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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Apr 08. 2024

나의 해방일지, 이게 맞아?

대체로 낯설지만 조금은 익숙한.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내가 처음 하고 싶었던 일은 휴식의 정석이 그렇듯, 으레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안식년에 돌입하자니 한 가지 허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 여행과 휴식의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불쑥 치미는 불안감과 적당히 타협하기 위한 묘안을 떠올려야 했다.


바로 '어학연수'.

어떤가! 여행도 즐기면서 커리어도 발전시킬 수 있으니 꽤 성공적인 계획 같지 않은가?


지극히 현실 도피적이면서도 결국 그 현실에 순응하고 마는 내 성향이 안식년을 즐기겠다는 야심 찬 포부에도 관여하고 말았다. 나는 늘 가슴 한편에 유학에 대한 동경과 로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거나 해외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넓혀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해외에서의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의 내 삶도 달라졌을까?'하는 질문이 삶의 테두리를 맴돌았다. 수년간 일 하면서 어느 정도 모아둔 돈도 생겼고, 당장 이 돈을 쓸 만한 일도 없으니 어학연수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인생에서 오직 나만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나의 안식년은 어학연수 준비라는 새로운 목표를 싣고 출발선에 섰다.


막상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어디로 떠나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충동과 서른의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에 안전한 도시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충돌했다. 내가 만약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같이 행복한 결말이 보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거나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한 '삶의 진정한 의미' 같은 것을 찾아가는 낭만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만난 재벌 2세와의 로맨스는 덤이고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포부는 지녔을지언정 해피엔딩을 장담할 수 있는 패기는 없었다. 도전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젊지만 모든 것을 잃기에는 애매한 나이에 서 있다고 느껴졌다. 세계 지도를 열고 내가 이전에 여행한 적 있는 나라들을 먼저 살펴본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일단 초면보다는 구면이 친해지기 쉽지 않겠는가? 나의 해방일지가 쓰일 수 있는 최대한의 페이지가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대체로 낯설지만 조금은 익숙한. 경험했던 나라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에서 다시 살아보기. 더 구체화되고 좁혀진 목표와 함께 안식년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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