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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May 02. 2023

Diario BA #6 모래성 위에서의 삶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이곳에서의 삶이지만, 여정은 계속된다

#.

글을 아주 한참만에서야 업로드를 하게 되었다.


작년 휴대폰을 도둑맞은 이후로부터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들고다니던 아르헨티나 현지 휴대폰 번호로 연결되는 카카오 계정을 따로 만들어야했는데 - 정작 브런치에 연결된 건 한국 카카오 계정이다보니 평소에 찍고 있는 사진이나 기록을 자연스럽게 할 수가 없었다(내가 쓰는 폰 번호와 브런치 계정이 서로 연결이 안 되어있다보니 아예 로그인을 할 수가 없다. 글쓰기를 위해 계속해서 유심칩을 번갈아 끼울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쓰는 이 노트북이 브런치 글쓰기 흰 바탕화면에서는 잔떨림이나 깜빡임이 점점 심해져서 글을 길게 쓰다보면 점점 짜증이 나는 일이 허다하다. 설상가상으로 키보드 키탭이 몇개가 고장나 있다. 타이핑을 치면 누르면 잘 안눌리거나 키캡이 깨져 있어서 조심스럽게, 혹은 세게 눌러야 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두긴 했는데, 책상과 식탁을 겸하고 있어 놓고 쓰기가 귀찮다.)


여기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모든 문제를 고칠 방법이 전무하니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디는 중인데, 그러다보니 점점 노트북 사용 자체를 어두운 화면모드로만 쓰거나 사용 시간 자체를 조금씩 줄이게 되었다.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노트북을 들고다니며 내 생각이나 공부자료를 자유롭게 적어대던 모습이 없어지니 글 기록의 절대량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아 조금 슬프다(물론, 여기 치안이 불안해서 전자기기를 함부로 들고다니지 않는 까닭도 있다). 지금 들고 있는 아이패드 태블릿과 갤럭시 폰 연동이 자유롭지 않기에 그런 면도 있겠다 싶어서 진지하게 탭을 하나 더 구입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아예 중단한 것은 아니고, 올해부터 인스타그램에 아래의 기록용 계정을 만들어 손글씨 다이어리 컨셉으로 조금씩 생활이나 여행 기록을 알리고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다녀온 중미(파나마, 코스타리카, 멕시코) 여행 기록도 여기에 있다. 바빠서 요즘 생활은 기록도 못했지만. 


 https://www.instagram.com/midiario.ba/ 


마지막으로, 올해 교무부장을 처음 맡게 되어(파견으로 오는 해외한국학교는 보통 교감이 없기에 교무가 교감 역할까지 그대로 맡는다) 말그대로 정신없는 삶을 두 달 넘게 지속했다. 우왕좌왕하는 도중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검열병까지 도지는 바람에 밤마다 밀려오는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를 타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심호흡을 깊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지리멸렬한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나의 지난 몇 달간 삶은 그러했다.

해외에 나와서 사는 파견생활이니 남들이 보기에 특별해야 할 것 같고, 뭔가 대단한 것만 올려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어서 더 글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은 환경이 해외로 바뀌어 더 빡세어졌을 뿐, 결국 직장 다니고 밥 해먹고 청소하고 집안일 하는 삶은 똑같이 흘러가는데 말이다. 해외 살이 총 5년차, 모든 삶의 단면을 하이라이트처럼 살 수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있다.


이제는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보통의 삶, 글 한 꼭지라도 조금씩 온라인에 기록해두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필요하면 간간히 덧붙이거나 수정도 하고 말이다. (물론, 손으로 쓰는 내 개인 일기장은 하루하루 거의 밀리지 않고 잘 기록 중이다.)


그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나무들을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가을이 되었다.




그렇게 쓰는 글 한 꼭지.





#.

아르헨티나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나라이고 곳곳이 너무나 보물같은 멋진 나라이지만, 예쁘고 화려한 외관과는 다르게 속은 곪아가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말 그대로 막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아르헨티나 환율은 1달러에 197페소였는데(암환율 기준. 이 나라는 공식환율을 사용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나라다. 이 이야기도 다음에 자세하게 적어야겠다), 얼마 전에는 500페소를 찍었다가 보다못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손을 쓰겠다는 기사 이후에 조금 내려가서 460대로 마감하였다. 


물가 상승률이 1년 사이에 104퍼센트. 희망은 0퍼센트.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보자는 슬로건을 적어둔 정치인의 광고이다.


여기에 있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달러 기반의 삶을 살고 있어서 타격이 별로 크지 않고 오히려 이득을 보고 있는 중이라, 지금 아르헨티나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를 이용해 관광하러 오는 외국인들과 디지털 노마드들의 입국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인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잘못된 경제정책을 거듭하는 바람에 페소의 화폐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자신의 월급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집지 못해 월급이 뭉텅이로 깎이는 상황인데. 


모두가 공평하게 자신이 땀흘려 이룬 대가를 얻는다면 모를까, 현재의 아르헨티나는 소수와 외국인만이 이득을 보고 있어서 몇 년째 인재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여기에다가 실제로 생계형 범죄의 일환인 길거리의 강절도사건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나만 해도 일단 내가 당했고, 출근길 버스에서 휴대폰 낚아채가는 걸 봤고, 휴일에 날치기 당하는 걸 봤다. 그런데 당하는 사람이 나같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여튼 슬픈 현실이다.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퍼포먼스를 보고 끝까지 응원한 사람으로서 - 대부분이 정말 처절하게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 물론 자국의 위대한 슈퍼스타 메시에게 월드컵 우승 커리어를 안겨주기 위한 갈망이 컸겠지만 - 처참한 경제사정으로 고통받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마치 우리나라가 90년대 말 IMF로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박세리와 박찬호 등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으로 위안을 받았던 것 처럼 말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현재 어렵고, 이를 이겨낼 기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두가 그저 관망하는 것처럼,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게 더욱 신기하면서도 불편하다. 나는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고 아르헨티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피어오르지만, 아무도 이를 고깝게 여기지 않는다. 마치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이 - 다른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 이를 위태롭게 지켜보는 나로서는 마치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모래성 위에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속으로 걱정하는 나의 마음은 아는 듯 모르는 듯, 모두 자신의 삶을 그저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대성당.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제일 에쁜 성당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전구 기도를 하면 그분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에도 기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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