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병에 걸려버렸습니다
(20190319에 작성하였습니다. 리뉴얼을 위해 들렀다, 생각보다 그 시절의 BTS와 본인의 청춘에 대해 의미있게 되짚어본 것 같아, 그 때의 나에게 보답하기 위해 글을 공개합니다. 모쪼록 4년 전의 시선을 마뜩히 보아주시길 바라며.)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니다만 (아직까지는이다) 나는 그들이 꾸준히 보여주는 세계관을 굉장히 좋아하고 눈여겨보는 편이다. 나의 학창시절 끝무렵은 방탄소년단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었다. 청춘의 문턱을 밟기 직전 발매되기 시작한 <화양연화> 청춘2부작에 관한 고찰. 그리고 <Love Yourself> 시리즈와의 연장선.
내가 생각하기에 방탄소년단의 디스코그래피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학교 3부작-청춘 2부작 (이하 화양연화)-Love Yourself 기승전결 시리즈이다. (Wings&You Never Walk Alone은 풀어내기에 다소 복잡해서 제외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화양연화> 시리즈부터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이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생각하는데, 학교 3부작이 겁없이 쏴대고 들이받는 스타일이었다면 화양연화를 기점으로 보다 심오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앨범부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Love Yourself' 의 메세지, 시그니처 컬러의 가닥이 확실히 잡힌 듯 하다. 개인적으로 <상남자>, <호르몬 전쟁> 스타일의 가사는 너무 정제되어 있지 않아서 극불호에 가까웠는데, <I Need U> 부터는 복불복은 있지만 나름 이들의 노래를 잘 듣고 있다.
나는 이 팀이 가지는 메세지의 연속성을 꽤나 높이 평가한다. 비단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나타나는 그룹이라면 모두 관심이 간다. 트렌드에 맞춰서 내는 음악은 결국 그 트렌드의 생명에 종속되기 마련이지만 메세지는 음악에 내재되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룹의 컬러가 뚜렷하다는 점이나 진정성의 측면에서도 더 마음이 가고. 그리고 그 진정성이 청춘의 본질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찬란함으로 귀결된다면, 나는 이들이 보여주는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화양연화 Part 1.> 타이틀곡 <I Need U> 의 오리지널 뮤비는 상당히 잔인하다. 시각적으로도 그렇지만 감성적으로는 더 잔인하다. 위태롭고 불안한 청춘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현실 위에 아련함이라는 감정을 얹는다. 이것은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나타나 행복해지고자 하는 열망과 그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좌절을 극명하게 대비한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또래 간 폭력, 비행, 가정폭력, 정신적 불안정,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받고 방황하는 소년들을 다룬다. 그리고 그 끝은 '그들에게도 소망과 바람이 있었다' 는 것이다. 요컨대 누군가에게 청춘은 화려하게 만개하는 벚꽃이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비바람 속에서 연약하게 겨우 피어난 풀포기만한 환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편적인 청춘예찬은 때로 상실의 폭력이 된다. 화양연화 Part 1.&2. 타이틀곡 <I Need U> 와 <Run> 은 애절한 짝사랑을 노래하지만 이후의 타이틀곡 <봄날> 이 그랬듯 아득한 청춘을 향한 소년들의 순정 혹은 애증이기도 하다.
너 때문에 나 이렇게 망가져
그만할래 나 이제 안가져
못하겠어 뭣같아서
제발 핑계같은 건 삼가줘 (...)
But You're My Everything (...)
왜 혼자 사랑하고 혼자서만 이별해
왜 다칠 걸 알면서 자꾸 네가 필요해
넌 아름다워 너무 차가워
- <I Need U> 中
넌 내 하나뿐인 태양 세상에 딱 하나
널 향해 피었지만 난 자꾸 목말라
너무 늦었어 너 없이 살 순 없어
가지가 말라도 더 힘껏 손을 뻗어 (...)
난 멈출 수가 없어 난 어쩔 수가 없어
넘어져도 괜찮아 좀 다쳐도 괜찮아
가질 수 없다 한대도 난 족해
바보같은 운명아 나를 욕해
- <RUN> 中
사랑은 '그래서'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청춘 역시 그러하다. 수많은 이유들의 집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상처받고 무너지고 눈물지으면서도 꿋꿋이 남아있는 고유의 본질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이름과는 다르게 한없이 가라앉는 화양연화의 터널을 지나면 새로운 <Wings:You Never Walk Alone>과 <Love Yourself:起承轉結> 시리즈로 들어선다. 이 앨범들을 통해 청춘으로서 겪는 끊임없는 불안과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내놓는다.
