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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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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Aug 14. 2019

멋지게 이별하는 법

사회초년생의 이별 연습


나는 참 이별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별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쿨하고 멋지게(?) 이별하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내 주변에는 심지어 지금까지 헤어지면서 단 한 번도 슬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타인보다 이별의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명백하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나는 이 죽일 놈의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여행으로 며칠씩 집을 비울 때마다 나는 집에 혼자 남겨질 물건들에 미리 인사를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대상이 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대외활동을 통해 2박3일을 함께한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양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는 내 성향은 모든 일을 할 때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남들이 보면 아주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내∙외 활동을 병행하는 아이였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놓지 못 하는 그저 이별이 겁나는 아이일 뿐이었다. 나는 그 무엇과도 헤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당연히 이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갉아 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별하고 싶지 않아 온갖 구차한 행동은 다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세상 찌질한 주인공을 다 모아놓은 게 딱 내 모습이다.


그러던 내가 지난해 인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독립'이라는 걸 시도했다. 학교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이후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줄곧 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독립은 처음이었다. 사실 나의 독립에 관한 에피소드만 늘어놓아도 삼국지 정도의 시리즈는 나올 터이니, 이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해나가기로 하겠다. 독립을 화두로 던진 이유는 본격적으로 '이별'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독립이기 때문이다.



이사할 짐을 꾸리다가 나는 새삼 내 짐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까꿍,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방구석 곳곳에 숨어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짐이 많은지 방 안에 있던 짐인데도 방 안에 다 들어가지 않아 거실까지 늘어놓아야 했다. 그날 나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웠던 점이 이삿짐센터를 부르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이사 비용을 아껴보겠다고  주변에서 차를 빌려 이사를 했는데, 만약 용달차나 이삿짐센터를 불렀다면 당일날 견적이 달라져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내가 짐이 많다는 사실을 부정해왔다. 매일 아침이면 입을 옷이 없고, 꼭 필요한데 없는 물건이 허다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가진 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라니! 이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억에 젖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오래된 다이어리며, 흑역사가 담긴 사진들까지 봉인된 기억이 이사와 함께 터져 나온다. 결국 나는 평소에 쓰지도 않던 그 물건들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가지고 이사를 왔다. 그놈의 '정' 때문에.


미니멀 라이프가 한창 유행할 때도 그런 트렌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세를 좇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고, 굳이 그런 것들을 삶의 형태로 규정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나 싶은 회의감 때문이었다. 이미 난 가진 것이 충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삶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독립한 집에 꽉 들어찬 내 짐을 보면서 내가 가진 물건들이 갑자기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값나가는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더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저 이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그리고 나에게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들이 버겁게 느껴진 것이다. 나는 정작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물론 정이 많은 것은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아니,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나에게 정이 많다는 감정은 오히려 축복과도 같은 재능이다. 그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더 마음껏 기뻐할 수 있고, 슬픔을 함께하는 일에 주저하거나 자존심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이 생각 하나로 내가 가진 그 무엇과도 이별하지 못한 채 내 자산을 무한대로 늘려갔다. 하지만 그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순간, 이제는 그 정을 모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과감하게 이들과 이별해보기로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나는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멋지게 이별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이별은 늘 구차하고, 억울하고, 그리운 감정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그 대신 버리면서 새롭게 얻어지는 감정에 몰입하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혹여 내가 잊으면 그 대상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까 봐 나 싫다고 떠나는 사람에게도 미안해하는 사람이기에. 이 다짐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용감하게 시도한 만큼 단 1m의 공간이라도, 단 하루만의 감정이라도 조금은 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앞으로 내가 버리는 물건을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께 하나씩 소개하며 나누고자 한다. (사실 한 번에 버릴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인연의 끈을....$@3*&&) 내가 그동안 이별하지 못했던 대상에 얽힌 간단한 에피소드와 함께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을 소개할 테니, 혹시 나처럼 이별에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길 바란다. 단언컨대, 내가 잘 해낸다면 모두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곧 다가올 첫 번째 이별을 함께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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