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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김씨 Aug 09. 2023

남편 관찰일지 1화 아니 당신은 왜 이불을 안 개?

사람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돌보는 방식이 있다

[남편 관찰일지] 

○ 관찰대상: 남편의 모든 것 

○ 목적 : 결혼은 연애의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로써 평생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자칫 쉽게 무신경해질 수 있는 상대를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상대의 현재 상태를 유추하고 이해하기 위함이다. 

○ 프로세스: 관찰한다 > 기록, 분석한다 > 이해한다 > 개선한다



남편 관찰일지 1화 아니 당신은 왜 이불을 안 개?


            관찰기간: 2023.08.01 ~ 2023.08.09.          

            관찰주제: 일어나면 이불을 개지 않는 것에 대하여           






01 아니 당신은 왜 이불을 안 개?  


이 세상에 이불을 개는 사람과 개지 않는 사람, 단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 남편은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이다. 


어릴 적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저 그런 자기개발서에서 읽은 내용인데, 영국의 한 장군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이부자리를 정돈한다고 한다. 이부자리를 스스로 정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를 이끌어 가겠냐며. 어릴 땐 이 말이 큰 울림이 있었는지,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부자리를 정돈하는 어른으로 컸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나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단순히 이부자리만 잘 정돈하는 어른일 뿐이다.) 


반면, 남편은 이부자리를 개지 않는다. 


남편의 지론은 "어차피 다시 헝클어질 이부자리 굳이 개지 않는다"였다. 잠은 매일 자는 것이고, 이부자리는 매일 헝클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는데 굳이 매일 개는 행위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영국 장군 이야기를 듣고는, 그 장군은 뭔 개똥철학이래. 라고 답했다. (정확한 워딩이 개똥철학은 아니었지만, 뉘앙스가 그러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아니 그래도 이왕이면 개는 게 좋지 않나? 나는 앞으로도 나라를 이끌만한 대단한 어른이 될 계획도 의지도 없지만 앞으로도 일어나면 나의 이부자리를 정돈할 테다. 나의 지론은 이러하다.


            이불을 개면 방이 깨끗해진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불을 개면 다시 잠자리에 들 때 정돈된  이부자리에서 잘 수 있다.           

            정돈된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면 기분이 좋다.           


뭐 결국은 기분이 좋다에 수렴하는 단순한 공식이지만, 이불을 개는 것은 결국엔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행위이며 매우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불을 개기 위해 대단한 체력과 시간 그리고 능력을 요하지 않는다. △ 일어서서 이불 양쪽 모서리를 잡고 턴다. △ 헝클어진 베개를 제자리에 놓는다. 두 가지 행위 면 끝이다. 시간도 1-2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돈된 이불에서 자면 기분이 조크든요
















02 사람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돌보는 방식이 있다


이불을 개는 행위는 나에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명확한 보상을 주지만, 남편에게는 다시 또 어질러질 것을 구태여 정리하는 불필요한 행위 일뿐이다. 


결국 남편과 나는 인생을 돌보는 방식이 다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예전의 나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장을 보고 메뉴를 선정하고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련의 행위들이 성가셨다. 밖에서 사 먹거나 인스턴트 혹은 배달음식을 먹으면 앞선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먹는다'라는 결론만 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간단한가. '요리'는 나에게 불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요리란 자신을 돌보는 가장 중요한 행위였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고민하고, 장을 보러 나가 제철 재료가 무엇이 있나 연구하고, 식재료를 다듬고, 간을 보고 요리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음으로써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남편에게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정성스럽고 성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03 각자의 방식을 알고 있다는 것  



오늘 아침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내 노트북 어딨어?"


오빠 서랍장 세 번째 칸에 넣어두었다고 대답하자 남편은 작게 불평했다.

 "아니 네가 또 정리할까 봐 식탁 아니고 서랍장 위에 올려뒀는데..."



나에게는 우리 집의 기존 세팅 값이 있다. 퇴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세팅 값을 맞추는 것이다.

식탁 위는 깨끗해야 하고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로 가야 한다. 의자를 식탁 밑으로 넣고, 방석의 위치를 정돈한다. 오빠의 노트북이 식탁 위에 있든 서랍장 위에 있는 그것은 세팅 값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제자리인 오빠 서랍장 세 번째 칸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세팅 값이니까. 




집을 깨끗이 유지하고 정돈하는 것은 내가 내 삶을 돌보는 대표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집이 더럽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남편은 회사일로 괴로워할 때 한참 동안이나 요리를 하지 못했다.


남편은 집을 깨끗이 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퇴근 후 습관처럼 벗어놓은 옷을 의자에 걸어놓고 다음날 아침 내 눈치를 보며 옷을 정돈한다. 아니면 단순히 잔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에게 이불 개는 것은 중요한 하루 일과지만, 상대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불은 앞으로도 내가 개면 된다. 




남편 관찰일지 분석결과: 이불을 안 갤 수도 있지. 이불은 앞으로도 내가 갤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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