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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May 22. 2023

Diario BA #7 거울의 역사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슬픈 현대사



#1.

다사다난한 한국의 현대사를 몇 가지 정치적 키워드로 요약해보자면 "식민지배와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한국의 대척점인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의 현대사 역시 한국과 거울처럼 비슷하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이자 악명 높은 독재자로, 인기가 높았던 대통령인 후안 페론(이도 군인 출신이다) 사후에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최악의 인물이다.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위해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열어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개최 결정 부터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비판했으며, 경기 중 승부조작 의혹 역시 존재하는 월드컵이다. (설상가상으로 비델라 정권이 국가 대표 선수들을 납치하다시피 데려와 훈련을 시켰으며, 우승하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국민들이 사랑하는 대중적인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지우고 눈을 돌리려고 한 전략인데, 우리나라 현대 역사 속 누군가의 이름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그 월드컵의 함성 아래, 비델라 정권은 리베르 플레이트 스타디움 근처에 민주화 항쟁 열사들을 가둬놓고 고문하고 있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하던 비델라는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라는 광기 어린 선택으로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섬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쪽 바다에 있는 섬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영국이 오래 전부터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을 일으켰고, 많은 희생을 낸채 처참하게 패배를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비나스 전투에서 아르헨티나가 이겼다고 거짓보도를 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하다가, 후에 진실을 알게된 사람들로 인하여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비델라 정권이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역시, 거짓은 오래 가지 못하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비델라는 1976년부터 1983년 동안 재임 기간에 잘못된 정치, 사회, 경제적 정책과 혹독한 국민 탄압, 언론 장악 등으로 나라를 완전 파탄낸 작자인데. 지금의 아르헨티나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정치,경제적 문제점은 이 군부독재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되돌리지 못하고 있는 게 원인이라고 평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비델라의 만행은, 오로지 정권 유지와 그에 따른 개인 영달을 목적으로 하는 위정자의 잘못된 정책이 한 나라를 어떻게 오랜동안 실패의 길로 이끄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비델라의 수많은 악행 중 제일 악랄했던 것은 반대파 민주 진영의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없애버린 방식인데 이 정치적 학살을 스페인어로 Guerra Sucia, 즉 "더러운 전쟁"이라고 칭한다. 비델라 정권 기간 동안 3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실종되었는데, 그가 잘 사용했던 방식은 민주화 인사들을 납치해 마약에 취하게 한 뒤 자루에 넣어 라플라타 강 너머 대서양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었다. (그들을 운반했던 비행조종사들의 실제 증언이 있다. 이들도 역시 재판대에 올라가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사망자보다 실종자로 표시된 숫자가 많은 것이고, 지금껏 그들이 실제 발견된 확률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민주화 투쟁을 했던 인사들의 갓난아기들은 '불손한 씨앗을 없애겠다'는 취지하에 비델라 정권에 우호적인 군인, 그의 수하들에게 입양을 보냈다. (자신의 진짜 가족이나 이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가족 찾기 운동은 계속 되고 있다.) 이 시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해외로 망명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몇년 뒤 아르헨티나에 민주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야 자신의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의 "광주 오월어머니회"가 있는 것처럼, 아르헨티나에는 "5월 광장 할머니회(Abuelas de Plaza de Mayo)"가 있다. 이들은 실종된 민주화 인사들의 어머니들로 서슬퍼런 비델라 정권 시기,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아이들의 이름과 태어난 날짜를 적은 기저귀천을 머리에 두르고 애타는 마음으로 5월 광장에 모인 것이 계기가 되어 결성되었다. 광주 오월어머니회와 5월 광장 할머니회는 서로 결이 같은 모임이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이자 가족인 그들은 모두 역사적 진실을 전하고, 깊은 아픔을 나누며 과거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슬픈 역사를 품고 앞으로 굳건히 나아가고자 하는 용감한 분들이다.







#2.

