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에세이 기고 #1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상태가 가장 심각한 상태라는 말이 있다. 육아의 경우는 아빠육아가 그랬었다. 20년 전에는 아무도 여성의 전업육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존재, 주말에 얼굴을 보면 다행이었고 육아는 보통 엄마의 몫이었다고 할 수 있다. 30년 전에 내 아부지가 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면? 동네 어르신들이 3분에 한 번씩 말을 걸거나 수근댔을 것이다.
작년 결혼 10년을 채우고 올해는 육아 8년을 채웠다. 10년 전에는 나도 으레 아빠는 20년 전에 내가 겪은 아빠 정도여도 되는 줄 알았으나, 앞서 문제를 이야기한 어떤 이들 덕에 다르게 살 수 있었다. 예비 다둥이 아빠가 됐을 때 육아휴직을 썼고, 아이들과 살을 부비는 시간을 가지게 됐고, 내가 어릴적 아부지에게 느꼈던 묘한 긴장감을 주지 않는 편한 아빠가 됐다고 자부할 수 있다.
편한 아빠란 무엇인가. 첫째로 아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아빠다. 물론 아들은 종종 나를 부를 때 "엄마, 아 아니 아빠!"라고 하지만. 또, 엄마와는 다른 영역에서 아이를 포용해줄 수 있는 존재다. 단 하나의 존재만 겪은 아이보다 다양한 존재와 상호작용한 아이가 사회성이 좋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좋은 선생님도 아빠보다 더 아이를 포용하기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싫을 땐 싫다고, 좋을 땐 좋다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껏이라는 말을 관계에 붙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자부는 자부일 뿐, 역시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영상에 등장하는 아빠나 육아서적 속 아빠, 또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카페의 에너지 넘치는 아빠들은 어찌나 대단한지. 그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유전자를 이어받은 누군가에게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러니 비교보다는 스스로를 인정해가며 하루하루 편한 아빠가 되어가야겠다.
그로잉맘 덕에 앞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지난 몇 주 오랫동안 고민할 수 있었다. 그로잉맘의 기질분석이 내게 해준 이야기는 '당신은 양가적인 블록(빨강과 파랑)을 모두 지니고 있으니 어렵겠지만 인지하고(또 인정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여서, 역시나 육아의 기쁨과 고됨 모두 다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둘 중에 내가 더 궁금한 지점은 육아의 고달픔이라서, 시작은 이렇게 긍정적인 지향점을 적었지만 다음부터는 아빠 스스로 편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전지적 아빠 시점에서 이야기해보고 또 듣고 싶다.
<이 글은 육아기질분석/상담 전문기업 그로잉맘 앱에 기고한 글입니다.>