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자라는 아이들
'신종 바이러스 확산 방지 및 감염 예방을 위하여 별도 안내 시까지 휴관합니다.'
2020년 1월 27일, 한 통의 문자와 함께 팬데믹은 시작됐다.
그날은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친정 식구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아이와 함께 자모수영을 다니고 있던 체육관에서 보내온 문자였다. 우리 지역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임시 휴관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임시 휴관이 돌아갈 수 없는 휴관이 될 것임을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렵게 등록한 자모수영인데 휴관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이 바이러스가 어떤 놈인지 잘은 모르지만 마스크가 동이 나고 있다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크를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스크란 것을 돈을 주고 사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에야 100만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 확진자 한 명이 발생했다고 온 주민이 패닉할리 없지만 코로나 첫 해에 우리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몰랐다. 적이 누구인지 모르니 대항하는 법 역시 알 길이 없었다. 공포와 패닉만 있을 뿐. 확진자가 다녀간 마트는 휴업을 했고, 사람들은 그의 동선을 추적했다. 바이러스 보균자가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녔냐며 바이러스의 숙주라도 되는 양 확진자를 비난했다. 확진자의 수는 하나 둘 늘어났다. 우리 지역 마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 안까지 코로나19는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말을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성인도 마스크를 쓰고 숨 쉬고 대화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처음 써보는 마스크는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네 살이면 한 창 나가요병을 앓고 있을 시기. 아이와 집에만 있는 건 내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는 집을 나와 갈 곳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안전한 곳을 우린 잘 알고 있었다.
목요일 오전 10시, 야트막한 산이 있는 공원에 모이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있었다. 숲에서 노는 공동육아 모임. 지금은 숲체험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숲놀이 정보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검색을 해야 했다. 아이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 숲놀이 모임에 공석이 생겨 참여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어린데 괜찮냐는 질문에 뱃속에서부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도 있다는 답을 들었다. 이 모임은 보통의 숲놀이가 아니었다. 둘째를 뱃속에 품은 채 첫째 손을 잡고 오는 엄마, 아기띠를 메고 산을 오르는 엄마. 아이들이 흙바닥에 뒹굴고 낙엽 이불을 뒤집어써도 화내는 엄마는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덥건 춥건 숲놀이를 쉬는 법은 없었다.
대체로 우리는 항상 같은 공원에서 모였다. 숲선생님께서는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아 도시가 생기기 전의 모습을 간직한 산이라서 그곳이 좋다고 하셨다. 똑같은 산을 오르고, 숲을 탐험하며 사계절을 보내보아야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셨다. 처음엔 늘 똑같은 곳을 가는 것이 심심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숲은 언제나 다른 모습이었다. 숲의 사계절을 모두 경험한 아이들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어린이로 자라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집에 있고 싶은 귀차니즘이 발동하지만 꾹 참고 옷을 챙겨 입고 숲으로 갔다. 그런 날일수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안겨줬다. 그곳은 어제의 공원이 아니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어느 나라였다가 환상적인 동화 속 세상이었다가, 스릴 넘치는 놀이공원이기도 했다.
외동인 아이는 숲놀이에서 언니, 오빠 그리고 동생도 생겼다. 연령 불문 모두 친구가 되어 놀았다. 나무를 타고,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땋고, 갈참나무 낙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바닥에 누워 흩날리는 벚꽃 비를 맞고.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놀이들, 추억들. 어쩌면 아이는 너무 어려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나무줄기의 촉감, 낙엽의 바스락 거림, 계수나무의 달큰한 향, 비밀 놀이터 고목에 올라타던 스릴 같은 감각과 감정의 파편이 무의식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궂은날에도, 결코 안전하기만 하지 않은 숲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던 경험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와 같이 숲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도시에서만 살았고, 그 흔한 시골집조차 없었던 나는 방학이면 시골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지금도 도시에 살고 있지만 아이가 회색의 도시에서도 초록과 가까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겪으며 자라는 외국의 아이들을 다큐에서 본 후 나의 아이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 요즘 유행하는 생태감수성이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자연을 벗 삼아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아이에게 자연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