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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준 Oct 29. 2018

덴마크인들의 삶에 녹아 있는 단어, 휘게(Hygge)

바로 앞의 지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말 많은 표현으로 쓸 수 있어."


에어비엔비 트립에서 만난 호스트, 소피에게 도대체 휘게(Hygge)가 어떤 뜻이냐고 물어봤을 때 들었던 대답이었다. 물론 그 전에 구글링이나 책을 통해서 대충 어떤 것인지 검색은 해 보았지만, 실제 현지인의 답변이 궁금했다.

휘게- 와 후가- 의 중간 정도 발음으로 들리는 Hygge 라는 단어는, 기분 좋고 따뜻한 어떤 상황에서나 쓸 수 있을 법했다.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너와 참 휘게한 시간을 보냈어." 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분위기가 "휘게하다."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따뜻한 공간 안에서 좋은 사람들이나 혹은 혼자라도 좋은, 맛있는 핫 초콜렛이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를 휘게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정확한 맥락과 의미는, 덴마크인이 되기 전 까지는 진정으로 알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동안 덴마크에 머물면서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휘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호스트 Karen 의 집은, 막연하게 생각한 휘게라는 개념이 어떻게 일상에 녹아있는 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휘게가 이런 것이구나- 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1. 부분 조명을 써서 공간을 밝힌다.

덴마크에서 방문한 대부분의 공간들은 공간을 밝히는 데에 '하나의 큰 조명' 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조명' 을 사용하고 있었다. 숙소만 해도 거실에 조명이 3개, 침실에 조명이 3개가 있었다. 빛과 어둠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덴마크인들의 생활에 베어 있는 듯 했다. 주변이 조금 어둡고, 함께 있는 사람 앞에만 은은한 조명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주 앉은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와 표정, 반응과 음식, 술 등, 내 앞에 놓여 있는 것들에 몰입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또한 책을 보거나 할 때도, 사방이 밝은 곳 보다 훨씬 집중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내게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하이라이트를 해 주는 느낌이었다.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졌다.

부분 조명과 식물, 쇼파와 쿠션.
따스한 느낌의 주방
침실 또한 부분 조명과 식물이 있었다.

2. 형광등보단 백열등과 촛불을.

덴마크는 인당 촛불 소비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휘게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촛불이다. 차가운 공간에서도 작은 촛불을 하나 붙여 놓으면 당장 따뜻한 느낌이 난다. 심지어 대낮에도 실내에 촛불을 한아름 켜 놓는 식당들이 많았다.


플라잉 타이거. 색깔 별 양초들이 많다.


촛불과 비슷하게 안락한 분위기를 만드는 높지 않은 조도의 백열등 또한 정말 많았다. 하얀 빛의 조명은 백화점이나 마트 정도에서만 볼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의 공간은 노란색 조명으로 채워져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많은 북유럽인만큼, 실내의 빛은 생활에 안정감과 활력을 주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덴마크가 조명으로 유명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낮에도 촛불이 테이블을 밝힌다.


3. 좋은 공간을 더 좋게 쓸 수 있도록

Karen 의 집에는 자그마한 테라스가 있다. 이를 창고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의 호스트는 이 공간에 푹신한 쇼파와 쿠션, 작은 테이블과 식물들을 가져다 놓았다. 집을 소개해줄 때, 자신은 주로 여름에 이 공간에 머문다고 말했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원두를 갈아 프렌치 프레스로 커피를 내리고, 채광이 잘 되는 테라스에 반쯤 누워 담요를 안고 간간히 들려오는 동네의 일상적인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휘게가 뭔지 좀 알 것 같기도 했다. 일부러 이 작은 공간을 이렇게 만든 호스트의 마음, 그 공간을 최대한 즐기는 자세, 그런 것들이 모여 따스함과 안락함을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침실 옆, 한평도 안되는 공간을 꾸며 놓았다.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공간


코펜하겐에서 보낸 시간들은 '행복' 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것도, 복잡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겠지만, 행복하려는 마음가짐과 이를 생활에 녹여낸 '휘게' 라는 개념이 많은 부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쁜 식기가 있어 매일 아침을 만들어 먹었고, 저녁에도 참 많은 요리를 해 먹었다. 행복이 별 거 있나?


예전 유희열, 이적, 윤상이 다녀온 '꽃보다 청춘' 의 페루 편에서 윤상이 지나가듯 말했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재미있으려면, 재미있으려는 마음을 먹고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 정도의 이야기였는데, 코펜하겐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려면 행복하려는 마음을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 공간과 시간을 몰입해 즐겨야 하는구나. '휘게' 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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