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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얀 Oct 25. 2024

팬데믹의 도피처 - 숲

자연에서 자라는 아이들




띠리링!


'신종 바이러스 확산 방지 및 감염 예방을 위하여 별도 안내 시까지 휴관합니다.' 




2020년 1월 27일, 한 통의 문자와 함께 팬데믹은 시작됐다.


 그날은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차 안, 자모수영(영유아 자녀와 부모가 물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프로그램)을 다니던 체육관에서 보낸 문자였다. 우리 지역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임시 휴관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임시’ 휴관이 ‘영속’ 휴관이 될 것임을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렵게 등록한 자모수영이 휴강이라니, 성가시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만,  마스크가 동이 나고 있다 하여 마뜩잖은 얼굴로 마스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스크란 것을 돈을 주고 사 본 건 처음이었다.


 지금에야 100만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 확진자 한 명이 발생했다고 온 주민이 패닉할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 첫 해에 우리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적이 누구인지 모르니 대항하는 법 역시 알 길이 없었다. 공포와 패닉만 있을 뿐. 확진자가 다녀간 마트는 휴업을 했고, 사람들은 그의 동선을 추적했다. 바이러스 보균자가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녔냐며 바이러스의 숙주라도 되는 양 확진자를 비난했다. 확진자 수는 하나 둘 늘어났다. 우리 동네 마트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단지 안까지 코로나19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말을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성인도 마스크를 쓰고 숨 쉬고, 대화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처음 써보는 마스크는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네 살이면 한 창 나가요병을 앓을 시기. 아이와 집 안 에서 24시간 붙어 있는건 내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는 집을 나와 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안전한 곳을 우린 잘 알고 있었다.



  목요일 오전 10시, 야트막한 산이 있는 공원에 모이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있었다. 숲에서 노는 공동육아 모임. 지금은 숲체험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숲놀이에 참여하기 위해 몇 개월을 대기했었다. 아이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공석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아직 어려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모임은 보통의 숲놀이가 아니었다. 둘째를 뱃 속에 품은 채 첫째 손을 잡고 오는 엄마, 아기띠를 메고 산을 오르는 엄마는 있지만, 흙바닥을 뒹굴고 낙엽 이불을 뒤집어쓰는 아이들에게 화내는 엄마는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덥건 춥건 숲놀이를 쉬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항상 같은 공원에 모였다. 숲은 늘 그자리에 있지만,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오늘 숲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다가도 날씨가 고약한 날에는 영 움직이기 싫었다. 그럼에도 귀찮은 마음을 누르고 꾸역꾸역 옷을 겹겹이 껴입고 숲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걸음을 뗐던 날이면 숲은 더욱 잊을 없는 장면을 보여주고, 오래 기억될 경험을 선물했다. 폭우와 폭설 속의 숲은 어제의 그 공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어제 왔던 그 숲인데, 이곳은 어느덧 저 먼 바다 건너 어느 나라였다가 환상적인 동화 속 세상이었다가, 불쑥 스릴 넘치는 놀이공원으로 변해버리기도 했다. 그런 숲을 두고 겨우 비 몇 방울 때문에 집에 앉아있을 순 없었다.

 



 

 















 

 

 외동인 아이는 숲놀이에서 언니, 오빠, 동생이 생겼다. 연령 불문 모두 친구가 되어 함께 놀았다. 나무를 타고,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땋고, 갈참나무 낙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바닥에 누워 흩날리는 벚꽃 비를 맞고.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놀이들, 추억들. 어쩌면 아이는 너무 어려 구체적인 기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나무 줄기의 촉감, 낙엽의 바스락거림, 계수나무의 달큰한 향, 비밀 놀이터 고목에 올라타던 스릴 같은 감각과 감정의 파편이 무의식 속에 남아있을 거라 믿는다. 

 

 


궂은 날씨를 온 몸으로 부딪히고, 산 속에 도사린 위험과도 맞서며 숲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던 경험은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자연은 아이들을 품어준 엄마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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