언젠가 꽃은 지겠지 그 때가 오늘은 아니지
그래 우리는 Extra But still part of this world
Extra+Ordinary 그것도 별거 아녀
오늘은 절대 죽지 말아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 날아갈 수 없음 뛰어 뛰어갈 수 없음 걸어
걸어갈 수 없음 기어 기어서라도 Gear Up
죽지 않아 묻지 마라 소리질러
꿇지 마라 울지 않아 손을 들어
- <Not Today> 中 /You Never Walk Alone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거 아님 그냥 먹고 자는거
아무 것도 안하는데 돈이 많은 거
꿈이 뭐 그리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We deserve a life
- <낙원> 中 /Love Yourself:轉
아침은 다시 올거야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순 없으니까
- <봄날> 中 /You Never Walk Alone
답도 없는 고민 그 속에 빠져 있지 마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다 해도
웃고 떠들며 바람을 가르자
때론 바보같이 멍청이 달리기
실수와 눈물 속에 We just go
- <So What> 中 /Love Yourself:轉
쓸모 있어 이 좌절도
난 믿어 우린 바로 가고 있어
길을 잃는단 건 그 길을 찾는 방법 (...)
기약없는 희망이여 이젠 안녕
좀 느려도 내 발로 걷겠어
이 길이 분명 나의 길이니까
돌아가도 언젠가는 닿을테니까
I'll never lose my dream
- <Lost> 中 /Wings
저항과 도피, 희망과 도약. 반복되는 시련 속에서 청춘은
바야흐로 '자존감 높이기' 에 열을 올리는 시대다.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자존감이 극도로 낮은 사람 중 하나였고,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자존감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트러블을 잘못된 방향으로 풀어나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자존감이라는 게 너무 까다로운 녀석이라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비뚤어진 방향으로 발현되기 쉽다는 것이다. 기나긴 방황과 고민의 끝에서야 우리는 답을 찾는다.
화양연화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앨범 <Young Forever> 의 수록곡 <Save ME> 는 앞으로는 <I Need U>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고, 이후 <Love Myself> 시리즈의 마지막 '結 (결)' 앨범에 수록된 <I'm Fine> 으로 이어진다. (곡의 인트로가 <Save ME> 의 믹싱이다)
숨쉬고 싶어 이 밤이 싫어
이젠 깨고 싶어 꿈 속이 싫어
내 안에 갇혀서 난 죽어있어
Don't wanna be lonely
Just wanna be yours (...)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 <Save ME> 中
괜찮아 우리가 아니어도 슬픔이 날 지워도
먹구름은 또 끼고 나 끝없는 꿈 속이어도
한없이 구겨지고 날개는 찢겨지고
언젠가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달지어도
괜찮아 오직 나만이 나의 구원이잖아
못된 걸음걸이로 절대 죽지 않고 살아
How you do, I'm Fine. 내 하늘은 맑아
모든 아픔들이여 Say Goodbye 잘가
- <I'm Fine> 中
타인에게서 찾던 답을 스스로에게서 구한다는 것은 자존감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삶의 중심을, 시선을, 선택의 기준을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으로 옮겨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기초가 된다. <Save ME> 에서 스스로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그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던 소년이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고 말하며 자신을 가두고 있던 벽을 깨고 나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은 그러한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유약한 청춘이라도, 상처받아 주저앉은 영혼이라도 다시 자신을 추스를 힘을 잃지 않는 것. 외부의 환경에서 나를 공격해오는 수많은 시련들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나 자신을 스스로 얼마나 감싸주느냐에 있다는 것. 그게 뭐라고,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
늘 생각하곤 한다. 자존감은 빛나지만 아주 유약한 보석같은 것일까, 아니면 상처를 온전히 이겨내고서야 얻을 수 있는 흉터이자 훈장일까. 한 쪽으로 정의내릴 순 없지만 방탄소년단의 세계에서 자존감은 후자에 가깝다. 그것은 어쩌면 패여봐야만 새살을 돋아낼 수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금의 시련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치열하게 믿기. 이 한 문장이 방탄소년단의 기나긴 여정을 축약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바라보는 방탄소년단의 전반적인 세계관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만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 (나보다 더 애정넘치는 분들의 흥미로운 해석이 많기도 하고) 세계관을 관통하는 몇 가지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사실 BTS Universe는 정말정말 어렵다.. 이해하라고 만든거냐 빅히트! 이게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원래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는 게 세계관의 매력이 아닌가.
방탄소년단의 세계에서 그들은 한번도 더 나은 스스로가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스타일이 구겨져도,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주저앉아만 있어도, 허상에 가까운 꿈을 꾸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 스스로가 나라고, 그 사실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대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스스로의 맹점도 그저 마주하고 인정하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패여야만 새살을 돋아낼 수 있습니다.
<Love Myself> 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과정에서 자라나는 스스로를 향한 애틋한 위로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일으킬 수 있는 힘, 그것이 방탄소년단의 세계가 말하는 자존감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네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
버리기에 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
난 지금도 나를 또 찾고 있어
But 더는 죽고 싶지가 않은걸
슬프던 Me 아프던 Me 더 아름다울 美 (...)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 <Answer : Love Myself>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