이 표를 구하느라 세컨 티켓 가격이 엄청 올랐고, 공연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아미들은 앞에서 계속 진의 이름을 부르며 연호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분노한 탓인건지 아니면 머리에 든 게 없어 무지한 탓인건지 모르겠지만, 몇몇 아르헨티노들은 "겨우 치노(말 그대로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뉘앙스와 맥락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동양인을 얕잡아서 부르는 뜻인 경우가 더 많다) 한 명에 공연이 이렇게 될 일이냐"고 비아냥댔다.  


나 역시 일상을 살다가 한 번씩 당하는 일이라지만 BTS 같이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해도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치노"라고 무시하다니. 그들의 태도가 진심으로 역겨웠다. 그 말을 직접 들은 BTS 팬 소녀들도 공연이 끝나고 펑펑 울면서 우리 오빠를 그렇게 불렀다고 속상해했었다. 나쁜 일 하나를 상쇄하기 위해서 좋은 일이 열 개는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보고도 막판에 기분이 잡칠 일이 생기다니.






2.

11월 첫주 토요일은 Marcha de Orgullo, 즉 게이 프라이드에 갔다.

보통 북반구 나라에서는 6월 말이나 7월 초쯤 하는데 아르헨티나는 남반구라 날씨가 좋아지는 11월 초에 하는 듯 하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게이 프라이드였는데, 낮부터 밤까지 쭉 프라이드가 이어졌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게이 프렌들리하기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시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동성애자인게 밝혀지면 말그대로 거리에서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차 모여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아르헨티나에서 2010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등 사회적으로 변화들이 생겨나며 다양함을 포용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약자 포지션에 놓여있기에 정치적인 메시지와 결부되기도 하고, 프라이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가수도 참여하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지지를 보냈다. 이웃 나라 브라질에서도 참여한 듯. 상파울루 게이 프라이드도 세계적으로 크고 유명하다.


"동성애혐오자보다 차가운 맥주 팝니다", "동성애는 병이 아니니까 치료제는 필요없어요" 같은 위트있는 메시지들.
  Congreso 국회의사당이 무지개색으로 뒤덮히다.
처음에는 프라이드가 궁금했던 나 혼자 갔는데, 내가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나와 합류했던 친구들의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 하나로는 정의내릴 수 없는 정체성과 성적 지향.

나는 어디까지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 밤이었다.

그리고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나를 믿고 숨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준 그들에게 고맙다.






3.

더욱 더워진 날씨 속에서 열심히 일상을 살고 있다.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꽃들, 그리고 탱고 연습장에 사는 고양이. 이 고양이의 이름은 니노인데, 내가 오는 수요일에만 위에서 내려와 나에게 앵기는 귀여운 녀석이다.


그리고 그동안 준비했던 스페인어 시험 델레 B1을 치러 갔는데, 정말 엉망진창인 시험 관리를 보고 기가 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감독관이 지각해서 시험을 늦게 쳤고, 답안지만 주는 바람에 문제지를 달라고 항의해야 했으며, 말하기 시험에서도 괴이한 행동을 해서 다른 수험자가 당황했다. 나 역시 시험 감독관으로 여러 번 일해본 사람이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치는 게 죄였을까.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던... 시험관리도 엉망인데 내용도 생각보다 어려워서 멘붕이었다. 제발 통과만 시켜다오.


같이 시험을 보러갔던 선생님과 근처 스벅에서 멘탈 가다듬기 타임을 가지고.
따뜻한 봄과 여름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하카란다 Jacaranda 자카란다, 여기 말로는 하카란다 꽃이 잔뜩 피었는데 날씨는 구렸다.



여름이 되니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태껏 살면서 본 적이 없는 보라색 하카란다 꽃들이 잔뜩 피어 뽐내고 있었고, 집 근처 과일 파는 곳에서는 과일의 종류가 다 바뀌었다.


여름이 다가왔음이 느껴지는 과일들. 특히 Cereza라 불리는 체리는 최고다. 지금부터 딱 12월 말까지 많이 나오는데, 이때가 제철이니 잘 먹어두어야 한다.



퇴근길 차카부코 공원에서 본 하카란다 꽃나무들.


퇴근하고 나서 집 근처에 있는 센테나리오 공원 산책. 평소에는 사람이 많아서 좋아하지 않는데 평일 오후 저녁은 딱 적당하니 Tranquila 했다.
아름다운 센테나리오 공원. 볼 거 많고 예쁜 건 인정이다.


