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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숙 Sep 22. 2020

'운전의 신'의 교통사고

아빠편  Vol.6



"내 자리는 항상 있지. 캬캬."

한 번쯤 없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 아빠가 주차할 곳은 어딜 가나 꼭 있었다. 붐비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쇼핑몰, 주차할 공간이라곤 없어 보이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때마침 누군가 차를 빼거나, 기적적으로 자리가 비어있곤 했다. 그리고 그 기현상은 아빠가 자신을 '운전의 신'으로 칭하는 데 힘을 실어 주었다.



아빠는 수 십 년 무사고 경력의 수준급 운전자였다.

"꺄아아아아~"

한적한 산속 꼬불 길에 가면 아빠의 운전 실력이 더 빛을 발했는데, 엄마 빼고는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우하하!!!"

아빠가 와인딩을 하면, 뒷자리에 앉은 삼 남매는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흡사 놀이공원에 온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철없는 자식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비례해 아빠의 핸들도 더 세게 꺾였다. 비록 엄마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여 두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었지만.



어린 자식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안전한 상태에서) 가끔 자유분방한 드라이빙을 했지만 '운전의 신'은 기본적으로 도로교통 법규에 철저했다. 한 번은 도심에서 깜빡이도 없이 칼치기하는 운전자를 만났다. 여러 차량이 사고 날뻔한 상황에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와중에 우리 차는 그 차 옆으로 와 있었고, '운전의 신'의 응징이 시작됐다.



빵빵, 클랙슨을 누르고 차창을 내린 '운전의 신'의 한마디.

"야, 나 경찰이야! 운전 똑바로 해 이 **야!!!"

다소 거칠고, 자칫 공무원 사칭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신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칼치기 운전자는 그대로 도주했다.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운전의 신'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쾌적한 교통 환경을 위해 힘쓰기도 했다.



어느덧 우리 삼 남매는 모두 성인이 되어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 연수는 당연히 '운전의 신' 몫이었다. 아빠는 자식들의 성격에 따라 1:1 맞춤 레슨을 해주셨다. 매사 조심스럽고 겁 많은 언니에게는 좀 더 과감한 차선 변경과 와인딩을, 성격 급한 나에게는 안전거리 확보와 부드러운 페달 밟기를, 남동생에게는 '운전의 신' 피가 물렸는지 잔소리가 없었다. 레슨 방법은 제각기 달랐지만 아빠의 강조 사항은 똑같았다.

"전후방 예의 주시하고, 항상 '앞 차의 앞 차'까지 봐라."



본인은 '운전의 신'이라 항상 앞 차의 앞 앞, 차까지 전후방이 다 보인다던 우리 아빠. 이제 환갑이 넘은 '운전의 신'은 평범한 운전자가 되었다. 사고라곤 모르고 살아온 아빠에게 접촉 사고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앞 차와 부딪히거나, 끼어든 차량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생긴 가벼운 접촉 사고였단다. 아빠는 창피했는지, 시간이 지나고서야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얘기해 주셨다. 실은 대수롭지는 않은 척이었는데, 아빠는 말하면서 중간중간 열이 뻗치는지 열변을 토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라면 가볍게 처리하고 끝냈을 사고들이 '운전의 신'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터였다.



머지않아 신은 본인이 인간임을 시인했다.

"내가 이제 핸들을 두 손으로 잡는다."

덤덤한 말속에 담긴 깊은 좌절감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지 않은 아빠는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잡는다. 그 모습이 애잔하다가 귀엽기도 하고. 어쩌면 동승한 가족들이 주의를 주면서 함께 달리는 이것이, 즐거운 인간계의 삶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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