내가 근무하고 있는 아르헨티나한국학교 5-7학년 아이들과 함께 기억의 전당(Museo Sitio de Memoria)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옛날 ESMA라고도 불린 건물을 2000년대에 개조해서 박물관으로 만든 것인데 원래는 군부독재 시절 군사교육을 전담하는 학교이자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젊은 인사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한 지하 감옥이었다.


우리의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기억의 전당 관장님, 큐레이터님, 할머니회 관계자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한국학 교수님, 그리고 다른 집에 강제입양 되었다가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아 조부모님 곁으로 돌아간(부모님은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했다) 손자분 등이 와주셨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모두 스페인어로 진행되는데다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조금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우리 학생들은 배우려는 자세가 훌륭하고, 좋은 질문도 많이 해서 관계자분들의 칭찬을 들었다. 역시 현장체험학습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우리 예쁜 친구들 :) 


5월 광장 할머니회의 상징인 기저귀천 머리수건을 두르고 애타게 자녀를 찾아 모인 어머니들의 사진과 일러스트. 
메시나 마스체라노 같은 아르헨티나의 유명 축구 선수들도 할머니회 활동의 취지를 이해하고 함께 동참했다. 여기서 풋풋한 메시의 사진을 보니 반갑다.
한인 교포 사업가님의 후원으로 열리는 위안부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모두 약자를 향한 폭력의 희생자들이고 잊지 말아야하는 살아있는 역사다.
파랗게 익어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을.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 아래 놓인 곳이 몇십년 전에는 지하 감옥이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3.

임흥순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상영회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소유 Cine Cosmos에서 열렸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퇴근하고 보러 다녀왔다. 



시내로 나가는 길.매우 TMI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26번 버스 운영 회사는 제일 돈이 많은 시내버스 회사라고 한다(!) 시설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버스 라인 ㅋㅋㅋㅋ



임흥순 감독님은 이번에 네 번째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인데, 처음에 왔을 때 우연히 한국과 거울처럼 맞닿은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알고는 놀라 찰스 디킨슨의 <두 도시 이야기> 처럼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를 오가며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구상을 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그 창조적 구상의 산물이다. 



한자로 '빛고을'이라는 뜻의 광주와,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의 피로 얼룩진 역사는 마치 거울처럼 닮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국가가 자행한 폭력으로 신음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

그리고 느리지만 천천히, 현대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더 나아가고자 하는 청소년 세대의 노력까지 함께 담은 좋은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내 허락과 의지 없이 눈물이 자주 나왔고, 또 오래 울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아르헨티나 땅에서도 마치 거울 같이 아픔을 간직하고 치유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길 바라면서.






#4.

벌써 5월의 마지막을 향해 가다니!

놓여진 학교 일들을 하다보면 7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짧은 겨울 방학(여기는 남미니깐!)도 금방 올 듯 하다.


코로나 제한이 본격적으로 풀린 올해는 나를 보러 남미행 비행기를 끊고 오는 친한 친구들이 있다. 

(내년에는 또 다른 친구들이 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스페인어도 되겠다, 중남미 맥락도 알고 이미 여행도 많이 다녀봤겠다, 나중에는 중남미 가이드로 전직해도 될 듯하다 ㅎㅎㅎㅎ)


화려하게 산 건 아니지만 - 그래도 그동안 솔직하고 번듯하게 잘 살아왔구나 - 라는 뿌듯한 마음과 안도감. 그리고 여기에 보태어 내 주변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나의 고질병인 끝없는 자기검열과 높은 신경성에 멘탈이 흔들리다가도, 그저 나라는 존재가 남미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올인하기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들의 휴가를 쥐어짜내어 멀리서 와주는 그들을 생각하면 끝없는 감사함이 들기도 한다 엉엉 ㅠㅠㅠㅠ (내 친구들은 나하고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 마음 먹으면 그대로 추진하는 능력 하나는 짱이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여튼 나 역시 멋진 사람이 되어서 그 귀한 마음에 보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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