집 근처 생맥주집. 주인도 친절고 좋지만 여는 시간이 길지 않는데다 늦게 가면 인기있는 맥주는 이미 없다. 그래도 한번씩 들리는 좋은 곳.
이곳저곳 고장이 나기 시작해 병원 투어를 돌고 있는데, 너무 많은 사람과 복잡한 병원 시스템으로 최대한 안 아픈게 최고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한국에 있는 내 소속교의 6학년 학생들과 줌 수업으로 아르헨티나 살이와 문화에 대해 소개했다. 시차 문제로 한밤중에 수업했는데 아이들은 재미있게 잘 들어주었다.



부지런히 행사 자리, 회식이나 식사 자리도 가고.



좋은 카페에 가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기도 했다.






4.

지금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 축구에 미친 나라답게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아르헨 사람들의 특징인지 남미 사람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단순한 면이 있어서 말그대로 축구에 울고 웃는 편인데 - 이기면 재밌지만 지면 사람들이 침울한 기분에 시비도 걸고 해서 최대한 아르헨 경기 날, 경기 시간 때는 밖에 함부로 안 다니는 게 좋다. (내가 페루 살 때도 그랬었다.)


왜 남미는 축구에 열광하는가? 라는 질문을 브라질 친구에게도 던진 적이 있었는데, 친구의 의견으로는 일단 현재 중남미의 뿌리는 유럽 이민자들에 기인하는데 축구라는 문화 자체를 유럽인들이 들여왔으며, 이를 이민자의 국가인 남미 국가들에서 내셔널리즘으로 이용한게 크다고 했다. 나도 동감한다.

남미에서 살아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혹은 그 전 시대에서 이민해온 사람들을 조상으로 두고 있어 이들을 융합하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축구는 그들을 묶는 구심점이 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돕는다. 더군다나 축구는 시작하는 데 있어 특별한 장비가 필요가 없으며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곳에서도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리오넬 메시 선수의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정말 간절하게 가장 높은 곳에서 메시가 웃을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 물론, 나도 나의 안전한 파견 생활을 위해서 셀렉시온(아르헨티나 국가대표들을 일컫는 말)들이 잘하길 간절히 바란다.




학교 벽 한쪽에 장식되어 있는 월드컵 참가 국가와 조별리그 스코어.
심지어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 노선 조차도 VAMOS ARGENTINA라는 문구를 넣어서 다니고 있다.
길거리마다 문디알(월드컵)을 외치며 진심으로 아르헨 국대들을 응원중이다.



나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챙겨볼 수 있는 경기들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티비로 꾸준히 챙겨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경기는 친구들과 모여 친구 집에서 보기로 보았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행히, 아르헨티나가 메시의 원더골을 필두로 2:0으로 이겼다.


모두가 메시 티셔츠나 국대 카미세타를 사고 ㅋㅋㅋ 응원중. 나도 다음에는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아디다스에서 이미 품절된 것을 보았다. 언제 사지.
경기가 끝나고 친구네 집 옥상에서 본 수영장과 노을. 보통 요즘 지은 괜찮은 아파트 옥상에는 수영장이 있다.




축구에 미친 나라에 사는 이점 덕에 출퇴근 시간과 등하교 시간을 다 조정을 해서

대한민국 경기는 학교에서 프로젝터 설치해서 학생들과 같이 응원하면서 보기도 하고, 아니면 학생들은 늦게 등교하거나 일찍 하교를 시키고 - 우리도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보던지 아니면 교직원들끼리 학교에서 응원하며 보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한국학교이다보니 두 나라의 경기가 모두 중요하고, 근무하는 현지 선생님들께서도 한국 경기를 보며 응원을 하는 풍경이 매번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소고와 사물놀이 악기로 신나게 응원했던 우루과이전과 가나전.
감동의 도가니였던 한국과 포르투갈 전 ㅠㅠㅠ 그리고 집에서 티비로 다시 본 한국 뉴스.
집에서 챙겨본 아르헨티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동갑내기 친구 메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메시가 그려진 Lays 과자와 킬메스 맥주로 응원했다.
어제 봤던 아르헨티나 대 호주 16강전. 끝까지 투지 잃지 말고 잘 올라가라는 마음으로 문어맛 자갈치 과자와 바나나킥, 그리고 킬메스 맥주로 응원 ㅋㅋㅋㅋ





이제 정말 올해 학년도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머나먼 아르헨티나까지 와서 그래도 인정받고 하루하루 잘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고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내년에는 더 많은 일들을 하게 될텐데, 내년에도 잘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며 건강 챙겨가며 하자.


지금은 재충전용으로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거의 비행기표만 끊어놓은 상태인데다 지금 바빠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하다보니 너무 혼란하다 ㅋㅋㅋㅋ 다음 주말이 이나라 휴일인데 어디 안가고 부에노스에 푹 쉬면서 계획도 다 끝내야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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