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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Sep 22. 2022

서른, 안식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만하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서.


서른을 몇 개월 앞둔 어느 가을날, 

찬 기운이 서린 바람이 뺨을 스치며 불어오던 그 순간 

나는 

사무실 안에서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를 딸깍이며 생각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스치고 간 나의 삶에 남은 건

지금 숨 쉬고 있는 한 평 남짓의 이 책상 위 공간이 전부였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구나.

아주 선명하게.


누군가는 나에게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언제까지 갈 길을 못 잡고 방황하며 살 거냐고 말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겨우 서른밖에 안 됐는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몰아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누군가는 

'나'이기도 했다.


한 차례 바람이 불고 나서 사무실 안에는 잠시 동안의 고요함과 함께 따듯한 공기가 감돌았다.

아마도 모니터에서 뿜어 나온, 흔하디 흔한 사무실의 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평소와 다른 포근함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좀 쉬어가도 괜찮지 않겠니?"라고.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무엇하나 내 것인 것이 없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물음표가 여전히 내 주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번만은 달라야 할 것 같아서, 라는 오기가 그런 생각들 마저 짓누르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들,

누군가의 무엇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시간들,

특별히 잘한 것은 없더라도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이 살아온 시간들,

이만하면 잘 살아왔지 싶어서

열심히 살아왔지 싶어서

이제는 정말 나만 생각하고 싶어서




서른, 안식년을 갖기로 했습니다.

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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