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보고서
No 제모
No 관장
No 내진
자연주의 출산에는 굴욕 3 대장이 없다. 그렇지만 자연주의 출산에는 무통주사도 없다.
'출산 전에 제모를 한다고? '출산에 대해 무지 했던 나는 산전 준비에 왁싱이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선택이긴 하지만 예정일 전 미리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 산모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기도 전에 넘어야 할 문턱이 하나 더 있다니. 브라질리언 왁싱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차가운 수술실에 누워 아이를 낳는다고?'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수술실에서 출산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실에 혼자 누워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긴장되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생물학적으로 엄마인 나의 몫이지만, 아이의 탄생은 엄마 혼자만의 몫은 아니지 않은가. 남자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야 한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주장을 해오던 나인데. 수술대에 혼자 누워있는 그림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수중분만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집 가까이 수중분만을 진행하는 산부인과는 없었다. 대신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르봐이예 출산법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병원이 있었다. 르봐이예 출산법은 불필요한 의료 개입은 최소화하고, 산모와 아기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연주의 출산법이다. 산모는 집 같이 편안한 분만실에서 가족과 함께 진통을 견디며 출산할 수 있다. 고요 속에 작은 불빛 하나 켜진 어두운 분만실은 엄마의 자궁 안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 뱃속과 달라진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엄마도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입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임신 중 집에서 늘 입던 옷을 입고 산부인과에 가서 분만실이 내 방인양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남편과 함께 진통을 나누었다.
한 편 르봐이예 출산에서는 조산사 선생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담당 조산사님이 배정되면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교육을 받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신다. 정기적으로 만나며 친밀감을 쌓은 조산사 선생님은 분만실 안의 엄마였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조산사님이 계셔 힘든 출산 과정이지만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의 최대 단점은 무통주사와 촉진제를 사용하지 않는 점이다. 무통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니! 진통을 견디고 순조롭게 아이를 낳기 위한 몸만들기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다른 산모들은 태교 바느질, 태교 뜨개 같은 아기자기한 작업을 할 때, 요가원과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오갔다. 산전 요가에서는 호흡법과 함께 진통을 견디고, 분만에 도움을 주는 자세들을 연습했다. 필라테스에서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하며 부족해진 근력과 체력을 보충했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아기의 크기도 중요한데 다행히 아이의 몸무게는 안정적이었다. 이렇게 준비하며 기다렸으니 출산은 당연히 숨 쉬듯 쉬운 일일줄 알았다.
무통 없는 분만, 두 번 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진통은 정말 길고 또 길었다. 자궁문은 더디게 열렸고, 진통은 그치질 않았다. 긴 진통 끝에 촉진제를 맞기로 했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촉진제 사용을 지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 촉진제 덕에 무탈하게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도 건강했고, 내 회복 속도도 빨랐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통 주사를 선택할까? 그것 역시 모르겠다. 분만의 과정은 진통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지만, 출산 직후 아이와의 첫 만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조산사 선생님께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빠 품에 안겨주셨다. 남편의 맨가슴에 엎드려 누운 아이는 꼬물꼬물 기어올라왔다고 한다. 아빠 가슴팍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아이가 살겠다고 움직이던 생명력을 잊을 수 없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아빠와의 캥거루 케어 후 아이는 내 가슴에 안겨 젖을 물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던 모습, 삶에 대한 본능적 에너지가 그렇게 경이로울 수 없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의 아이라니, 우리의 가족이라니. 처음으로 부모가 된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강력한 생명력을 발산하며 무한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